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 사본(1948년 7월 17일 공포). 원본은 6·26 전쟁 와중에 분실되어, 관보 등 관계서류를 참고하여 재작성한 것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내란특별재판부와 사법개혁법안을 에둘러 비판했다.
“(세종대왕은) 법의 공포와 집행을 백성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공법 시행을 앞두고서 전국적으로 민심을 수렴해 백성의 뜻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사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으셨다.”
‘민심을 수렴해 백성의 뜻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이다. 내란 수괴를 탈옥시키고 재판을 질질 끌어 ‘백성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것을 막고자 사법개혁을 하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심각한 유체이탈병에 걸린 듯하다. 그 원인은 몸은 대한민국에 있어도 의식은 조선 시대에 붙잡혀 있는 듯하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예(禮)는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 -예기/곡례 상-
예는 귀천의 계급을 차등하고, 장유(長幼)를 차별하고, 빈부의 경중을 모두 알맞게 한다. 사(士) 이상에게는 반드시 예악으로 절제시키고, 그 외의 일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법으로 죄를 물어 제재한다. -순자/부국-
공자 시대의 지배계급은 왕, 공경(公卿), 제후, 경대부(上大夫)였고, 피지배계급은 사민(四民, 士農工商)과 천민(노예, 오랑캐)였다. 사민(四民)의 제일 앞자리인 사민(士民)은 지배계급을 보좌하는 관료가 되었다. 하대부(下大夫),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 등의 직책을 가졌다.
서인은 몰락한 귀족으로 피지배계급이다. 순자가 말하는 사(士)는 경대부로 지배계급을 말한다. 『예기』와 『순자』에서 말하는 바는 간단명료하다. 지배계급(귀족)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예로써 절제하게 할 뿐이다. 때로는 예에 크게 어긋한 행동을 할 때, 귀족 내집단에서 도덕적 비난을 받고 배척되어 서인으로 강등되기는 했다.
반면, 피지배계급은 애당초 예로써 교화할 인성이 못 된다. 하여 가혹한 형벌로써 행동을 제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성품이 다르다는 인간차별 혹은 ‘인간불평등론’이다. 이는 유교의 ‘성삼품설’(性三品說)로 이어진다.
인간불평등이란 중국 고대 사상은 유교로 이어지고,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는 양반·중인·상민·노비의 신분사회였고,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이 있었다.
수령고소금지법이라고도 불렸는데, 지방의 아전 등 향리나 일반 백성들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던 제도이다. 1420년(세종 2년) 예조판서 허조 등의 건의에 따라 제정되었다.
아전이나 백성들이 관찰사·수령 등을 고소한 경우에는 수리하지 않으며, 고소자를 장(杖) 100, 도(徒, 징역) 3년에 처하였다. 관원들의 비리·불법 행위·오판 등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당사자는 관찰사에게 호소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만, 모반대역죄와 불법살인죄를 고소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이 법을 제정한 목적은 사리에 맞고 안 맞고를 불문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상하존비(上下尊卑)의 명분을 확립하고자 함에 있었다. 수령은 백성의 부모이고 백성은 수령의 자식인데, 자식으로서 부모를 고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적용하여 매우 아름다운 법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사회인 대한민국의 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 보장과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반면에 신분 사회인 조선 시대의 법은 왕권(국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신분질서를 유지하려는 통치 수단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한 반면, 조선의 『경국대전』은 신분에 따라 형벌의 종류와 무게에 차등을 두었다. 예컨대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면 사형에 처해진 반면, 주인이 노비를 살해할 경우 처벌이 면제 되거나 극히 가벼웠다.
조 대법관은 내란특별재판부와 사법개혁안을 논의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다. 책임이 두려워서일까? 혹은 법관을 천부의 ‘신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법관이란 신분은 없다. 법관의 권한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정한 법에 따른 것일 뿐이다. 하여 국민이, 국회가 내란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사법개혁을 하겠다는데 무슨 토를 다는가?
우리 헌법에 ‘사법부의 독립’은 없다. ‘사법권의 독립’이 있을 뿐이다.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법권의 독립을 규정한 것이지 사법부의 독립을 명시한 게 아니다. 또 헌법 102조 ③항은 '대법원과 각급법원의 조직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법률의 제·개정은 국회에 속한다. 그러므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와 사법개혁은 입법부인 국회의 소관임을 헌법이 보장한다.
“사법권의 독립이라 함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이 구체적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권녕성/헌법학원론(1991)/p.901)
조 대법원장 자신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았는가!
“법원의 조직은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거하고, 법관의 재판도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구속되기 때문에, 입법부로부터의 사법부의 독립에는 법치국가적 요청에서 오는 ‘필연적 한계’가 있다.”(앞의 책, p.903)
헌법의 필연적 한계를 무시하는 행위의 대표적인 예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이다. 기어이 조희대 대법원장도 내란 수괴의 길을 따르려 하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