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대 종교인 DMZ 평화대행진 [사진 출처 = 생명평화순례준비위]

나는 오래전부터 이 나라가 영세중립국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래 왔다. 이 땅은 수많은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생존을 강요받아 온 땅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언제나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외세의 침략과 강대국의 각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자주적 선택보다 타인의 계산에 의해 흔들려 왔다. 해방 이후의 분단은 이 땅을 다시 전쟁의 최전선으로 만들었고, 냉전의 이데올로기는 한 민족의 동질성을 갈라놓았다. 지금까지도 남북은 군사적 대치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휴전선, DMZ, 매년 반복되는 군사훈련과 군비 경쟁. 이 현실은 청년들로 하여금 여전히 총을 들게 하고, 부모들로 하여금 아들의 입대 앞에서 눈물을 삼키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언제까지 이 나라의 젊음이 전쟁의 인질로 남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우리의 미래가 총구의 그림자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영세중립국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코스타리카 같은 나라들은 이미 그 길을 걸어왔다. 스위스는 19세기부터 중립을 지켜왔고,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립을 선언하며 강대국 사이에서 자율적 국가의 길을 열었다. 코스타리카는 아예 군대를 폐지하고 교육과 복지에 투자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의 모범이 되었다. 이들의 사례는 작지만 강한 나라가 군사력이 아닌 평화의 힘으로 존중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대한민국이 영세중립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군비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전쟁이 아닌 평화의 축 위에 올려놓는 결단이다. 만약 한반도가 중립을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보장을 받는다면, 이 땅은 더 이상 동북아 갈등의 화약고가 아니라 협력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이 한반도를 끌어들이려 경쟁하는 대신, 평화적 협력의 교두보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영세중립은 우리 사회 내부에도 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청년들이 군대에서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기술을 익히며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창조적인 나라로 성장할 것이다. 군비 경쟁에 쓰이던 막대한 예산은 교육, 과학기술, 복지, 환경에 투자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비는 연간 61조 원이 넘는다. 이는 GDP의 약 2.3%로,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더 늘리라 요구한다. 동맹국들이 GDP의 5%를 국방비로 써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금액은 132조 원에 이른다.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가진 나라가 평화를 위한 투자보다 전쟁 대비에 두세 배의 비용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 돈이 청년의 교육과 노인의 복지, 기후 위기 대응, 지역 균형 발전에 쓰인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과 미래가 더 따뜻하게 숨 쉴 수 있겠는가.

나는 영세중립국 대한민국을 상상할 때마다, 철조망이 걷힌 DMZ 위로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그곳이 세계인들이 찾는 평화의 성지가 되는 모습을 떠올린다. 군사분계선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길이 되어, 관광객과 학자, 예술가들이 넘나드는 국제적 교류의 장이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전쟁 위험 지역’이 아니라, 인류가 평화와 공존을 배우는 학교가 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영세중립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단지 한 국가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운명이자,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70년 넘게 이어진 전쟁의 위협 속에서 이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더 이상 군사력의 경쟁으로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고, 불안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도 없다.

영세중립은 먼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 전략이며,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존엄을 향한 도전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전쟁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나라로, 세계가 존경하는 평화의 중심지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2025 7대 종교인 DMZ 평화대행진 [사진 출처 = 생명평화순례준비위]


영세중립국의 꿈

박 철

나는 바람 속에서,
총성과 경계가 아직도 숨 쉬는 땅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철조망 너머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새벽빛,
그 빛 아래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잠시도 멈추지 못한다.
군복에 감춰진 젊음이
언제나 희생으로 이어지는 현실,
나는 그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강 위에 걸린 다리 위에서,
산맥과 평야가 겹쳐진 이 땅을 바라본다.
우리의 언어와 노래가,
우리의 마음과 손길이
누군가의 힘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누군가는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는 침묵한다.
그러나 나는,
그 침묵 속에서도
우리 땅 위에 영세중립의 꿈을 심는다.
그 꿈이 자라
철조망보다 단단하게,
폭력보다 투명하게
우리 앞에 평화로 서기를.

나는 대한민국의 영세중립국을 희망한다.
총성이 멈추고,
청년들이 군대에서 젊음을 잃지 않고,
바람과 햇살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그날을 희망한다.

박철 목사

<박철(감리교 은퇴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