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바르게 살아갈 윤리의 핵심은 초등학교 도덕책에 다 나와 있다고들 하던데, 어쩜 생활의 지혜는 속담에 다 표현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곡절이 없는 세상사가 어디 있겠냐만, 울퉁불퉁한 일을 겪고 일단은 겨울 밤낮을 덥혀줄 땔나무, 나무 팔레트(wood pallet)를 1톤 트럭 두 차분을 마당에 부려놓았다. 미리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든든했다.

한데 아궁이 가까이 팔레트를 갖다 놓은 것만으로는 군불을 때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 팔레트를 해체해야 땔감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팔레트는 창고나 물류 센터에서 대량의 물품(상품)을 쌓아둘 때 밑바닥에 까는 밑받침이다.

하여 튼튼하다. 나무 재질도 낙엽송이나 미송으로 단단하고 무겁다. 해체해서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피면 불땀이야 좋겠지. 문제는 해체 작업이다. 못질을 촘촘히 해댄 데다가 깊이 박아서 못대가리가 아예 나무속에 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기계톱으로 나무판대기를 썰어 버리면 쉬운 일이겠으나, 사용할 일도 드물고 위험하기도 해 집에 기계톱이 없다. 재를 거름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못을 뽑아내야 한다. 톱과 장도리는 있다. 장도리는 한쪽은 망치 역할을 하고, 반대편은 갈고리 모양으로 못뽑이 역할을 한다.

못대가리가 조금이라도 튀어나와 있으면, 장도리로 용을 쓰면 그럭저럭 못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아예 나무판대기 속에 묻혀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찌해야 하나? 이런 생각 저런 궁리로 머리를 굴리다가 탁 무릎을 쳤다. 그렇다. ‘빠루’가 답이다.

빠루는 쇠 지렛대이다. 갈고리 모양의 납작한 끝을 못질이 된 나무판 사이로 끼워 넣어 손에 쥔 부분을 힘을 주어 누르면 못이 뽑히면서 나무판이 올라온다. 다시 올라온 나무판을 탁탁 두드리면 나무판은 내려가고, 못대가리가 드러난다. 대가리가 솟아난 못을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당장에 쿠팡에 빠루를 주문했다. 길이 4자짜리가 7천원이고 배송료가 5천원이다. 그 쓰임새와 내 필요를 감안하면 무척 싸게 먹힌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 초등생일 때 빠루가 집에 있었고, 사용해 본 적도 있다. 그 이후론 빠루를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거의 없을 성싶다. 공사 현장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대체로 그러지 않을까? 한데 빠루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다. 왜 그럴까? 한참 그 이유를 더듬다 보니 아차 싶었다. 그렇다! ‘나빠루’!

경제학의 개념 중에 ‘외부효과’(externality)라는 게 있다. 어떤 행위가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이익이나 피해를 주지만, 그 결과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 외부효과는 긍정적일 때도 부정적일 때도 있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어떤 행위가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다. 예컨대 한 기업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여 신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기업이 이를 모방하거나 응용해 산업 전반의 효율성이 올라간다.

부정적 외부효과는, 어떤 행위가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이다. 예컨대 공장이 연기를 배출하면, 근처 주민이 건강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공장은 그 피해 비용을 직접 부담하지 않는다.

경제학을 원용해, 개인의 일상도 ‘외부효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취미로 자기 집 정원을 가꾸면 동네 미관이 좋아지고 이웃사람들도 보기가 좋다. 전염병 예방접종을 하면 나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될 확률도 줄어든다. 긍정적 외부효과이다.

반면에 자동차를 몰면 편리하지만, 대기오염과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 길거리 흡연도 주위 사람에게 간접흡연의 피해를 준다. 부정적 외부효과이다.

현재 진행 중인 트럼프의 약탈적 관세 협상에서 우리 기업의 외부효과를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삼성의 반도체 첨단 기술과 생산 능력, 그리고 한화의 방산과 조선 분야에서의 절대 우위는 우리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의 본래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삼성과 한화는 국제 협상력을 높인다는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패권국의 약탈적 관세 협상에서 삼성과 한화의 존재가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 K-드라마나 영화, BTS 등도 마찬가지이다. 긍정적 외부효과이다.

반면에 일부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시 행위나 정치인의 언행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혐중(혐오) 시위는 시위 참가자들의 의사 표현이 목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가 이미지 훼손, 외교적 긴장 고조, 무역·투자 환경 악화라는 의도치 않은 피해를 발생시킨다.

일부 정치인이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 점은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내란 부정 발언이나 특검 폄훼 행위 등은,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사법 신뢰 약화, 국민 갈등 심화, 정치 불신 확대라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정치인의 본업이 정치적 행위이고 정치적 발언이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나경원 의원은 중국인 입국으로 전염병 확산이 우려된다거나 입국 뒤 소재지 불명으로 범죄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과장된 주장을 한 바 있다. 내란 부정이나 특검 폄훼 발언에도 앞장섰다.

‘빠루’(쇠지레)는 일상생활이나 공사장의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 ‘빠루’하면 정치인 나경원을 자동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일러 ‘나빠루’다. 그의 정치 언행의 부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대중들의 자연스런 반응이 아닐까?

추미애 의원을 ‘추다르크’라 부른다. 그래도 대중들은 그 별명에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나경원 의원은 ‘빠루’를 든 전투적 모습까지 보였지만, ‘나다르크’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냥 ‘나빠루’다.

정치인은 물론, 개인들도 자신들의 언행은 크든 작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하여 선인들은 ‘신독’(愼獨), 곧 홀로 있을 때도 언행을 삼감을 소중히 가슴에 품었다.

아침 이슬-짧아서 안타깝지만 순수하고 영롱함-같은 삶, 그게 거창한 이상일까? 적어도 부정적 외부효과의 별명을 얻지 않고, 작더라도 긍정적 외부효과를 남기며 사는 일,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