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가 잡혀가던 날 국내 야당 나경원과 장동혁은 이재명이 마두로라 하고, 민주당 중진 김영배는 윤석열이 마두로라 하면서 하루속히 트럼프가 군대를 보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잡아가라고 한다. 남아공 사람들이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려 투쟁할 때 결코 미국이 와 도와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우리가 10대 선진국이라고? 아주 한 참 멀었다.

나는 마두로가 잡히던 날 체 게바라의 마지막 시 ‘달빛’을 읽었다.

‘달빛’

이른 저녁
희미한 달 빛 아래
숲속 은신처에 포위된

우리는
이제 37명 뿐이다.

나무 사이로
감자밭이 보인다.

더 이상
탈출구는 없다.

게바라가 이 시를 쓴 때는 1967년 볼리비아 어느 농촌 마을 뒷 산이었다. 게바라는 1928년 7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67년 10월 볼리비아에서 체포돼 사형 당했다. 그래서 위의 시는 잡히기 직전 그가 남기 마지막 시이다.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감자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항일 유격대가 북만 일대의 밀림을 지날 때도 감자꽃이 사방에 만발한 장면이 나온다(특히 임강을 지날때). 나의 10대 시골 고향에서 보릿고개를 넘길 때 하도 배가 고파 감자꽃 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1월 4일 마두로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게바라를 연상했고 ‘감자꽃’을 다시 감상했다. 감자꽃은 남미 혁명가들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의 체포 순간의 모습

위의 사진은 슬라보에 지젝이 그의 책 『잉여향유』에 실린 유일한 한 장의 사진이다. 지젝은 난해한 그의 철학 저서에 매우 이례적으로 게바라의 체포 당시의 사진을 실었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라캉의 잉여향유(Surplus Enjoyment)를 게바라의 체포 순간과 일치시키고 있다.

라캉은 쾌락pleasure을 향유와 대비시킨다. 인간의 감정에서 쾌락은 불쾌와 대립되는 것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향유는 쾌락과는 판이하게, 불쾌 자체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멕시코 여행 중 천주교 성당을 방문하게 되면 원주민과 구라파인들이 딴 건물에서 예배를 보도록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이유는 원주민의 체취를 구라파인들이 견딜 수 없고, 그 반대로 원주민들은 구라파 인들의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인종끼리는 서로의 체취를 즐긴다. 한국 말로 ‘인이 박힌다’는 것은 ‘호불호’와 ‘미불미’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고, 이 말은 우리민족의 ‘한恨’과도 연관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 ‘한’은 향유이지 불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젝은 혁명가들에게 고통은 결코 쾌락이 아니고 향유라고 한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죽일 때 그가 당한 고난과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풍찬노숙을 하며 15년간이나 긴 세월을 백두산 기슭과 만주벌에서 풍산노숙하던 항일 유격대들에게 향유가 없었다면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사육신들이 거사를 할 때 그들은 그들의 당할 고통을 향유로 받아 드렸기 때문이다. 1970년대 80년 대 한국 현대사에서 열사들은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대 김재우 열사는 죽기 전 바로 직전 한 모임에서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를 부르고 몇 시간 후에 투신 했다.

체 게바라는 모터 사이클을 타고 돌아다니며 놀기좋아했고, 한 여인을 사랑해 자녀들 까지 둔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1959년 아바나에서 결혼한 산체즈와 체 게바라
1964년 아바나에서 세 자녀들과 함께

향유란 쾌불쾌를 공유하는 즐거움이기 때문에 진정한 원수 사랑도 가능하게 한다.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 유격 활동 중 한 농가로 내려가 호로나토 로자라는 병든 친구의 가족들을 돌보고 의료제공을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친구가 반역자가 돼 볼리비아 군에게 게바라를 밀고한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안에 파쇼와 싸웠지 인간을 미워하지 않았다.

내 안의 파쇼

동지들이여/나 역시 내 안의 파쇼가/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아니,/ 어쩌면 누구보다고 더 많을지 모른다/내가 나를 어찌 다 알겠는가/ 내가 나를 어찌 다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럴 때마다/나는 내가 들고 있는 이 총구를 본다/그 좁고 컴컴한 구멍이/마치 나의 가슴 속처럼 보인다/총알이 하나씩 빠져나갈 때마다/내 안의 파쇼도 하나씩 빠져나가리라.

쾌락의 적이 밖에 있다면, 향유의 적은 안에 있다. 향유는 그래서 적도 사랑한다. 향유할 줄 알 때만 혁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혁명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지젝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처럼 (그리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다와 빅토르 하라처럼) 게바라도 컬트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 그는 실제 업적이라는 ‘정상적인’ 기준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신성한 인물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게바라의 노래(Hasta siempre)’를 작곡한 카를로스 무에블라는 또 다른 게바라의 노래인 ‘영원한 자(Lo eterno)’에서 직접적인 예수론적 올림을 동원하고 있다.”(263쪽)

사람들은 체 게바라,/당신이 죽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하네/빛나는 별처럼/끝없이 밝은 당신의 존재/여전히 경계 태세를 갖추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지/체 게바라 사령관님, 당신 같은 사람은/역사에서나 오늘에서나/지워지지 않아요/영원한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사람 그 이상이었고/빛과 모범이었기에/민중의 마음 속에/영원히 살게 될거에요.

예수처럼 체 게바라도 고의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죽기 위해 분투했으며, 볼리비아에서 자신의 의가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슬라보에 지젝은 “순교의 고통은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상징적 회로 밖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고, 그것이 우리가 역사와 영원히 만나는 독특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지젝의 『잉여와 향유』, 264쪽에서)고 한다.

마두로여, 아직 우리는 당신을 잘 모른다. 그러나 어설프게라도 당신의 가슴 속에는 게바라의 피가 박동하고 있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부디 역사와 영원히 만나는 독특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인간은 결코 행복과 쾌락만을 추구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같은 게바라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감수하고 감내하는 것을 통해 인간은 고통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라캉은 이를 두고 ‘잉여향유’라고 한다. 뼈를 깎는 고통 속에 나타나는 향유, 그것이 진정한 삶이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체 게바라와 예수의 선택이 바로 이런 향유였다.

기독교에서 외경서라 분류되는 예수의 또 다른 복음서인 ‘도마복음 2장’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찾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마두로여, 부디 향유를 향유하시라! 그리고 부디 다시 돌아와 다스리시라!

김상일 교수

<전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