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해양수도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김현(한국해사컨설팅 물류사업본부장)

지역균형발전은 어제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도했지만, 수도권 집중은 여전히 견고하다. 인구와 산업, 문화가 한곳으로 몰리면서 지방의 활력은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부처 이전을 넘어, 부산과 인근 지자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해양수산부 이전, 왜 중요한가

부산은 우리나라 해양 산업의 심장이라 불려 왔다. 세계 2위의 환적항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항만, 해운, 수산업이 발달했고,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살아온 도시다. 하지만 해양 관련 행정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과 세종시에 분산되면서, 부산이 가진 장점을 정책과 산업에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해양수산부 이전은 이러한 구조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자료 : 부산광역시, 해양수도 구현을 위한 해양산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2018

그러나 부처 하나만 옮겨서는 부족하다. 진정한 해양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양수산 관련 산업체, 유관 협회, 연구기관, 공공기관, 나아가 금융기관의 해양 금융 부문까지 한곳에 모여야 한다. 행정·산업·금융이 같은 공간에서 시너지를 낼 때, 비로소 ‘국제해양중심지(IMC; International Maritime Centre)’로서의 위상이 세워질 수 있다. 부산시는 이미 2018년 용역 보고서를 통해 인프라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의 IMC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자료 : 부산광역시, 해양수도 구현을 위한 해양산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 2018


행정 기능의 집중과 제도 개선

해양수산부 이전은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라 기능 재편의 기회다. 현재 해운·항만·수산과 관련된 행정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이를 부산 중심으로 통합해야 정책 효율성과 산업 지원력이 커진다. 경우에 따라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 정치권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입법 과정에서 지연이나 누락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전 인력 지원도 중요하다. 과거 타 부처 이전 경험을 살펴보면, 인력 유출이나 업무 공백이 문제로 지적됐다. 주거, 교육, 교통 등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지원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부산에서 서울, 세종과의 거리 문제는 기술이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다. 보안이 강화된 원격회의와 원격 의결 시스템을 제도화하면, 굳이 대면이 필요 없는 사안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며 처리할 수 있다.

산업·금융·사법 인프라의 집적

행정 이전만큼 중요한 것이 앵커시설의 확보다. 남기찬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은‘부산은 해양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행정, 관련 기관, 주요 기업 등의 부족으로 추진 동력이 미흡하다’고 진단하며 ‘해수부 이전, HMM 등 관련 산업체, 공공기관 및 단체 이전은 해양수도 실현을 위한 앵커시설 및 기능 확보의 트리거’라 발표하였다. HMM 본사, 산업은행의 해양금융 기능, 해사전문법원, 동남권투자공사 등이 그 예다. 현실적으로 부산 이전이 불가능한 산업은행이 부산본부의 위상을 격상하여 선박금융과 국제물류 결제의 전권을 보유하도록 하면, 해양기업이 부산으로 이전할 유인 요소가 크게 높아진다. 이는 단순히 해운업뿐 아니라 기자재, 물류, 해사 서비스 등 연관 산업의 이전을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 17개 중 기관의 설립 목적 및 주요 업무와 동떨어진 지역에 소재하는 몇몇 공공기관의 이전도 동시에 고려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료 : 정책토론 ‘해양수산부, HMM 이전의 의미와 과제 기조 발제’, 남기찬 2025.6.24

실제 사례도 있다. SM상선은 본사 주소지를 부산으로 옮겼지만, 핵심 기능은 여전히 서울에 남았다. 그 배경에는 선박금융과 물류비 국제 결제를 담당하는 재무부서가 은행의 국제적 신뢰도에 따른 T/T(전신환) 발행 및 선박금융 확보 편의성 등의 문제로 산업은행이 있는 서울 잔류가 효율적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이 사례는 국제적인 신용도를 갖춘 은행의 금융 기능이 부산으로 이전되지 않으면 해양 관련 산업의 이전도 반쪽에 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정부는 이미 해사전문법원 설립과 동남권투자공사 출범을 추진 중이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해수부와 HMM 이전, 해사전문법원, 투자공사를 결합해 ‘해양수도권’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행정·산업·금융·사법 인프라가 하나로 모이면, 부산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자료 : 정책토론 ‘해양수산부, HMM 이전의 의미와 과제 기조 발제’, 남기찬 2025.6.24

또한 "기존에 동남권이 갖고 있는 인프라에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4종 세트를 적절하게 믹스시키고, 최고 수준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한국 남단에 또 다른 수도권 하나를 만들 거고, 그걸 우리는 해양 수도권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다극체제로 나아가는 중간다리 역할을 부·울·경에서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장관의 계획과 정부의 의지대로 다양한 해사 관련기관이 집적되고 산업체의 부산 이전이 진행된다면 해양수도 부산, ‘해양수도권’구축을 위한 앵커시설이 확보될 것으로 믿는다.

자료 : 정책토론 ‘해양수산부, HMM 이전의 의미와 과제 기조 발제’, 남기찬 2025.6.24

부산은 다양한 해양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동남권 지역의 조선, 기계 등 산업 생태계는 해양에너지, 해양자원, 해양바이오 등 해양 신산업과의 연계가 가능한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부·울·경 메가시티 차원으로 격상하고 해양수산부의 기능을 확대하여 추진한다면,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싱가포르 인구 약 600여만 명 능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북극항로 운항 및 에너지, 자원, 쇄빙 및 내빙선박 공급 등 북극항로의 공급망 구축이라는 시너지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북극항로, 미래의 황금길

부산의 해양수도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축은 북극항로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으로 북극항로의 경제적 가치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북극항로의 최대 강점은 경제성과 대체 항로 개척이다. 부산항에서 북극항로를 거쳐 유럽 최대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가는 운항 거리는 약 1만 5,000㎞로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남방 항로(약 2만 2,000㎞)보다 32%가량 단축된다. 수에즈운하 통항료뿐만 아니라 운송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 물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기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남방항로에만 의존할 경우, 2021년 에버기븐호의 수에즈운하 좌초 사태로 약 일주일 동안 운항이 마비된 것처럼 돌발 변수에 취약하다. 북극항로는 이러한 위험을 분산시켜 준다.

자료 : 서울경제신문, [단독]7,000㎞ 짧아져…HMM '북극항로' 뚫는다, 2023.03.14

부산은 지리적으로 북극항로 시대의 최대 수혜지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거리가 짧아지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 국제물류 경쟁력 강화, 미래 항만 전략 수립, 파생산업 유치가 병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을 선박연료·기자재·선용품 공급 거점으로 발전시키면, 관련 산업의 고용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또한 북극 허브항(무르만스크 등)과의 협력, 해저케이블 설치, 친환경 어선 개발, 북극 에너지 개발 등 다각적인 전략산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항로가 아니라 조선, 해운, 과학기술, 에너지, 어업 등 다양한 산업이 융합할 수 있는 무대다. 현재 관련 계획은 정부에 포함돼 있지만, 실행은 더디다.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는 지금이야말로 재정비와 실행에 나설 ‘골든타임’이다.

해양 수도권으로 가는 길

해양수산부 이전, 앵커시설 확보, 북극항로 전략은 제각각 중요하지만, 서로 맞물릴 때 시너지가 배가된다. 부산은 이미 항만 인프라, 인재,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행정과 금융, 사법, 미래 전략산업이 결합된다면, 한국 남단에 또 하나의 수도권, 바로 ‘해양수도권’이 탄생할 수 있다.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권, 지자체, 산업계, 시민사회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바다는 부산의 과거이자 미래다. 해양수도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의 선택과 실행에 달려 있다.

<한국해사컨설팅 물류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