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조건
우 정 연
오일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 안
보퉁이 보퉁이 짐을 보듬은 할매들
버스 안이 오일장이다
함박웃음으로 들뜬 얼굴들
자목련 꽃잎처럼 불그죽죽하다
북새통에 꽃잎이 흐드러지자
운전기사가
거그 할매! 좀 가만 앉아 있으란 말이여!
할매!!
여그 할매 없는디, 싹다 각시들 뿐이여!
아따, 버스카드
네 번씩 찍으면 그기 할매지 뭐여!!
- 시에 2025 여름호
시 해설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의 종류가 많고 많이 살수록 싸다는 느낌으로 카트에 가득 싣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과거 오일장은 시장 한번 가기 어려워서 아기자기하게 가득 사서 가는 사람, 간고등어 한 손 들고 가는 사람 등 시장 나들이가 흥겹던 추억이 있다.
시인은 오일장에 갔다가 집에 가져가면 더 기뻐할 사람이 기다리는지 귀가 버스를 탄 할머니들의 보퉁이 짐을 보듬은 모습이 정겹다. 오일만에 동네 친구들과의 외출이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함박웃음으로 들뜬 얼굴들 자목련 꽃잎처럼 불그죽죽하다’는 표현만 보아도 분위기가 느껴진다.
요란한 분위기 속에 신이 난 할머니 꽃들이 흐드러지니까 운전기사가 안전을 위한 제동을 건다. ‘거그 할매! 좀 가만 앉아 있으란 말이여!’ 말하자면, ‘거기 할머니 좀 앉으셔요’ 한 것이다.
이에 할머니들의 반발이다. 뭐라고라 할매라고라? 여기 할매 없는데, 전부 ‘각시들 뿐이여!’ 갓 결혼한 여자여, 꽃처럼 젊고 화사하단 말이여 하니 친구 할머니도 한 말씀, ‘아따, 버스카드 네 번씩 찍으면’ 그게 할머니지 뭐냐 추임새 해 주신 것이다. 기분이 좋아서 네 사람 차비 몫으로 카드 네 번 긁었을 수도 있겠다. 웃음이 절로 나는 시를 감상하면서 봄나들이에 새색시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할머니 대우받는 곳이 있음을 알았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