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도 부산, 대한민국 도약의 백년대계를 열다

김태만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교수, 해양문명연구원 원장)

1. 부산이 ‘해양수도’가 되기 위하여

해양수도는 해양으로의 진출입을 위한 좋은 항만과 좋은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술, 물류와 해운 시스템, 해양과 관련한 과학기술과 이에 투입할 인재 양성 기관 등 기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에 더해 해양 문화, 해양 교육, 해양 예술에 대한 공감과 지적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해양 강국을 지향하는 해양수도의 시민의식, 청년들의 해양 비전과 진로, 아이들의 해양 교육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해양수도로의 지향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한 해양도서관, 해양 콘텐츠 산업, 해양 창업 생태계 같은 ‘보이지 않는 기반’이야말로 진짜 해양수도를 만들 요소이다. 부산은 수십 년간 “해양수도”라는 슬로건을 반복해왔지만, 정권이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흔들리고, 실천 가능한 전략적 로드맵은 부재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북극항로 개척, 해수부 이전, HMM 본사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립 등의 공약은 그 자체로 실천 가능한 ‘해양수도 부산’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실질적 전략들이다.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체와 구조를 갖춘 ‘해양수도 부산’을 만들기 위한 조건과 요소를 실천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해수부의 완전 이전과 해양정책 컨트롤타워 구축으로 정책 주도력을 확보해야 한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해양정책을 실행하는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전면적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부 실무부서만 옮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책 기획, 예산 편성, 조직 관리, 국제협력까지 포함한 정책 결정권 전체가 부산으로 이동해야만 비로소 부산은 해양정책의 주체가 된다. 아울러 부산시 내부에도 해양정책 전담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해양수도부산전략본부’와 같은 정책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해수부, 부산항만공사(BPA), 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해양대학교 등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정책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둘째, 해운·항만·금융·조선 클러스터 조성으로 해양산업의 집적화와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해양수도의 핵심은 산업의 집적과 융합 생태계 구축이다. 현재 부산에는 항만, 해운회사 지사, 금융기관, 조선기술연구소 등이 분산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HMM(구 현대상선)의 본사 유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HMM이 이전하면, 선사-항만-금융-보험-조선소-물류IT를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해양산업 융합클러스터가 부산에 완성된다. 영도와 부산신항 배후단지를 연계해 해운 기술, 스마트물류, 친환경 선박 연구단지를 구축하면, 단순한 항만도시가 아닌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로 기능할 수 있다.

셋째, 해사전문법원 부산 설치로 국제 해사사법 체계의 중심지를 구축해야 한다. 해양분쟁이 늘어나는 시대에, 전문적 해사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이 부산에 있어야 한다. 해사전문법원은 단지 법원의 지방 이전 차원을 뛰어넘어 국제 해양 사법 질서에 부산이 참여하는 출입구가 된다. 법원이 설치되면 관련 해사 로펌, 보험사, 중재센터, 통·번역 시스템, 해사DB가 부산을 중심으로 집중되며, 부산은 싱가포르나 런던과 같은 ‘국제해사법률의 거점 도시’로 부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어 병행 재판, 해사중재 아카이브, 국제 해사 세미나 개최 등으로 지식기반 해양수도로서의 품격과 국제신뢰를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넷째, 북방경제와 연결되는 환적 허브로 성장하기 위해 북극항로 전략 거점화를 실현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의 핵심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에게 결정적인 전략 기회를 준다. 북극항로가 본격화되면 부산은 대한민국과 북유럽을 잇는 최단 항로의 환적항만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북극항로 전용 터미널, 냉장·수소복합물류센터, 선박 정비기지 등 북방 항로 대응 인프라가 필요하다. 또한 로테르담, 무르만스크, 시르케네스 등 북유럽 항만들과의 해운 연계망도 구축해야 한다. 부산이 이 역할을 담당하면, 물류·기후정보·에너지 분야까지 포함한 동북아 해양 지정학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다섯째, 바다와 함께 숨 쉬는 도시문화 조성을 위해 해양문화 진작과 시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해양수도는 기술과 산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해양수도란 시민이 일상에서 바다를 경험하고, 바다를 기억하는 도시이다. 이를 위해 북항 재개발 구역과 연안권에 해양도서관, 해양문화센터, 시민을 위한 해양광장, 해양박물관, 청소년 해양교육시설 등을 조성해야 하며, 누구나 “슬리퍼 신고 찾을 수 있는” 바다, 걸어서 바다와 만나는 도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시민이 해양문화를 향유하고 해양 정체성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부산은 ‘해양수도’라는 칭호에 걸맞는 품격과 시민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2. 국가의 흥망성쇠는 해양과 함께

