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을 둘러싼 이른바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은 그 내용 자체보다도 그 의혹이 등장한 시점과 방식이 훨씬 더 큰 물음을 던진다. 의혹은 단단한 물증이나 구체적 사실관계에 기반한 폭로가 아니었다. 수사기관의 확인을 거친 정황도 없었다. 누군가의 기억에 기대고,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진술이 언론을 타고 흘러나온 데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확대했고, 정치권은 사실관계의 무게보다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앞세워 프레임을 만들었다. 진실보다 이미지가 먼저 유포되는, 너무 익숙한 정치적 공작의 방식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시점이 수상하다. 전재수는 부산에서 보기 드물게 경쟁력 있는 민주당 정치인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내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현실적인 후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온건한 이미지, 지역 기반, 중도층 확장력, 해양·항만 정책 역량 등 여러 장점을 갖춘 인물이었다. 보수 일색의 부산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을 갖춘 몇 안 되는 정치인이 전재수였다. 이런 인물에게, 그것도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근거가 불투명한 의혹이 터졌다는 사실은 너무 도식적이다. 누군가는 출발선을 흔들어 놓고 싶어 했다. 선거판을 재편하려는 의도가 작동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치 공작의 고전적 기술은 단순하다. 선거에서 멀리 떨어진 시점의 폭로는 효과가 크지 않다. 반론이 가능하고, 사실관계 검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가 눈앞에 다가온 시점의 의혹 제기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후보의 신뢰를 흔드는 데 집중된다. 이번 의혹 역시 바로 그 전형을 따라간다. 물증은 없고 진술만 흘러나오고, 언론은 이를 반복적으로 확대하며 이미지를 고착시키고, 정치권은 사실보다 이미지를 근거 삼아 공격을 정당화한다. 시간이 지나 뒤늦게 무혐의가 밝혀져도 이미 선거는 끝나 있다. 이 프레임을 설계한 세력은 그 ‘시간차의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민주당 내부의 미묘한 역학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는 단순히 단체장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정당 내부의 권력지형을 재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재수라는 확고한 후보가 자리를 잡으면 누군가의 공간은 좁아지고, 새로운 기회는 사라진다. 내부 경쟁자들의 불안, 지역조직의 복잡한 이해관계, 중앙당과의 미묘한 거리감 등이 엇갈리며 의혹이 증폭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치에서 가장 예리한 공격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이번 의혹은 확산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흘러나왔다는 소문만으로 언론은 대대적으로 재생산했고,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여론을 선제적으로 흔들었다. 오랜 기간 지역에서 신뢰를 쌓아온 정치인의 이미지는 단 몇 줄의 기사로 흔들리고, 사실관계는 뒤로 밀렸다. 이는 자연스러운 의혹 제기가 아니라 누군가 미리 설계한 여론전의 패턴과 닮아 있다. 부산시장 선거는 보수·진보의 단순 구도가 아니라 중도층의 선택이 승부를 가르는 선거다. 중도층은 ‘뭔가 있는 것 같다’는 흐릿한 인상만으로도 손쉽게 흔들린다. 바로 그 점을 정확히 노린 의혹 제기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의혹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낸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2018년 전재수 의원에게 현금 4000만 원과 명품 시계 두 개를 전달했다는 주장을 했고, 같은 해 9월 통일교 내부 보고서에는 전재수가 부산 5지구 행사에서 600명 앞에서 축사를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전재수 장관은 해당 날짜와 시간을 직접 확인해보았고, 그 시각 그는 부산 북구의 한 성당에서 60주년 기념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찍힌 사진과 명확한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거돈·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는 통일교 측 주장도 사실과 전혀 맞지 않았다.
전 장관은 “내가 특정 단체의 행사에서 600명 앞에서 축사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 축제처럼 천 명 단위의 군중이 모이는 공개 행사라면 모를까, 폐쇄적인 종교 행사의 초청 연설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통일교가 주장한 ‘한일해저터널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그간 해저터널을 일관되게 반대해온 사람이 나”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통일교 내부 보고서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썩어 빠져 있다. 실제로 없던 일을 한 것처럼 위로 보고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그의 태도는 더욱 명확하다. “해명 구조가 간단하다. 돈과 시계가 실제로 나에게 왔는지, 안 왔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사실의 핵심은 단 하나이며, 자신은 그 부분에서 누구보다 당당하다는 메시지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재수 장관이 장관직을 내려놓고 정면 돌파를 선언한 결정은 가볍지 않다. 많은 정치인이 자리를 지키며 방어적 태도로 시간을 끄는 것과 달리, 그는 스스로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흔들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더 투명한 공간에서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확신이자, 의혹의 성격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획된 흔들기라면 오래 갈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스캔들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부산시장 선거의 판도와 정치 지형 전체를 흔들려는 거대한 움직임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진실 규명만이 아니다. 왜 지금, 어떤 경로로, 누구의 필요에 의해 이런 의혹이 등장했는지까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정치가 정교할수록 그림자는 더 얇고 매끄러워진다. 그러나 진실의 빛은 결국 그 그림자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은 하나의 결론을 향해 모이고 있다. 누군가는 전재수를 부산시장 선거판에서 미리 제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의혹은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찢어진 계산표 위에서 기획되고 작동된 흔적이 짙다. 하지만 흔들기로 무너뜨릴 수 없는 사람을 향한 흔들기는 오래갈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당당함과 진실, 그리고 그 지점까지 끝까지 걸어가려는 정치인의 태도뿐이다. 전재수는 지금 바로 그 길을 선택했다.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