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이 마침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부산시는 “바다와 강,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도시의 완성”이라고 자찬했고, 언론은 ‘최초의 도심형 국립공원’이라며 반겼다. 그러나 나는 이 화려한 문장들 속에서 묘한 불안을 느낀다. 자연이 국가의 제도 속으로 편입되는 순간, 그 산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완성’이라는 말은 언제나 인간의 시선에서 나온다. 자연에게 완성이란 없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낙엽이 떨어지면 다시 싹이 돋는다. 그 끝없는 순환이 곧 자연의 존재방식이다. 그런데 인간은 늘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한다. 지정하고, 규정하고,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자연을 제도 속에 묶는다. 이번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도, 나는 그 아름다운 포장 속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본다.

금정산은 이미 오랫동안 부산 시민의 산이었다. 도시의 숨이 막힐 때마다 사람들은 금정산을 찾았다. 땀 흘리며 오르는 등산로 곳곳에는 삶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 절벽 아래서 숨을 고르며 바라보는 낙동강의 물결,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들. 그 모든 것이 도시의 소음과는 다른 질서로 존재했다. 그 질서는 행정의 계획표나 구획선으로 표시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산은 ‘도심형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말만 들어도 어딘가 모순적이다. ‘도심형 자연’이라는 표현처럼, 인간의 언어가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국립공원이라는 제도는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국가가 자연을 ‘관리’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 순간 자연은 더 이상 스스로의 질서로 존재하지 못하고, 행정의 절차와 규제의 언어 속에 갇히게 된다.

물론 이번 지정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생태계를 보전하며,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그러나 동시에 그 보호는 인간의 편의에 맞춰진 보호일 뿐이다. ‘생태관광’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연을 경제의 언어로 환산하고 있다. 산의 가치가 사람의 방문객 수로 계산되는 순간, 그곳은 이미 공원이라기보다 ‘자연 테마파크’가 된다.

지난달 5일 금정산에서 필자

금정산의 사유지 비율이 79%에 이른다는 사실은 더욱 깊은 고민을 던진다. 산 아래에 터전을 두고 살아온 이들에게 국립공원 지정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생업의 제약이자 행정의 간섭이 될 수 있다. “보호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때로 삶의 권리를 억압하는 명령이 되곤 한다.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의지가 사람의 존재를 배제할 때, 그 보존은 이미 모순이다. 진정한 보전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길이어야 한다.

나는 행정이 말하는 ‘상생발전 협약’이 진정한 상생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상생은 개발 이익의 분배나 관광객 유치의 숫자로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 산속에서 흙을 일구는 이들, 오랜 세월 금정산을 지켜온 범어사와 같은 공동체, 그리고 그 산을 매일 바라보며 살아가는 시민들의 마음이 함께 어우러질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금정산은 오래전부터 침묵 속에서 사람을 품어왔다. 그 침묵은 말보다 깊고, 행정보다 오래간다. 이제 그 산은 제도의 이름 아래 놓였지만, 여전히 그 품속에서 바람은 분다. 나는 그 바람이 인간의 언어를 뚫고, 다시금 자연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바란다.

진정한 국립공원은 법령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완성된다. 도심의 빌딩숲 사이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산의 고요를 배울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금정산은 진짜 ‘국립공원’이 될 것이다.


금정산의 아침

박철

동녘이 열리면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고당봉 바위 끝에
햇살 한 줄기 앉는다

밤새 들숨날숨 이어온
솔바람의 노래
그 사이로 종소리 한 자락
범어사 마당을 지나간다

돌계단을 오르는 이의 숨결마다
새날의 기도가 묻어나고
옛 성곽 돌틈 사이로
세월이 이끼처럼 눕는다

금빛 물고기 전설처럼
샘물은 여전히 반짝이며
우리의 얼굴을 비춘다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서
나는 오래된 위로를 듣는다.
“너도 잠시 머물다 가거라 -
이 빛, 이 바람처럼.”

그리고 나는 잠시 멈춰 선다
손끝에 닿은 바위의 온기 속에서
지나온 날들이 조용히 흔들린다
저 아래 도시의 소음도
이 순간엔 기도로 들린다

박철 목사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