역사를 보면 해양을 확보하고 활용한 국가들이 번영했다. 대항해시대 이후의 유럽, 20세기의 미국, 그리고 오늘날 아시아에서도 해양을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해군력만이 아니라, 해운, 물류, 어업, 해양자원 등 모든 분야에서 바다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국가의 역량을 결정한다. 바다는 단지 공간이 아니라 전략이다.

해양과 함께한 국가의 흥망 사례는 인류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해양은 국가의 번영과 쇠퇴를 결정짓는 물리적 자원이자 문명의 통로이지만, 때로 외세 침탈의 경로가 되기도 했다.

1) 식민제국 포르투갈 : 15~16세기 대항해시대 개막과 함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1498) 이후 인도양, 동남아,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양 제국 건설은 물론 나침반, 항해술, 조선 기술, 바람과 해류에 대한 지식 등 해양 과학기술의 선도자로 해양 무역과 식민지 확장에 성공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영국 등 신흥 해양강국의 부상 및 과잉 팽창과 내부 부패로 몰락했다.

2) 해상(海商) 공화국 네덜란드 : 17세기 ‘황금시대’에 세계 최대 해상 무역국으로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아시아·동남아·아프리카까지 항로를 개척했고, 운하 기반의 도시 개발, 해양 보험과 금융 시스템 정비 등을 통해 해양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 형성에 주도적이었다. 그러나 영국과의 해전에서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무역 중심지 지위도 런던에 양도당했다. 그 궁극적 원인은 해군력 부재와 정치적 연합력 약화였다.

3) 해양강국 일본 :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해양 제국의 모델을 따라 근대 해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태평양을 전략 공간으로 인식해 해양 무역과 식민지 개척(대만, 한반도, 남양군도 등)에 치중했다. 해저케이블, 조선 산업 기반 확대 등으로 해양제국을 지향했으나, 태평양전쟁(1941~1945)에서 미국에 패함으로써 제해권을 상실했다. 해양 패권이 군사적 확장만으로 유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해양 외교와 자원 전략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이다.

4) 20세기 해양 초강국 미국 : 19세기 말~20세기 먼로주의 탈피 후 해양 팽창에 나서 파나마운하 개통(1914) 후 2차 대전 이후 양양(兩洋) 전략으로 태평양과 대서양 제해권을 확보했다. 이후, 괌, 하와이, 필리핀 등의 해양 기지를 확보함으로써 해군력 확대와 해상 운송 주도 등에 치중했다. 해양권 확장을 통해 국제 질서를 설계(유엔해양법, 글로벌 무역 체계)했다. 해양은 단순한 자원 공간이 아니라 패권과 규범을 설계하는 공간임을 확인시켜 준다.

5) 서양을 개척하고도 바다를 버린 중국 : 명나라 초 30년에 걸친 정화(鄭和)의 대항해의 막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적 이유로 스스로 바다를 봉쇄한 ‘해금정책(海禁政策)’의 결과 대륙지향 국가로 축소했다. 유럽의 대항해 결과 아편전쟁과 강제 개항으로 제해권(制海權)을 상실하고 말았다.

