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6분께 어선으로 보이는 한 선박이 강서낙동강교 방향에서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내 대저대교 건설예정지 부근에서 휴식 중이던 큰고니 무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러자 큰고니들이 황급히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 = 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낙동강하구 대저대교 건설 예정지 인근에서 정체불명의 선박이 법정보호종 큰고니 무리를 향해 굉음을 내며 돌진해 쫓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겨울철 출입이 제한된 천연보호구역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관계기관의 관리 공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대저·엄궁대교 건설 취소소송의 현장검증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고의적 서식지 교란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과 (사)습지와새들의친구는 28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천연기념물·멸종위기종 서식지 한복판에서 벌어진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관계 기관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25일 오전 10시6분께 어선으로 보이는 한 선박이 강서낙동강교 방향에서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내 대저대교 건설예정지 부근에서 휴식 중이던 큰고니 무리를 내쫓은 뒤 경전철 교량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물에서 휴식 중이던 큰고니들이 모두 날아올랐다. [사진 = 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정체불명 선박 2척, 큰고니 무리 향해 돌진

환경단체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11월 25일 오전 10시 6분께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내 대저대교 건설 예정지 부근에서 어선으로 추정되는 선박 1척이 강서낙동강교 방향에서 큰고니 무리를 향해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이 선박은 당시 해당 지점에서 휴식 중이던 큰고니 무리를 쫓아낸 뒤 잠시 머물렀다가, 속도를 줄여 경전철 교량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시각 한국수자원공사 작업선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선박도 큰고니 휴식처 인근까지 진입해 작업을 벌이며 서식지를 교란했다. 사고 지점은 천연기념물 제179호 ‘낙동강하구 철새도래지’ 문화재보호구역 안으로, 겨울철 월동기(11~3월)에는 공사 행위와 수변부 출입, 레저 활동 등이 제한되어야 하는 구역이다.​

습지와새들의친구는 12월 22일 예정된 대저대교·엄궁대교 취소소송 현장검증을 앞두고 “누군가 고의로 큰고니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쫓아낼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시민 감시 활동을 벌이던 중 이 장면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정체불명의 선박이 천연보호구역에서 천연기념물·멸종위기야생생물인 큰고니를 향해 돌진해 쫓아버린 것은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같은 행동을 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한국수자원공사 작업선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큰고니 무리 인근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 습지와새들의친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보호구역”…관리 공백 드러나

사고 직후 습지와새들의친구는 월동기 선박 운항과 관리 책임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부산시 낙동강관리본부 공원관리팀·수질개선팀, 부산시 문화유산과, 강서구 문화체육과, 환경물정책실 환경정책과 등 관련 부서에 잇따라 문의를 넣었지만, “문화재보호구역 내 월동조류 보호를 위해 선박 출입과 보호구역 관리를 통합적으로 관리·통제하는 부서는 사실상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결국 국가유산청 동식물유산과에까지 연락했지만, 담당자 부재 등으로 월동기 어선 통항 허가와 관리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체는 “천연보호구역 안에서 선박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큰고니를 위협하고, 산책객과 낚시꾼들의 무단 출입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인데도 이를 총괄해 관리·감독할 전담 부서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부산시와 국가유산청,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낙동강하구 관리 책임을 서로 떠넘긴 결과”라고 비판했다. 낙동강하구는 과거 약 3천 마리의 큰고니가 찾던 세계적 서식지였으나, 개발과 서식지 교란으로 개체 수가 10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21년에 이어 또다시…“고의적 서식지 교란 의혹”

환경단체가 특히 심각하게 보는 대목은 이번 사고 지점이 2021년에도 부산시가 선박을 운항해 큰고니 무리를 쫓아냈다고 환경단체가 고발했던 바로 그 장소라는 점이다. 당시 부산시와 시민단체는 겨울철새 공동조사를 통해 대저대교 노선이 큰고니 서식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로 합의했지만, 부산시 측이 수변부 청소를 명목으로 선박을 투입해 조사 도중 큰고니를 내쫓아 논란이 일었다.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은 “2021년 공동조사 때도 부산시가 선박을 띄워 큰고니를 쫓아냈던 전력이 있다”며 “이번에도 현장검증 전에 큰고니를 쫓아 개체수를 적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는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이미 부산 강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향후 부산시와 국가유산청,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후속 조치를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거짓 논문에 기대어 강행된 대저·엄궁·장낙대교, 재검토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은 “거짓 논문에 기대어 강행된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 승인은 이제 철회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민행동은 대저대교·엄궁대교·장낙대교 건설 승인과 취소소송의 핵심 쟁점이 “법정보호종 큰고니가 낙동강하구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지 여부”라며, 2021년 문재인 정부 환경부가 이미 “기존 교량 노선은 큰고니 핵심 서식지를 관통하고 비행 경로를 차단해 안정적 서식을 해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상기시켰다. 당시 환경부는 대안 노선 4가지를 제시하고 “부산시는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환경영향평가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요구했지만,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입장이 뒤집히며 기존 노선이 재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행동은 특히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된 「낙동강하구에서 을숙도 습지 복원 사업과 먹이주기 효과 및 큰고니의 상승비행 유형」 논문이 학회 윤리위원회 조사 끝에 ‘연구부적절행위’ 판정을 받고 게재 취소 결정이 내려진 점을 지적했다. 이 논문은 당시 부산시 환경물정책실장이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교량 간격보다 먹이주기 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펴며 환경영향평가와 국가유산청 현상변경 허가의 결정적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2024~2025년 학회 조사 결과 연구윤리 위반이 확인되면서 학문적 효력을 상실했고, 시민행동은 이를 “난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해당사자가 쓴 거짓 논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자회견문에서 이들은 “환경부가 스스로 내렸던 합리적 결론을 정권과 이해관계자가 ‘게재 취소 논문’으로 뒤집은 셈”이라며, “연구윤리를 위반한 논문에 기대어 승인된 환경영향평가와 자연유산 현상변경 허가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큰고니 서식지 보전 가능한 새로운 대안 마련하라”

환경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요구했다.
- 환경부 장관은 관련 법령에 따라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할 것.
- 국가유산청은 천연보호구역 내 현상변경 허가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전면 재검토할 것.
- 부산시는 이해충돌·연구윤리 위반이 드러난 담당자들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낙동강하구 선박 운항·무단출입을 관리·감독할 전담 부서를 명확히 지정할 것.
-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환경부가 제시한 대안 노선과 대중교통 개선 등 덜 파괴적인 교통대책을 포함한 종합 재검토에 나설 것.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은 “세계 어느 도시도 낙동강하구처럼 수천 마리 큰고니가 찾아오는 곳은 없다. 낙동강하구는 그 자체로 세계적 자연유산이자 부산의 ‘진짜 황금알’”이라며 “다리는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한 번 파괴된 큰고니 서식지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이날 성명을 통해 “거짓 근거에 기대어 추진된 교량 건설 승인을 재검토하고, 낙동강하구 큰고니 서식지 보전이 가능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라”며, 국회·감사원·언론이 이번 사건과 승인 과정 전반을 철저히 조사해 자연유산 훼손과 혈세 낭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