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저곳의 다섯 공리公理 axiom>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37. 경수와 자영

난 89% 득표율로 초대 대통령에 오른 깔쌈한 권력자였지.

공산화 도미노를 우려한 막강한 미국도 나를 후원했지.

살아생전 평생 총각이었던 나는 거칠 게 없이 당당했어.

아! 그런데 바보같은 난 내 주변 년놈들을 관리 못했어.

탐욕스런 친동생과 멸치같은 제수씨한테 힘을 주었어.

부하 놈들은 지혼자 잘먹고 잘살기 바라며 무능부패했어.

권력이란 건 악하든 선하든 선명한 자의 것이야.

나는 자본주의 캐피탈 이념에 있어서 선명했지.

카톨릭이라는 신념에 대해서도 선명했지.

그런데 권력이란 선명함만 가지고는 부족해.

쳥렴함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청렴하지도 않은데 권력을 유지하는 대단한 놈들은 있지.

그러려면 가혹한 억압을 행사해야 하는데 끝이 좋지는 않아.

나도 폭력을 동원해 내 권력을 지키려 했지만 무너졌어.

날 지원했던 미국 놈들도 날 등지며 날 제거하려 했지.

결국 난 부하 군인 놈들에게 총살당하며 여기로 왔어.

깔쌈하게 출발했던 권력은 처참하게 종말을 맞이했지.

그럼 내 나중 놈들이 잘해야 하는데 나보다 더 못났어.

이 틈을 타 저 북쪽의 권력자는 선명함과 청렴함으로

게다가 능란함과 교활함까지 갖추며 우리나라를 먹었지.

나라 말아먹은 놈들 다 집합시켜 빠따라도 실컷 치고싶어.

우리나라엔 전통적으로 대단한 여자들이 많았어.

4대 미녀도 있고 4대 악녀도 있고 4대 추녀도 있어.

나는 시시한 거기에 끼지는 않지만 독보적 요녀는 될걸.

사람들은 나보고 요사스런 요부라는데 나는 죄 없어.

죄가 있다면 이쁘다는 건데 이쁜 게 뭐 죄가 되겠어.

문제는 남자들이야! 나만 보면 환장하는 징한 수컷들!

난 요사스런 짓을 벌이지도 누굴 모함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냥 얌전히 가만히 있는 암컷 나를 갖기 위해

수컷들은 지들끼리 싸우고 죽이며 나라까지 말아먹었어.

난 도발적 관능적 뇌쇄적 요염적 끼를 갖춘 천상요부였어.

게다가 내 몸은 남자를 후리는 방중술까지 익혔어.

그러니 내 나이 50이 넘어서도 내 암끼는 수컷들을 당겼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부적 도화살을 가진 나였어.

미인박명이라는데 나는 10간12지 한바퀴 돌도록 살았지.

나 살던 2500여년 전에는 살만큼 산 거야.

숱한 남자들을 거친 후에 끝까지 나를 품은 남자랑 같이.

아무리 내가 이쁘기로서니 남자들은 이쁜 몸뚱이

하나 뿐인 나를 가지려 그렇게나 열씨미 지지고 볶았을까.

그걸 성욕이라 해야 하나 소유욕이라 해야 하나?

소유욕이라면 귀한 보물을 탐하는 것과 다르지 않나?

그 욕심이 나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이나 봐줘도 될까?

하여튼 어쨌든 여하간 좌우지간 애니웨이!

그런 수컷 남자들을 이해할 수 없어도 나 이쁜 걸 어쩌겠어.

박기철 교수

<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