6) 바다를 외면한 조선 : 세종~성종 시기 연안 방어 체계를 구축하면서 세견선(對倭 교역선)을 통한 제도화된 해상 교류를 실시했다.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으로 해양 방어체제 붕괴 이후 해금(海禁)정책을 실시하면서, 대마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왜관 교역 제한 등으로 해양적 시야가 축소됐다. 이순신의 활약 이후에도 해양의 구조적 중요성을 국정의 중심으로 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바다를 국방과 교역의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지 못한 결과, 국제적 위상마저 약화됐다.

인류 역사를 총괄해 볼 때 해양은 곧 생명선이다. 바다를 아는 국가는 세계를 품었고, 바다를 외면한 국가는 쇠락하거나 침탈당했다. 따라서 국가의 흥망은 ‘해양의 전략화’와 ‘지속 가능한 해양문명 인식’에 달려 있다.

3. 해외의 해양도시

그렇다면 해양을 전유한 세계적 도시들의 사례를 검토해 부산의 미래를 상상해보자. ‘해양수도(Maritime Capital)’ 또는 이에 준하는 위상을 가진 세계의 대표적인 해양도시들은 해운·항만·조선·금융·법률·문화의 통합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며, 단지 ‘바닷가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국가 혹은 세계 해양 질서를 조정하거나 주도하는 도시로 기능한다. 세계적 해양도시들의 예를 들어 보자.

1) 로테르담 – 유럽 대륙의 해양산업 중추 : 유럽 최대 항만도시로 내륙 수로와 유럽 대륙 경제권을 연결하고 있는 로테르담항(Rotterdam Port Authority)은 공공과 민간의 협치를 기반으로 유럽형 ‘스마트 항만’을 자랑한다. 에라스무스대학교 해양물류연구센터와 자동화·친환경 선박을 연계 개발하거나, 해양 기후 기술 및 북해 에너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북유럽 해양물류 허브이자, EU 차원의 해양 탄소중립 전략의 실험 도시다.

2) 함부르크 – 독일 해양전략의 중심지 : 독일 최대 항만도시이자 국가 해양산업의 거점이다. 해양법원·중재기구와 선박금융 전문은행(Deutsche Schiffsbank) 등을 유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조선산업과 선박 기술의 메카(블룸+포스, 노드로지해)로 부상해 있다. 해운사, 조선업체, 항만 운영사, 금융기관, 대학 연구소가 일괄적으로 도심 내 집적해 있어, 명실상부한 유럽형 해사 복합도시이자, 실무·학술·행정·경제가 통합된 고전적 해양수도 모델이다.

3) 오슬로 – 북극항로 시대의 해양 지식 중심지 : 북극권 국가의 해사·기후·해양자원 연구 허브이자 세계 5대 해양 보험시장이다, 북극해 운송과 관련된 조선·선박 기술 집적, 북극연구소, 해양기상센터, 노르웨이해양청(NMA) 등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국영선사와 북극해 LNG 운송 관련 정보체계·법률서비스 제공으로 북극항로와 해양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지식·법제 중심 해양전략 도시이다.

4) 싱가포르 – ‘글로벌 해양허브’의 완성형 모델 : 세계 최대 환적항으로 국제 해사중재 중심도시다. 해양 금융·보험·법률 서비스를 집적하고 국가 차원의 해양전략 계획(Maritime Singapore Green Initiative, 2030 청사진 등)을 수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MPA(Maritime and Port Authority)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해양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주요 선사나 조선소, 해사금융기관, 해양법률로펌, 선급, 중재센터 등이 도심 내 20분 거리에 집적하고 있다. 해운·항만·해사법률·해양금융 등을 한곳에 모아 실질적으로 세계의 ‘해양사법과 물류 질서’를 운영하는 중심도시다.

5) 상하이 – 중국의 국가 해양전략 실현 도시 : 장강 하구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대 물동량 항만이자 중국 해양 외교의 거점이다. 상하이국제항운센터(Shanghai International Shipping Center)가 있는 도시로 해사법원, 중재센터, 국립해운연구소, 해운보험기업 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의 동아시아 기점으로 해양 확장 외교 기능을 수행한다. 중국이 자국의 해양 패권 전략을 실현하는 실질적 중심도시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이다.

