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저녁
이 월 춘
할 일 없이 어제를 보냈고
하릴없이 오늘을 걷는다
한나절의 어깨를 밟고
남은 한나절이 들썩이고 있다
누가 뭐라 하는가
어디쯤에서 나아가고 물러섰는가
이별의 어떤 손짓도 없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그런 날이 있지
몸 안의 길이 환해지는 그런
불행과 불우를 다 끌어안은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저녁
- 시향 제22호, 시향문학회, 경남
시 해설
시의 표현을 살피자면 ‘할 일 없이 어제를 보냈’다 함은 별다르게 ‘한 일 없이 어제를 보낸’ 것이며 ‘하릴없이 오늘을 걷는’데 불가피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을 걷는 것으로 어제처럼 오늘도 특별히 할 일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제도 하루요 오늘도 하루임을 바탕으로 보면 ‘한나절의 어깨를 밟고 남은 한나절이 들썩이고 있다’ 함은 하루 중에서 낮과 밤이 바뀌려고 함을 나타낸다.
낮과 밤이 계속 순환하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뭐라 하는가 어디쯤에서 나아가고 물러섰는가’, 그 경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시인이 묻는다. 음과 양, 선과 악도 상반되면서 늘 마주 보고 서 있음을 시인은 훤하게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시 현실을 직시해 보면 화들짝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시간을 가늠해 보면 무한정 남은 것 같지도 않고 다 이루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 새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고 없는 이별의 순간도 있으니 말이다. 시인은 달관한 것 같다. ‘그런 날이 있지 몸 안의 길이 환해지는 그런’ 날이 있음을 통찰하고 있다. 행복에 겨워하던 저녁도 있었고 ‘불행과 불우를 다 끌어안은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저녁’도 겪는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