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저곳의 다섯 공리公理 axiom>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38. 신주와 축희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물질을 만들었다고
나를 비방하던데 난 현대문명의 기반을 이룬 나야.
불을 만든 건 인류 최초의 제1의 물결이었지.
불이 있어서 철기문명과 산업혁명이 파생되었지.
불을 만들려고 기어코 원자력도 쓰게 된 거지.
문자나 숫자를 만든 건 제2의 물결이야.
문자로 기록했기에 생명공학까지 쌓을 수 있었고
숫자를 썼기에 만물을 재며 헤아릴 수 있었지.
0과 1 비트로 된 디지털 AI도 숫자의 파생이야.
난 제3의 물결(波)인 인공물질을 만들었지.
아무거나 뭐든지 가소(可塑)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야.
요즘 신소재라고 하는 건 결국 새로운 플라스틱이겠지.
요 플라스틱은 썪지않는 러비쉬 트래쉬 가비지야.
그러니 내가 이룬 제3차 물결인 플라스틱은
지구를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
나 없었으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었겠만서도
나 없었으면 필름이 없으니 사진도 영화도 없었어.
나 없었으면 LP도 CD도 없으니 음반도 없었어.
나 없었으면 합성섬유도 없으니 패션도 없겠어.
나 없었으면 합성고무도 없으니 자동차도 없겠어.
第
三
之
波
내 아무리 화양연화와 같은 삶을 살았다지만
난 죽어서 나도 모르게 억울한 여자가 되었어.
내 아무리 날 신뢰하고 총애하는 왕의 빽으로
국정농단을 했더라도 얼마나 농단(壟斷)했겠어.
전쟁에서 지고나니 그 책임을 다 여자인 만만한
나한테 떠넘기려는 놈들 때문에 그리 된 거야.
물론 나한테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결정적 최종 의사결정은 다 지들이 해놓고
결과가 안좋아지니까 책임을 다 뒤짚어 쓰고 만 거지.
그 뻔뻔한 남자 귀족놈들 아주 얄미워 죽겠어.
이미 나는 죽었지만 그 놈들 땜에 맘이 편치 못해.
그 놈들이 나를 나쁘게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나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가는 좋지 못해.
내가 아무리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고 후원하여
우리나라 문화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고 해도
좋은 업적은 나쁜 업적에 비해 드러나지 않아.
나 일찍이 궁전에 들어가 왕의 정부로 살 바에야
그냥 원래 남편과 사는 삶이 더 행복했을 거야.
죽어서야 그걸 알다니 나도 참 미련한 년이야.
내 아무리 이쁘고 똑똑해도 나는 헛살았어.
그래도 내가 내 뜻대로 사람들을 움직였던 게
싫지는 않았으니 나도 권력 맛(味)을 알기는 해.
權
力
之
味
<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