그렇다면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시아 6위권 항만으로 국제 환적항 기능을 확보하고 해양수산부·BPA·KMI·KIOST 등 주요 기관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국제해사중재센터, 해양금융센터, 조선·해운·물류 기업이 다수 입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전략적 입지이긴 하지만, 아직 법제도적 통합력, 거버넌스 주도력, 사법·중재 체계, 시민 해양문화 기반 등에서는 싱가포르, 함부르크, 로테르담 등의 해양수도와는 실질적 거리가 존재한다

진정한 해양수도는 단지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 해양 질서를 설계하고, 해양문명을 조정하며, 바다를 통해 미래를 여는 도시이다. 부산이 세계 해양수도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산업·정책·법률·문화·시민이 하나로 움직이는 실천적 해양도시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4. 인식의 대전환 : 지구가 아니라 수구(水球)!

우리가 사는 행성은 표면의 70%가 바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은 여전히 ‘지구(地球)’, 즉 육지 중심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글로벌 무역, 생태계 보전, 식량자원 등 오늘날의 핵심 의제는 모두 바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는 ‘수구(水球)’라는 개념으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다를 부차적인 존재가 아닌, 문명의 주역으로 다시 세우자는 제안이다. 문자 그대로는 ‘물의 구체(球體)’, 물로 이루어진 세계를 의미한다. 전통적 지구관(earth, 땅의 구)이나 대륙 중심의 문명 서사에서 벗어나 지구를 ‘물의 구체’로 다시 상상하고 인식하자는 세계관 전환의 개념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지리적/문명적 패러다임의 전복이 일어나는데, 기존의 ‘육지 중심(terra-centric)’ 세계관이 아니라, ‘수구 중심(aqua-centric)’ 인문학, 즉 바다가 주체인 문명 서사를 구성하자는 얘기다. 해양은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물처럼 흐르는 문명 교류와 이동의 문명 장으로서 세계를 인식의 유동성(流動性),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기원 공간이며, 끊임없는 생태적 재생의 장이라는 생명성(生命性), 육지의 단절이 아니라, 해양은 세계 문명을 이어주는 연결 네트워크로 기능하는 접속성(接續性)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현대의 기후위기, 생태전환, 북극항로, 해양영토 갈등 등의 현실 문제와도 밀접히 연결된다.

유동성, 생명성, 접속성이라는 핵심가치를 위해 ‘해양인문학’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쉽게 말해 “바다를 통해 인간과 문명을 새롭게 바라보는 인문학”이다. 지금까지 인문학은 주로 육지, 국가, 민족, 중심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해양인문학’은 해역 공간을 매개로 주변, 이동, 타자와의 접촉에 주목한다. 바다는 단지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류가 교류하고 충돌하며 공존해 온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바다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문명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공간이다.

‘해양성(海洋性)’을 세계 문명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문적 틀로, 기존의 육지 중심 문명관이나 사유방식을 뛰어넘는 오늘날의 해양영토, 해양자원, 해상 실크로드, 북극항로 등 이슈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신개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5.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

부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양수도를 지향하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전략이 절실하다.

첫째, 북극항로 개척은 북극항로의 종착지이자 출발지인 부산이 최적지다. 기존의 남방항로보다 항해 거리가 30~40% 줄어들기 때문에, 부산이 물류와 해양 서비스의 핵심 허브로 거듭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다. 단순히 북극항로를 다니는 배가 몇 척 더 입·출항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국제 금융, 보험, 해사법률, 해양R&D까지 해양 관련 생태계 전체가 확장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교통로가 아닌 기후변화, 국제법, 안보, 경제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따라서 물리적 인프라 외에도 해사 법제, 환경 규범, 국제협상 능력, 전문 인력 양성 등이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단기 대응보다 장기적인 ‘국가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담 비서관 신설은 그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선제적으로 강조한 북극항로 개척 전략은 단순한 항로 확보를 넘어 부산을 해양경제 글로벌 허브로 도약시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우선, 국가 차원의 북극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외교부·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 등 관계 부처 간 협업체계를 정비해, ‘북극항로 개발 기본법’ 제정 및 정부 주도의 ‘북극항로 개발 종합전략’ 또는 대통령 직속 북극항로위원회 등이 필요하다.

