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을 절대적인 안전보장의 틀로 여겨왔다. 1950년 전쟁을 겪고 폐허 위에서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경제적 원조를 받으며 생존했던 경험이, 우리 사회에 ‘미국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강한 의존 심리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전후의 가난한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민주주의와 산업, 문화의 면에서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압박과 요구 앞에서 과도하게 몸을 낮추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꺼내든 관세 압박은 한국의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와 철강, 배터리 산업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과격한 발언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미국 정치의 구조적 성향이자, 언제든 동맹조차 자국의 이익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단면이다. 결국 미국이 말하는 ‘동맹’은 한국의 이익을 담보하는 보증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의 전략적 필요와 이익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순응하거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국 산업과 국민의 희생을 의미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굴종이 아니라 당당함이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분명히 말해야 한다. 동맹은 대등해야 하며, 한국의 국익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조치가 지속된다면 한국 역시 미군 주둔 문제를 포함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천명해야 한다.
‘미군 철수’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두려움의 산물일 뿐이다. 사실 주한미군은 한국만을 위한 방위력이 아니다. 그것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거점이며, 일본·대만·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이다. 따라서 한국이 미군 철수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꺼내는 순간, 미국은 결코 가볍게 대응하지 못한다. 미군 철수는 실제로 실행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당당한 태도만으로도 한국은 협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인식이다. 한국이 여전히 약소국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의 그늘을 절대적 보호막으로 여기며 주체적 결단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국의 압박 속에서 경제와 외교적 주권을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충분히 독자적인 힘을 갖추었다. 자주적 외교를 실현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 국제적 위상을 확보한 나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의 요구 앞에서 머뭇거린다면 그것은 자기 비하일 뿐이다.
물론 한미동맹의 가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맹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동맹은 종속이 아니라 균형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구해야 할 외교는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전략적 협력이다. 미국이 무리한 관세 장벽을 세울 때,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국익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정책 앞에서는 단호히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미군 철수라는 초강수까지 협상 카드로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도 한국을 단순한 하위 파트너가 아니라, 대등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게 된다.
세계는 이미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크지만, 중국·유럽·신흥국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은 이 속에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산업과 기술은 세계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우리의 외교적 선택은 아시아의 균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당연하게 수용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국은 새로운 시대의 외교 질서 속에서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외교다. 그것은 굴종적 외교가 아니라 자존을 지키는 외교, 종속적 태도가 아니라 대등함을 확보하는 태도다. 국민은 정부가 더 이상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한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줄 아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고, 필요하다면 미군 철수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태도야말로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은 더 이상 1950년대의 빈곤한 나라가 아니다. 세계 경제와 외교 무대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을 갖춘 주권 국가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자존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당하게 협상하고, 굴종 대신 대등함을 택할 때, 한국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가로 서게 될 것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당당히 맞서라.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세계 속에서 주체적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감리교 은퇴목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