지문검색
김 일 태
얼굴이 나를 찾는 지도 위 주소라면
지문은 나를 열어보는 비밀번호다
공항 출국장 판독기 앞에서
갑자기 내가 열리지 않았다
오른손 둘째 손가락 지문이 나를 몰라보았다
임시 증명서 들이대듯
엄지 약지 왼손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통과했다
시 몇 편 썼다고
설거지 몇 번 도왔다고
손끝이 나의 기억을 지운 걸까
피부과에 가니 건조해서 그렇다며
로션을 자주 바르라 했다
문득, 생각했다
지문 하나뿐 아니라
평생 얼마나 많이 닳고 달라져 왔는지
다시 검색할 수 없는 이력도
보습하고 천천히 마사지하면
바뀐 비밀번호처럼
새로운 내가 인식될까?
- 시와사람, 2025 가을호 117
시 해설
현대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인식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고 안면인식 기술로 인해 도심을 걸어 다니는 특정인을 카메라를 바꿔가며 추적해 갈 수 있고 지문으로는 그 사람의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시인은 ‘얼굴이 나를 찾는 지도 위 주소라면 지문은 나를 열어보는 비밀번호’라고 인식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금융 업무를 볼 때도 안면인식으로 본인 확인을 한다. 개인의 지문이 다른 나라에 이미 등록 되어있는 여행객도 무수하다. 출입국의 문을 여는 열쇠로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공항 출국장 판독기 앞에서 갑자기 자신이 ‘열리지 않’는 경험을 했다. 자동 출국 심사대에서 여권은 판독이 되었는데 그다음 관문에서 등록된 지문의 인식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으로 겨우 통과한 시인은 생각이 많아졌다.
‘시 몇 편 썼다고 설거지 몇 번 도왔다고 손끝이 나의 기억’인 지문이 닳았던 것인지 의심하며 병원에 가니까 받은 처방전이 로션으로 피부를 촉촉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시인의 펜 끝은 언제나 촉촉하지 않은가, 가사일 돕느라 습진도 생길 정도인데.
문득 시인은 생애를 돌아보니 ‘지문 하나뿐 아니라 평생 얼마나 많이 닳고 달라져 왔는지’를 알 것 같았다. ‘다시 검색할 수 없는’ 지나간 시인의 젊은 ‘이력도 보습하고 천천히 마사지하면
바뀐 비밀번호처럼’ 새롭게 나를 인식해 줄 것이라 느끼면서 아직 재생 가능한 것이 있으므로 희망을 놓지 않는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