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다가오는 한 해는 총기(guns, 안보·군사적 도전), 경제 성장, 녹색 전환(greenery, 환경·기후 대응)에 달려 있다.
유럽은 사방에서 압박을 받으며 2026년에 들어선다.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하는 러시아에 맞서 군사력을 재건할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동시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수년간 부진했던 경제 성장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불만에 찬 유권자들이 정치적 극단주의로 더욱 기울어질 위험이 있다.
또한 기후 변화 대응 목표를 완화하거나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포퓰리즘 우파 세력의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도 녹색 전환(환경·기후 대응)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 과제들은 각각만으로도(하나하나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차라리 악몽과 같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수십 년간의 안일함(러시아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안보에 무심했던 태도)을 산산조각 냈고, 그 군사적 위협(러시아의 호전적 행동)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는 점점 더 도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발트해에서 해저 케이블을 절단하고, 유럽 전역에서 사보타주(sabotage, 파괴공작)와 암살 작전을 벌이며, 드론을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보내고, 전투기를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NATO 영공을 침범하게 하고 있다. 이 모든 행위는 2026년에도 지속될 것이며,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동맹국에 대해 보이는 모호한 태도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고, 푸틴은 NATO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한계를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의 모든 NATO 회원국은 2014년에 설정된 국내총생산(GDP)의 2%라는 국방비 지출 목표를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목표가 등장했다. 2025년 정상회의에서 3.5%라는 기준이 정해진 것이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원국은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설명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가장 과감한 나라는 독일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국방비를 독일의 부채 한도(Schuldenbremse, 독일의 ‘부채 억제 장치’ 혹은 ‘재정준칙’)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 제도를 활용해 2029년까지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스페인은 새로운 목표치에 아예 구속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026년 유럽은 냉전 이후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국방비를 지출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안보·외교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옮긴이 주)에는 여전히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2026년은 국방비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추가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적으로 전쟁 초기 3년 동안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매년 500억 달러씩 지원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지원은 말라버렸다. 설령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앞으로도 수년간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2026년, 정치인들은 이러한 현실과 직면해야만 할 것이다.
2026년은 유럽 경제에 또 하나의 시험의 해가 될 것이다(이미 몇 년 동안 성장 부진을 겪어온 유럽 경제가 2026년에도 다시 경제가 어떻게 될지를 시험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뜻-옮긴이 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완화되고, 금리도 조금씩 내려가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부진하고 국방비 증액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산성 증가율은 정체되어 있고, 고령화된 노동력은 생산량 감소를 초래하고 있으며, 벤처 투자와 일자리는 미국과 아시아로 흘러가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의 GDP 대비 부채 비율(Debt-to-GDP ratio)은 100%를 넘어섰다.
공공재정은 팬데믹으로 인한 부채, 녹색 보조금(green subsidies, 기후·환경 전환을 위한 정부 지원금), 그리고 이제는 국방비 지출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다. 이 압박은 2026년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취약한 정부들이 복지 지출 삭감을 강제로 추진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고, 세금 인상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 총선(snap parliamentary election, 임기 중 돌발적으로 치러지는 의회 선거)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새로운 인프라 투자 계획인 5천억 유로(5,890억 달러) 규모의 자금 투입은 분위기를 조금 바꿔놓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도로, 철도, 전력망 건설은 민간 투자를 끌어들일 것이다. 유로존 전체적으로는 성장률이 소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25년의 0.8%에서 2026년에 1.2%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수출업자들은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여전히 높은 관세에 직면할 것이다.
2026년 주목해야 할 세 번째 고통스러운 압박은 기후 정책(climate policy,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 대응을 위한 정책)이다. EU의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이민 축소와 함께 녹색 정책(green policy, 기후·환경 대응 정책)에 대한 반대는 EU 전역에서 세를 넓히고 있는 강경 우파(hard right, 극우 정치 세력)의 특징이다.
2035년까지 신규 휘발유 차량 판매 금지, 2050년까지 단소 순배출 제로(net-zero emission, 배출량과 흡수량을 맞춰 탄소 배출 ‘실질적 제로’ 달성) 목표는 점점 더 달성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2026년에 발효 예정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border-adjustment mechanism, 탄소 집약적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다가오는 해에 각국 정부들은 기후 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강경 우파 정당인 국민연합(National Rally)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에는 그 재검토가 더욱 불가피할 것이다.
유럽은 과거에도 재난(calamity, 경제·사회적 위기)을 기회(opportunity, 제도적·정책적 진전)로 바꿔온 적이 있다. 유로 위기(euro crisis, 2009년 이후 유럽 재정·금융 위기)는 은행동맹(banking union, 유럽 은행 규제를 통합하는 제도)과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금융 위기 시 은행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는 기관)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게 했다.
팬데믹(pandemic, 코로나19 대유행)은 공동 차입(joint borrowing, EU 회원국들이 함께 채권을 발행해 재정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방 통합(defence integration, 회원국 간 군사력·방위 정책을 공동으로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촉발했다.
2026년에는 이만큼 대담한(bold, 제도적·정치적 큰 도약) 변화가 나타날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크리스 록우드(Chris Lockwood), 『The Economist』 유럽 담당 편집자 -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