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기원전 484년경~기원전 425년경)의 『역사』는 서양 최초의 역사서이자 최초의 산문이다. 『역사』는 기원전 492년, 490년, 480년에서 479년까지 총 3차에 걸쳐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다. 페르시아 전쟁은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 연합과의 전쟁이다.

『역사』 제1권에 리디아의 5대이자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기원전 595년~기원전 547년경)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전하고 있다.

당시 리디아는 부유한 나라였고, 크로이소스 또한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에서 ‘크로이소스’는 ‘부자’와 동의어였다.

솔론(기원전 640년~기원전 560년)은 아테나이(고대 아테네)의 7현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아테나이에서 많은 개혁을 단행한 뒤 10년 동안 아테나이를 떠나 있었다.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솔론은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리디아를 방문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부를 최고의 현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솔론에게 향연을 베풀면서 내심 크로이소스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질문 형식으로 물었다.

“아테나이의 손님이여, 당신은 많은 곳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 여러 돈 많은 사람들, 잘사는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을 테니까,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누가 제일 행복합니까?”

솔론의 대답은 크로이소스의 기대와는 달랐다.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크로이소스가 아닌, 아테나이의 텔로스 그리고 아르고스의 클레오비스와 비톤을 든 것이다. 세 인물은 모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크로이소스는 그 이유를 묻자, 솔론은 대답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날은 단 하루도 없고,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입니다. 지금 부를 누리고 있어도 행운이 있어야 그 부를 끝까지 누릴 수 있고, 행운을 누리다 좋은 죽음을 맞아야 진정한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로이소스는 무척 불쾌해 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이소스에게 불운이 닥쳤다. 큰아들이 멧돼지 사냥을 나갔다가 사고로 죽었다. 2년 뒤, 페르시아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져갔다.

불안해진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침공해야 할지를 묻기 위해 여러 신탁소에 사절을 보냈다. 신탁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는 페르시아를 쳤다가 결국 패하고 만다.

리디아가 패망하고 난 뒤,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 왕 퀴로스 앞에 포로로 끌려갔다. 퀴로스는 공개 화형을 시키려고 크로이소스를 군중들 앞에 매달았다. 이제 막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고, 크로이소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 그 순간 크로이소스는 솔론이 떠올랐고, 가만히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솔론, 솔론, 솔론! 아, 그래, 당신의 말이 옳았구나!”

크로이소스가 갑자기 솔론의 이름을 부르니까, 퀴로스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크로이소스는 불길이 치솟는 장작더미 위에 매달린 채 솔론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내가 예전에 솔론을 만났는데, 내가 그렇게 번성하고 번영하고 있을 때도 행복한 사람은 죽을 때 가서야 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난 지금 그 말이 생각나서 솔론을 불렀습니다.”

『역사』가 다루는 몇 가지 주제 중, 2,500여 년이 지난 2025년의 대한민국과 미국에 현실 적합성을 가지는 주제가 ‘인간 운명의 가변성’과 ‘오만(hubris)에 대한 징벌(nemesis)’이다.

‘인간 운명에 대한 가변성’은 크로이소스의 일화로 예증된다. ‘운명의 가변성’은 개인뿐 아니라, 나라 심지어는 대제국도 피할 수 없다. 페르시아 대제국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인 그리스군에 패배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폴리스들도 그 당장은 의기양양하였지만, 언젠가는 쇠락하고 말 것이다.

‘오만에 대한 징벌’은 ‘운명의 가변성’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사람이나 나라나 번영하여 큰 힘을 갖게 되면, 쉽게 오만해진다. 오만해지면 정신이 눈 먼 상태가 된다. 이를 미망(迷妄)이라고 한다. 미망에 빠지면 판단을 잘못하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 결과로 결국 징벌을 당하게 된다. ‘번영-오만-미망-징벌’의 순서를 밟는다.

기소권·수사권을 한손에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무도한 검찰이 해체된다. 내란 수괴와 그 관련자들이 특검에 불려가고 재판을 받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운명의 가변성’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은 ‘어제의 미국’이 아니다. 물론 어제도 ‘아름다운’(美) ‘나라’(國)는 아니었다. 국제관계에서 외교든 무역이든 파병이든, 어떤 외피를 쓰든 분칠을 하든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오늘의 미국은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위협 받자 동맹국들까지 희생양으로 삼는, 패권국의 황혼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약탈 국가의 모습이다.

군대의 크기나 전력에서,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에 불과한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제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한데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왤까?

아테나이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그 구성원들이 자유인이었다. 자유인인 그리스 사람들의 입장에서 독재군주제인 페르시아인들은 예속된 상태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인에게는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는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이런 그리스로 페르시아 대제국이 쳐들어왔다. 패배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그래서 목숨만큼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열망으로 목숨 걸고 싸워, 페르시아의 엄청난 대군을 물리쳤다.

약탈 국가의 요구에 굴복하면, 제2, 제3의 약탈만 기다릴 뿐이다. 감연히 나서서 오만으로 미망에 빠진 약탈 국가에 징벌을 가해야 한다. 징벌의 주체는 이재명 정부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열망으로 단결했듯, 우리도 우리의 주권과 자존심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 일치된 목소리로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 외교 무대에서 협상하는 우리 정부의 힘은 국민의 지지에 비례한다.

‘반미’도 외치고, ‘미군 철수’도 요구하고, ‘트럼프 규탄’도 좋다. 이 국민의 분노와 지지가 이재명 정부의 무기가 된다. 그렇다고 이재명 정부가 반미로 돌고,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트럼프를 규탄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지 않을 것이다.

대한국인이 대한민국 정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야 할 엄중한 때이다.

*이 칼럼은 『고전의 고전』(아카넷/2025) 중 「《역사》헤로도토스/장시은」에 크게 기대었음을 밝힙니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