둘째, 인프라 기반 구축인데, 부산항 북극항로 전용 터미널 신설 또는 리모델링, 하이퀄리티의 쇄빙선(icebreaker) 개발, LNG 운반선 등 극지 선박 기술 투자, 러시아 극동 연해주, 북유럽(무르만스크·시르케네스 등) 기항지와의 해양 물류거점 네트워크 구축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해운·물류 시스템 전환이나 극지전문대학원 설립, 한국해양대학이나 해양과학기술원(KIOST) 중심의 극지연구 거점센터 설치 등으로 극지 전문인력 및 국제협력 강화를 위한 전문인력양성 및 교육 강화 등이 절실하다.

1) 글로벌 물류 허브로서의 위상 상승 : 수에즈 운하 경유 대비 30~40% 단축, 부산이 동북아 최단 연결 항구로서 북유럽과 북극권을 직접 이어 무르만스크를 거쳐 바로 로테르담으로 잇는 거점항만이다.

2)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 및 고부가가치 물류 창출 : 남방항로 대비 연료비 20~30% 절감, 탄소배출 감축에 따른 친환경 물류 이점 확보 및 신속 운송이 중요한 첨단제품, 의료·냉장 물류, 탄소중립 수출품(예: 수소, 이차전지) 등 고부가가치 상품 유입 가능성이 확대된다.

3) 부산항 경쟁력 강화 및 항만 일자리 창출 : 북극항로 대비에 따른 부산신항 배후단지 확대, 환적 및 중계무역 확대, 항만 운영, 해양정보통신, 기후감시, 조선 기술 등 연관 산업 일자리 창출 등 효과가 극대화된다.

4) 동북아 해양 지정학에서의 전략적 중심지 부상 : 북극항로는 미·중·러 간 해양 경쟁의 전략 축으로, 한국은 부산을 통해 ‘중간 통로국’으로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곧 부산을 포함한 한반도의 해양 안보, 외교 주도력 강화와도 연결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국가전략 북극항로 종합법, 국제외교 국책사업 중심지 인프라 전용 터미널, 쇄빙선, 항만 확장, 항만기능 고도화 산업 육성, 조선, 냉장 물류, 수소 물류 고부가 산업 유치, 지정학적 북극 외교, 해양 안보 네트워크 동북아 해양 거점 도시화 등 부수적 효익이 매우 높은 정책 아젠다이다. 따라서, 북극항로 개척 구상은 단순한 항로 확보가 아니라, 부산을 21세기 해양문명의 중심지이자 글로벌 항만도시로 도약시키는 전략적 기획이다.

둘째, 해수부와 HMM의 부산 이전은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해양정책은 현장과 떨어지면 생명력을 잃는다. 부산은 이미 국내 해양산업의 중심지이고, 해운·조선·항만·수산 등 모든 분야의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있다. 수도권에 있는 해수부가 각종 현안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은 현장에서도 늘 지적되어 왔다. 부산으로의 이전은 ‘지방 분권’이자 ‘정책 실효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다. 해양수산부와 HMM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기관·기업 이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전략의 실질적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이다.

(1) 해양수산부의 존재 이유와 기능이 ‘부산’에 있다. 해수부는 단순한 행정부처가 아니라, 수산·항만·해운·연안·해양과학 등 바다 현장을 관리·조율하는 부처로서, 대한민국 총수출 물동량의 약 99%가 해상, 그중 80% 이상이 부산항을 거친다. 뿐만 아니라 부산은 국내 최대 해운항만도시이자, 글로벌 6위권의 세계적인 컨테이너항만 허브로서 연안·원양 어업 기지, 해양과학 연구기관, 조선·물류 기업 본사, 해사 법률 서비스 등도 집중해 있다. 따라서, 이 모든 해양관련 산업의 총괄 컨트롤타워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늦었지만 필연적이다.

