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이송희

남자는 소파에 기대 앉아
미얀마 전쟁에서 트라우마를 안고 돌아온
여군의 이야기를 담은 프랑스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볼 생각이 없는 여자는
책장에서 유명 작가의 단편집을 뽑는다
한때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책

반쪽짜리 글쟁이인 여자는
목차를 훑고
익숙한 눈길을 돌린다
읽을 때마다
어딘가 유리벽에 갇힌 듯한
막막한 체기를 남기는 그의 작품들

잔잔히 흐르던 문장은
15도의 각도로 비틀리더니
갑자기 165도를 돌아
180도에서 멈춘다
여자의 눈도 따라간다
15도, 165도,
마침내 뒤통수에 박히듯 멈춘다

그 순간
여자의 눈에 잠이 스며든다
어둠은 비처럼 쏟아지고

이송희 시인

◇ 이송희 시인

▷2007년 미주아동문학 동시 등단
▷2008년 뿌리문학 시 등단
▷수상 :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경희해외동포문학상, Famous Poets Free Poetry Contest 영시 입상, 황순원디카시공모전 수상, 대한민국통일예술제 문학대상, 에피포도문학상 본상
▷한국디카시인협회 시애틀지부장, 서북미문인협회 이사, 미주문인협회 이사
▷시집 《나비,낙타를 만나다》, 동시집 《빵 굽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