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센터 부산분관이 들어선 이기대 예술공원 개념도 [부산시 제공]
부산시가 최근 발표한 ‘퐁피두 센터 부산 분관 설치’ 계획은 언뜻 보기엔 부산을 국제적 문화예술 도시로 도약시키겠다는 야심찬 비전처럼 보인다. 연면적 약 1만5000㎡, 총 사업비 1,099억원을 들여 2031년 개관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단순한 ‘문화 공간 확충’이 아니라 시민의 알 권리와 참여권, 지역 예술 생태계의 자율성, 공공 재정의 책임성, 그리고 자연환경 보존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의 문제는 심각하다. 부산시와 퐁피두 측은 2023년 10월 당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협약서를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했고 그 내용을 대외비로 분류하여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이를 두고 “밀실행정”이라 규탄했다. 이 협약에서는 향후 분쟁 시 프랑스 법과 국제중재법원 규정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공개되었다. 이는 한국의 공공문화시설을 한국 사회가 아니라 외국법 체계에 종속시키겠다는 것으로, 시민의 세금과 공공자산이 낯선 제도 아래에서 운영될 수 있다는 위험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이후 조약의 원어 계약을 한국어를 포함한 형태로 바꾸겠다고 언급했지만, 그 ‘기본계약’ 또한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 세부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산의 공공 정책이 외국 브랜드의 조건에 종속되는 것은, 공공문화의 주권을 포기하는 행정의 실패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 예술 생태계와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무시다. 부산시와 일부 관계자들은 퐁피두의 이름값과 국제적인 브랜드, 그리고 이런 '랜드마크 미술관'이 부산을 글로벌 도시에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내세운다. 그러나 지역 시민단체와 문화계는 이미 존재하는 부산시립미술관과 각종 지역 미술 공간을 활성화하고, 한국과 아시아의 역사와 지역 맥락, 동시대 예술을 반영하는 ‘아시아 미술관’으로 키우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2025년 초, 14개 시민사회·문화단체가 모여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1900년대 근대와 아시아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방식이 세계적 미술관의 정의에 맞다”며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퐁피두라는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 기관을 수입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역 문화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왜곡하거나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외국 미술관의 브랜드와 컬렉션에 기대는 것보다, 지역 예술가와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중심에 놓는 자생적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결국 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문화 도시의 길이다.
재정적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부산시의회에서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이 통과되었지만, 반대 시의원은 “연간 운영 수입은 약 50억 원에 불과한 반면, 지출은 126억 원에 달해 매년 70억 원대 구조적 적자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전시 대여료, 보험료, 로열티, 운송비 등 제반 비용을 시가 부담한다는 계약 조건도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미술관을 단순히 ‘세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재정적 부담이 이어질 것이 자명한 데, 예상 수익이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면 시민의 세금과 공공 재정으로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그것도 부산의 다른 문화·복지·환경 예산보다 우선하여 말이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자연환경과 공간의 가치 훼손이다. 계획된 부지는 이기대 예술공원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 바다로 이어지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해양 생태계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환경단체는 이곳을 “귀중한 자연유산”이라 부르며,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된 대형 미술관이 들어서는 것은 생태계 파괴이며, 인간 중심의 공간 재편이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실제 시민단체들은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공원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파괴하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상업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문화 공간’을 만든다는 이유로, 시민들이 누리던 자연과 공공 녹지가 사라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이 사업이 누굴 위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과연 이 사업은 부산 시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외국 브랜드와 관광 산업을 위한 것인가. 만약 단순히 ‘랜드마크’, ‘국제적 이미지’, ‘관광객 유치’라는 명분만으로 추진된다면, 그 대가는 시민의 세금과 자연, 그리고 지역 문화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이 사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시민과 주민, 지역 예술인,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개토론회와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양해각서와 계약서 전부를 공개하고, 협약 조건 특히 로열티, 대여료, 보험료, 운송비 등 유지·운영 비용 부담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동시에 이기대 지역의 자연환경 보호를 최우선으로 놓고,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거나 철회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의 문화 정책은 외국 브랜드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역 맥락과 역사, 주민의 삶을 중심에 두는 ‘자생적 문화 생태계 강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이 진정으로 문화예술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우리의 자연과 시민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퐁피두 부산 분관 프로젝트는 지금 당장 멈춰야 마땅하다. 나도, 많은 시민도, 이 사업이 과연 부산과 시민을 위한 것인지 깊이 의문을 품고 있다. 박형준 시장은 마음을 열고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주길 바란다.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