(2) HMM 부산 이전은 해운산업 생태계 통합의 출발점이다. 수출입 물동량 운송,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 협상, 선박 발주 등 해운 전략의 핵심 기업으로, 본사는 서울에, 실질 업무는 부산지사에서 이루어지는 비효율적인 이중 체계이다. 해운 클러스터의 조건은 ‘해운-항만-금융-행정’의 집적이 필요하다. 싱가포르,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 세계적 해운도시는 해운회사 본사, 항만공사, 금융·보험, 해양청·법원 등이 함께 모여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산에 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 해양진흥공사, 해양금융센터, 해사전문변호사 집단 등이 집적되어 있고, HMM은 대한민국 최대 국적선사까지 이전한다면 국내 유일의 해운산업 클러스터 완성이다. HMM 부산 이전은 해운 생태계를 통합하고, 해양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이다.

3) 지역균형 발전이 아닌 ‘기능 중심의 이전’이어야 수도권 중심주의의 한계극복이 가능하다. 서울 중심의 해양정책은 물리적으로 항만 현장을 보지 못한 채 수치로만 판단하는 경향으로 늘 현장과 유리된 행정, 현실성 없는 정책, 지역 해운업계의 피로감으로 이어져 왔다. 타 지역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어불성설일뿐더러 부산이 ‘기능 중심 이전’에 부합하는 최적지임을 간과한 볼멘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다가 정책 대상이라면,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4) 부산은 해양 글로벌허브로 도약할 전략적 위치이다. 북극항로, 동북아 해양 안보, 해양 탄소중립 등 新해양질서의 중심 등 북극항로 개척 시 대한민국 유일의 북극 연계 환적항이자, 동북아 해양 지정학의 전초기지는 부산뿐이다. 해수부와 HMM이 있어야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완결성이 확보됨으로, 단순한 ‘해양도시 부산’을 넘어, 국제 해양정책과 해운금융, 해양법, 디지털 해운까지 통합하는 복합 해양 허브 실현이 가능하다. 해수부와 HMM 이전 등으로 부산을 명실상부한 ‘동북아 해양 메가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해사전문법원 부산 설립이다. 실제 해사 분쟁의 대부분은 부산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국제 사건을 인천으로, 국내 사건만 부산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소 행정편의주의적인 접근이다. 해사법원의 목적은 실무 중심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판결인데, 현장과 떨어진 구조는 비효율을 낳는다. 부산이 국내외 해사 사건을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제도 설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1) 인천과 부산의 이원화 주장은 그 자체가 법리적, 실무적, 정책적 차원 모두에서 극히 비합리적이며 실효성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해사전문법원의 목적과 기능, 그리고 해사 산업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해사법원은 ‘부산’에 일원화되어야 하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사 사건을 통합 관할해야한다. 해사전문법원 설치의 핵심 취지는 국내외 해양 사건에 대한 전문적·신속한 재판 시스템 확보이다. 국내 선박 충돌, 해양오염, 해기사 분쟁, 어업권·도선사·운송계약 등도 해사법원의 핵심 관할 대상이다. 국내 사건은 부차적이고 국제 사건이 핵심이라는 식의 주장 자체가 해사법원의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대부분의 해사 사건은 국내 선사와 외국 선사, 국내 항만과 외국 항만, 국내 해양 보험사와 해외 로이즈 보험사가 복합적으로 얽힌 혼합 사건이므로 한 곳에 통합되는 것이 맞다.

