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개 시민·환경단체의 난개발 특혜법 산불특별법 공포 규탄대회 [그린피스 제공]

1. 서론: 회복인가, 개발인가

2025년 10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와 재건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은 언뜻 보면 피해지역 주민을 돕고 산림을 회복하기 위한 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 이름과 목적과 달리, 법은 실제로는 지자체와 민간 개발자의 권한 확대를 합법화하고, 산림과 생태계를 훼손할 길을 열어놓았다. 산불 피해를 정치적·행정적 기회로 삼아 ‘개발 패키지’를 포장한 것이 이번 법안의 핵심 문제다.

법안 발의부터 통과까지,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러한 경고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법은 곧바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행정 편의나 입법 과정의 속도에 있지 않다. 이 법이 내포한 구조적 결함과 난개발 우려는 생태계와 주민 삶의 근본적 권리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정치와 행정, 법과 생태적 윤리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 산불특별법의 구조적 결함: 개발 특례와 권한 집중

산불특별법 제41조부터 제61조까지는 사실상 ‘산림투자선도지구 개발 패키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골프장·리조트·호텔·관광단지 같은 민간 개발사업을 공익사업으로 둔갑시키고, 환경영향평가 심의기간을 45일로 단축해 검토 절차를 무력화한다. 제55조는 민간사업자에게 토지를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제56·57조는 보전산지의 행위제한과 보호구역 지정 해제를 가능케 한다.

제30조는 산림 소유자의 동의 없이 ‘위험목 제거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해 사유재산권과 생태적 회복권을 침해한다. 이러한 조항은 ‘재건’을 명분으로 한 개발 권력의 폭주를 제도화하고 있다.

지자체 중심의 자기심의 체계도 문제다. 선도지구 지정과 승인 심의가 시·도지사와 산하 심의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중앙정부의 실질적 견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부처 협의 역시 단순 통보 절차에 불과해 난개발을 방지할 수 있는 실효적 장치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는 정책의 목표와 달리, 개발 권력을 집중시키고 생태적 통제를 약화시키는 법적 토대가 된다.

불탄 숲 현장 [울주군 제공]

3. 행정과 정치의 괴리: 거부권 포기와 책임 회피

이재명 대통령이 산불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행정편의와 지역개발 논리에 밀린 결정으로 읽힌다. 불탄 숲 위에 골프장과 리조트를 세우는 것이 과연 재건인가. 대통령과 정부가 ‘회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말하지만, 법은 오히려 보호지역 해제와 산지 훼손, 주민 소외를 합법화한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이번 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치적 명분과 행정적 속도는 강조되지만, 실제 생태 회복과 주민 삶의 복원이라는 정책 목표는 무력화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육상 보호지역 30% 지정’이나 ‘산불 피해지역 생물다양성 복원’ 목표는 이번 법안 구조 아래 실현 불가능하다. 이는 정치적 약속과 정책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4. 개발과 회복 사이의 생태윤리적 질문

산불 피해 지역의 회복은 단순한 인프라 복구나 경제 지원으로 달성될 수 없다. 불탄 숲과 훼손된 산지는 인간의 편리와 경제 논리로 복구될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있다. 골프장, 리조트, 관광단지는 그 상처 위에 세워지는 ‘속도와 효율’의 상징이며, 피해 주민과 생태계는 개발 명분 속에서 소외된다.

진정한 회복은 주민과 숲, 생태계의 상호적 관계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재건이 아니라, 생태적 복원과 지역 사회의 권리 회복을 포함한다. 개발 패키지에 기반한 ‘재건’은 생태적 가치와 주민 자율권을 희생하며, 정치적 편의와 행정적 속도를 우선하는 구조적 폭력으로 읽힐 수 있다.

5.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역할: 독소조항 감시와 참여

법의 독소조항을 규탄하는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목소리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이는 민주적 절차와 생태적 책임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경고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형식적 절차와 자기 면피적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관계기관 협의가 단순 통보가 되고, 환경영향평가가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시민사회와 전문가의 감시가 없다면 숲과 주민의 권리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쉽게 배제될 수 있다.

시민사회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법의 시행령과 적용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독소조항의 실제 적용과 그 영향은 법 조문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현장의 목소리와 데이터에 기반한 지속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6. 결론, 개발과 회복의 거짓말을 넘어서

불탄 숲 위에서, 개발과 회복 사이의 거짓말이 드러난다. 정부와 정치권이 강조하는 ‘속도’와 ‘효율’은 회복의 시간을 압살하고, 시민과 주민의 동의를 형식적 절차로 대체한다. 산불 피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무책임과 정치적 편의가 만든 생태적 위기다.

숲과 인간의 회복은 정치적 선언이나 개발 특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회복의 길을 안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통제 장치와 주민 참여, 생태적 고려가 핵심적 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법의 본래 취지를 되살려, 속도와 효율보다 회복과 생태적 정당성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이를 끝까지 감시하며, 숲과 인간의 상호적 회복이 정치와 법의 중심에 놓이는 날을 요구할 것이다.

박철 목사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