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문 신

단추를 잃어버리는 일은// 앞섶이든/ 소맷부리든

작은 우주선 하나가 망망한 은하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어제보다는 깊숙하게,
애매하게,
원반을 굴리듯 불시착을 선언

가차 없이, 뜯어지는 실낱보다는 튿어지는 실날을 더 사랑한 까닭에/ 오늘 단추 없는 살림은 얼마나 뿌듯하든지....

우매하도록,
연착륙의 순간을 저울질하던 단춧구멍 같았던 날들이여....

그 질색 같은 구멍 속에서 우리의 살림이 달그락거렸다는 것과
그 이판사판의 구멍으로부터 우주가 해방되었다는 걸
알아채는 날들이 금세기에는 도래할 수 있을까?

모든 해방은 구멍에서 비롯한다, 같은
이런 말은 대개 난제로 남은 수학 문제처럼 발칙한, 천재의 탄생을 점지한다는데

언제든 잃어버림으로써 옳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앞섶 같은 격언과/ 비싸게 굴어봐야 암암리에 떨이로 취급될 거라는 소맷부리의 예언 사이에서

단춧구멍의 난산을 견뎌낸 단추의 행방불명, 거듭 한심한 살림처럼// 단추가 남긴 단춧구멍의/헐렁한/ 헐거운// 이 없는 잇몸이려니, 빨랫줄에 교수형의 자세로 견디는 봄날의 의복 한 벌

단추도 없이/ 마르기도 잘도 마른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마땅한 나날들 속에서

- 문학인신문, 2025, 제131호

시 해설

단추는 연결해 주면서 안을 보호해 준다. 실이 낡아지고 갑자기 당겼을 때 단추는 저 먼 곳으로 던져지지만 갑작스러움보다는 사전에 그 조짐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단추가 ‘가차 없이, 뜯어지는 실낱보다는 튿어지는 실날을 더 사랑한’다 했다. 가교역할을 해 주는 단추가 없어도 되는 여유로움을 즐길 때 ‘단추 없는 살림’이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팍팍한 삶을 살아간다. 참고 절제하며 부어야 하는 적금 같은 삶을 하나하나 끼면서 이루어 내는 ‘저울질하던 단춧구멍 같았던 날들이’ 있다. 그 단추 구멍 속에서 ‘우리의 살림이 달그락거렸’고 ‘그 이판사판의 구멍으로부터’ 벗어나면 해방을 맛본다. 그걸 다 알아채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처럼 ‘모든 해방은 구멍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며 단추가 남긴 단춧구멍의 헐거움이 있어서 빨랫줄에 의복이 걸리고 단추가 없어야 옷은 더 잘 마른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마땅한 나날들 속에서’ 제 구멍을 순서대로 찾은 단추들이 세상을 보고 있다. ‘내부의 보물 보호 중’ 팻말은 이제 부착하지 않기로 한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