2) 해사 산업 생태계의 중심은 부산이며, 법원 역시 연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 해운·조선·해양물류 산업의 70% 이상이 부산에 집중되어 있다. 부산에는 HMM, 팬오션 등 주요 선사 지사, 부산항만공사(BPA),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금융센터, 해사중재센터, 선박검사·보험기관 등 해사 전문기관이 총망라돼 있다. 판례, 전문가, 법률시장, 관련 기관이 모두 부산에 밀집해 있는데, 국제 사건만 인천에서 따로 맡는다면 업무 중복과 혼선이 불가피하며, 지속적인 비효율이 발생한다.

3) 법률서비스와 재판권의 지역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만약 인천에 국제 사건을 따로 맡긴다면, 부산에서 발생한 외국 선박 충돌 사건이나, 부산항에서 발생한 국제 해양오염 사건도 사건 발생지와 무관하게 인천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법률접근권의 침해이자, 지역 법률시장에 대한 차별적 처우이다. 부산에 해사전문로펌, 국제중재 전문인력, 해운금융계약 전문 변호사가 다수 있음에도, 사건을 인천으로 이관한다면 부산의 법률·산업 기반이 구조적으로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는 해사전문법원이 추구하는 “현장과 연계된 법률 전문성 강화” 원칙에도 정면 배치된다.

4) 해사 사건의 국제적 위상 확보를 위해서라도 집중화가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도 싱가포르 해사법원, 런던 해사중재법원 등은 모두 국내외 사건을 통합 관할한다. 오히려 해사전문사건을 한 도시, 한 법원에 집중시켜 전문화·판례 축적·국제신뢰 확보를 이루는 것이 국제적 추세이다. 부산은 해사전문판사 양성 체계, 법무부·대법원과의 지속적 실무협의, 해사중재센터 및 국제세미나 개최 경험 등 국제 해사법원의 표준을 실질적으로 갖춘 유일한 도시이다. 부산을 해사법률의 국제허브로 육성하려면, 사건을 분산할 것이 아니라 집중시켜야 한다.

6. 해양수도 부산은 대한민국 도약의 백년대계

바다를 단순한 산업의 공간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바다는 인류의 미래이며, 우리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자원이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30년 후를 내다보는 통합적 사고, ‘해양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해양정책은 국가의 ‘미래철학’이어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 이제는 전 국민이 바다를 다시 배워야 할 때이다.”라는 말이 단지 도시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전략 방향이 바다로 향하고 있음을 천명한 선언이자 약속이다. 정책 결정자의 입을 통해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단어가 공적 담론의 일부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향후 대한민국 해양정책과 바다 인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상징적 사건이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국가로의 전환은 정치지도자의 결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길은 대한민국 모든 시민이 바다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북극항로, 해양자원, 해양 안보, 해양문화유산 등 바다를 둘러싼 문제는 이제 우리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 의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여전히 바다를 휴가철 관광지나 해산물의 공급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제 바다를 경제적 자원,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 고리, 국가의 생존 기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미래의 전략영역으로 바라보는 국민적 해양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을 위해 전국민적 ‘친해성(親海性) 교육’이 절실하다. 진정한 해양수도는 항만과 기업의 집합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바다를 내 삶의 일부로 느끼고, 바다에 참여하고, 바다를 아끼고 실천하는 시민정신, 곧 ‘친해성(親海性)’을 체화한 시민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전국 단위의 해양 인식 개선 프로그램과 교육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초·중·고 정규과정에서의 ‘해양교양’ 필수화, 청소년 대상 ‘바다학교’, 해양인문학 체험교육 프로그램 지원 확대, 전국 지자체 연안 시민 대상 ‘생활 속 바다강좌’ 운영, 해양기념일(예: 세계 바다의 날)과 연계된 문화행사 확대, 미디어·공영방송에서 해양다큐, 해양인문콘텐츠의 지속 제작 등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국민 모두가 바다를 이해하고, 책임 있게 대하며, 국가의 해양 미래전략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사회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이제, 모든 시민이 바다를 재인식하고, 바다의 현재와 미래에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전국민 ‘친해성’ 교육 및 문화확산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기를 건의한다. 해양수도 부산의 완성은 단지 항만개발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해양문명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끝>

김태만 교수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교수, 해양문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