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민족에게는 전래 고유한 민족 종교의 전통이 있었다. 이를 신채호는 ‘선교’, ‘신교’ 혹은 ‘랑교’라고 했다. 그 위에 차례로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란 외래 종교가 들어 왔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는 고유 종교에 접목을 가장 잘 한 종교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는 환웅전이었다고 한다. 지금 환웅전은 삼성각과 같은 형식으로 윗자리에 밀려났지만 지금 한국 불교 사찰 경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유교의 경우는 “공자를 높이고 중국을 훼손하지 말라”는 원칙에 의해 단군이 요순보다 먼저일 수는 없는 사대주의 사관을 유지하기는 했어도 각 지방에는 부군이라는 것을 두어 관리가 지방에 내려가면 이곳을 먼저 들렸고 하늘에 천제 지내는 풍습을 지켜왔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문화전통을 뿌리째 도려내려 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우리는 아브라함 자손이다 곰자손 물러가라”고 현수막을 교회 밖에 내걸고 단군 목을 치고 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 1500여년의 우리 역사를 지켜 온 우리의 저력이다. 유교도 500년 조선조를 지켰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 땅에 들어온(1884년) 지 20년이 채 못 되어 우린 나라를 잃고 말았다. 오비이락일까. 나라 망한 원인과 기독교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본다. 나라를 나무에 비교할 때에 그 뿌리가 잘린 나무가 성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우리 문화전통과 종교의 뿌리를 뽑은 것이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했고 이것이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2. 한국에 기독교를 소개한 미국 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후예들로서 극단적인 개인 구원과 종말론에 집착하였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구호는 모두 선교사들의 입김 때문이다. 1907년 1월 장대현 교회에서의 대 부흥회는 실로 초대 교회의 오순절 운동을 방불케 했다. 2007년 한국교회는 장대현 교회의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교회가 재 부흥의 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보라. 장대현 교회의 부흥을 주도 했던 인물들이 거의 일제에 굴복, 신사 참배를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에 이름났다는 지도자 치고 신사 참배 안 한 사람 나와 봐라. 과연 몇이나 되나. 장대현 교회 부흥 때 그렇게도 열광적이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도 신사 참배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1운동 지도자 33인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15명이나 되지만 거의 다 변절하고 말았다. 내가 처음 부임한 신학교의 동문들도 5명이나 33인에 들어있었지만 다 변절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고 내가 해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단군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구체적인 빌미를 잡아 목을 치고 말았다.
33인 가운데 한 사람 그리고 장대현 교회 부흥의 주인공인 길선주 목사는 독립선언문에 서명은 하고 3월 1일 그날 양평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나라 구하는 일보다는 개인 영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국가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불참의 변이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우리 몸에 놓은 주사는 아편주사였다. 이런 아편쟁이들이 국가관과 역사관을 바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은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중에 해방 신학자들은 이런 아편 주사를 ‘위로 주의 pacification' 그리고 이런 신앙의 개인화를 '사물화 privatization'라고 했다. 이런 기독교가 나라 망하게 하는 데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소영’은 속물주의를 하나 더 첨가하고 있다.
3. 기독교의 종말론은 원래 인간이 자기 과오를 회개하지 않으면 신의 심판이 내리는 것은 마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이 시간문제라는 데서 유래한다. 교만은 그 인간의 종말이라는 것이 종말 사관의 본뜻이다. 그러나 후대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 하늘에서 예수가 올라간 모양 그대로 다시 올 것이라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만약 종말론이 이렇게 해석된다면 그 패악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곧 오는 데 독립운동은 해 무엇하고, 세상 나라는 다 없어지고 신의 나라가 곧 건설되는 데 해방은 되어 무엇 하느냐 말이다. 얼마 전 ‘휴거’라는 것이 얼마나 사회 병폐를 조장했는가는 기독교의 종말론이 끼친 나쁜 영향이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신국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불교의 승병 僧兵 그리고 유교의 의병 義兵 같은 것이 기독교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 안에서는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4. 선교사들이 심어준 사대주의 이것은 또 다른 망국의 원인이다. 불교도 유교도 경전과 사상이 먼저 들어 왔다. 기독교 선교사 같은 포교자들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들은 무슨 카나다 선교부, 호주 선교부, 남 감리교 선교부, 남 침례교 선교부 하면서 미국에 있는 선교본부의 복사판 같은 것들을 한국에 설치하고는 이 좁은 나라를 갈가리 찢어 자기들 선교 봉토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의 가장 명소에 그들의 선교 본부 건물을 지어 놓고는 그들이 사는 주거지는 그야말로 호화 별장 같았다. 과연 이들이 우리 민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 들어온 사람들일까. 그들 집에서 일하던 하우스 보이들은 영어를 남보다 잘 해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유학을 가 출세를 해 돌아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언어를 압살시키는 데 하수인 노릇을 하였다.
실로 기독교 사대주의는 유교 사대주의를 뺨칠 정도였다. 이런 선교사 앞잡이 목사들은 신사참배 선봉장들이었으며, 나중에는 친일 매국노들과 결탁하여 언제나 독재자의 최대 지원 세력이 되었다. 지금은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까지 제 입맛대로 왜곡, 반민족적 그리고 반통일적 최대 세력이 되었다. 그 뿌리는 모두 한국 초대 기독교 그 자체에 있었다.
5.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하는 신화를 만드는 장본인이 한국 기독교이다.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에 처음 당도한 토마스 목사를 강의할 때엔 한국 교회사 교수는 강의실에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토마스는 완전무장을 한 엄연히 군인이었다. 그 무엇보다 그가 군함 속에서 장사꾼들과 군인들과 한 배를 탔다는 그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 기독교가 이런 식으로 전 세계를 복음화 하려 했기 때문에 백인 선교사들은 지금 제 3세계 그 어디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오류의 전철을 지금 한국 교회가 밟고 있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복음화 하고 싶을진대 한국군 파병과 때를 맞추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그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닌 전교사일 것이다. 미국은 1904년 일본과 뒷거래를 하면서 한일합방을 허락하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삼켰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을 시켜 우리 앞에서는 일본 압제자와 우리를 위해 싸우는 양 하였다. 그리고 해방군으로 1945년 들어와 중앙청에 자기들 성조기를 올리고 무려 50년간을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 국토를 잣대 하나로 그어 갈라놓고 말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기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무기 거래 판매처로 만들어 놓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방해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동맹국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최대 가해자를 천사로 둔갑시키고 우리의 바른 판단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이고 ‘고소영’의 가운데 글자이다.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개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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