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구석
이 정 희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고 느낄 때
구석은 얼마나 옹크리기 좋은 곳인가
구석은 모든 난간의 안식
불가항력과 자포자기를 모색하기 좋은
벽을 마주 보고 앉았다는 말은
벽도 앞이 있다는 뜻이겠지
앞을 놓고 보면 깊은 뜻 하나
싹 틔우자는 뜻일 테고
귀를 틀어막고 등지고 앉으면 슬픔 가득한
밀리고 밀린 뒤끝이란 뜻이겠지
닭장 문을 열면 닭들이 구석으로 몰리는 것은
막다른 구석도 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한밤중 옥상에 나가면 흔들리는
이곳저곳에서 붉게 빛나는
저 퇴로를 자신하는 구석들
어둠이 숨겨놓은 문이 있다고 확신에 찬 구석들
흐릿한 별들의 바탕, 무표정한 하늘
너무 먼 그곳을 구석이라 여기지만
한밤에 구석을 찾지 못해 우는 사람들
적막과 대치 중인 이 골목은
한 사람의 발등을 막 넘어선 구석
- 문학인신문, 2025, 제135호
시 해설
‘구석’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어두운 곳을 다 밝혀낸 것 같은 이정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 정말로 우리는 구석이 없으면 얼마나 도피할 곳도 쉴 곳도 없는 조명등 아래의 죄수 신세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고 느낄 때 구석은 얼마나 옹크리기 좋은 곳인가’는 그중 하나의 위안이다. 거기서 숨고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믿는 구석인가.
벽 하나 두고 바라보면 벽도 바라보는 앞은 있는 것이니까 돌파구가 있는 셈이다. 정면을 주시할 수 있으면 ‘깊은 뜻 하나 싹 틔우자는 뜻’이고 돌아앉아 귀 막고 있으면 ‘밀리고 밀린 뒤끝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구석에 가더라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자멸한다는 것이다. 양계장 문을 열면 닭들이 구석으로 몰려가는데 ‘막다른 구석도 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다시 나오지 않으면 구석은 퇴로이면서 그냥 벼랑인 것이다.
‘어둠이 숨겨놓은 문이 있다고 확신에 찬’ 사람들이 구석을 찾아내지만 ‘한밤에 구석을 찾지 못해 우는 사람들’이 있다. 한밤은 절망과 어둠을 상징한다. 그 깜깜한 상황에 더 갈 구석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구석구석 다 찾아도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믿는 구석이 없는 사람의 절망을 이해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시인의 뜻이 전달된다. ‘적막과 대치 중인 이 골목은 한 사람의 발등을 막 넘어선 구석’이지만 결국에는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구석을 지켜보고 손을 내어주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