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압서사 내 목압문학박물관은 12월 6일부터 내년 3월 5일까지 하동 횡천 출신으로 우리나라 대표 시인 중 한 명인 정순영(77) 시인 특별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목압서사 연빙재에 정 시인의 시집과 발표 문예지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 조해훈 ]

부유富裕가 오르지 못하는 비탈 언덕
동네에서는 연탄 한 장 나눔으로
따뜻한 겨울을 지낸다는 것을
파란 하늘이 가까워 눈만 감아도
기도가 되고 여름밤 시원한 바람에
달도 되고 별도 더욱 밝게 빛난다는 것을
아예 열린 사립문으로 이웃의 마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잡초도 제 마음대로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것을 가난을
더 사랑하는 낮은 마음들이 주님 앞에 엎드리니
하늘의 향기가 그윽하다는 것을

위 시는 미강(未江) 정순영(鄭珣永·77) 시인의 「달동네」 전문이다. 비탈 언덕에 사는 달동네는 부유한 사람들이 오를 수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서로 기댄 이웃의 마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잡초도 마음대로 자라 꽃을 피우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 즉 인간적인 공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이 더 낮은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동 화개 진목마을의 정윤영 선생 댁에 있는 미강재(未江齋)에서 정순영 시인. 미강재는 정 시인의 시 창작실이다. [사진= 조해훈 ]

경남 하동군 화개면 맥전길 4(목압마을)에 위치한 목압서사(木押書舍) 내 목압문학박물관은 12월 6일부터 내년 3월 5일까지 3개월간 하동 출신으로 한국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인 정순영(1949~현재) 시인의 개인 시집 및 발표 문집, 시화 등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갖고 있다.

시인은 월간 시문예지인 『풀과 별』(발행 겸 편집인 장순하) 1974년 5월호에 시 「아낙네의 죽음」으로 추천 완료돼 시작 활동을 하였다. 당시 시인의 나이 24세였다. 등단 무렵 그는 중앙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며, 중앙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진의 왼쪽 월간 시문예지 '풀과 별'(1973년)은 정 시인이 초회 추천 받은 시가 들어있고, 오른쪽 문예지에는 추천 완료된(1974년 5월호) 시가 수록돼 있다. [사진= 조해훈]

전국적으로 많은 독자를 거느린 시인은 첫 시집 『시는 꽃인가』(1976년·혜성출판사)를 비롯해 8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다섯 번째 시집에 해당하는 그의 한영 시집 『추억의 골짝에서』(In the Valley of the Memory·푸른별·2000)와 딸 정혜진 양이 결혼할 때 부녀가 합동으로 펴낸 시집으로 여섯 번째 시집에 해당하는 『잡은 손을 놓으며』(교음사·2009)도 펴냈다.

1976년에 혜성츨판사에서 발간된 정 시인의 첫 시집 '詩는 꽃인가'. [사진= 조해훈]

창원대 등의 교수를 지낸 그는 부산과학기술대학교와 동명대학교 총장을 거쳐 세종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한때 부산의 4년제 대학교에 하동 출신의 시인 두 사람이 총장으로 재직해 사람들 사이에서 “하동이 산수가 좋아 문사(文士)가 많이 난다”라는 말이 회자(膾炙)되었다. 고 강남주 부경대 총장과 정순영 시인 두 사람을 두고 한 말이었다. 부산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봉직한 정 시인은 봉생문화상·부산문학상·한국시학상·세종문화예술대상·한국문예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정 시인이 발간한 개인 시집들. [사진= 조해훈]
정 시인이 진주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문학 활동을 할 때 인연을 맺은 서부경남의 시인들과 '흙과 바람' 동인을 결성했다. '흙과 바람' 창간호부터 8집까지 전시돼 있다. [사진= 조해훈]

그동안 필자가 읽은 정 시인의 작품 성향은 위 시 「달동네」처럼 낮고 가난한 사람들을 품는 시편들과 고향 하동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그려낸 시편들, 그리고 서정 시인답게 계절별로 느끼는 감흥 등을 담아낸 시편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종교관을 시에 이입하는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그러면 먼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친구들에 대한 정을 읊은 시를 한 수 보자.

“물안개 드리워 여명이 붉게 비치는/ 섬진강 휘감아// 늘 푸른 송림/ 파란 꿈 가슴 부비는 백사장의/ 동무들 보고파라// 보고파서/ 옛날처럼 솔향 감은 파란 바람에/ 흰 머릿결을 날리는데// 그 동무들/ 노을 물든 강 물결 비껴나는 물새 되어// 외투 깃 여미는 나그네의 볼엔/ 향수의 눈물이 흐르네”(시 「향수鄕愁」 전문)

정 시인이 현재 활발히 동인 활동을 하고 있는 '4인 詩' 동인지. 동인 네 사람 모두 1940년대 생이다. 정 시인을 포함해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시인이 동인이다. [사진= 조해훈]

경기도 과천의 인덕원 전철역 인근에 거주하는 정 시인은 거의 매달 한 번씩 고향 하동에 내려온다. 그의 바로 위 형인 정윤영(79) 선생이 건강상의 이유로 화개면 진목마을에 거주한다. 시인은 한 번 내려오면 보통 3박 4일이나 4박 5일 동안 진목마을의 형 집에 머문다. 그러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하동 읍내 장터의 ‘옛날 통닭’ 등 오래된 밥집이나 허름한 선술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인다. 그가 만나는 친구들은 농사를 짓고 있거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는 하동초등학교와 하동중학교를 나왔다.

그는 182cm로 키가 크고, 인물이 좋으며, 손도 크다. 그는 평소 문단에서 감성이 풍부하고 속 깊은 대인(大人)으로 불린다. 그만큼 생각이 깊고 크다. 가능하면 타인을 도우려고 애를 쓰는 착하고 순수한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하동이 고향인 한 시인은 “정순영 시인이 그 큰 손으로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지 불가사의하다.”라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그가 계절을 읊은 시도 한 수 보자.

“가을이 떠나고 있네// 이 집/ 저 집/ 살던 사람들의 가슴에 고인/ 눈물을 색깔과 추억으로/ 울긋불긋 퍼 올리다가//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이 거리/ 저 거리/ 바람에 흔들리며 떠나고 있네// 텅 빈 나뭇가지를 붙잡고/ 바둥거리는 사람도/ 겨울이 오면/ 흰머리 날리는 노인이 되어/ 떠나야 하네”(시 「낙엽落葉」 전문)

칠십 대 후반인 시인은 거리를 걷고 있는 노인들을 본다. 그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을 텐데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되면 떠나야 해 안타깝다고 읊고 있다. 몇 겹의 중첩된 시인의 감성이 녹아 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성령(聖靈)을 시에 이입하여 읊은 시도 한번 보자.

“아침마다/ 나를 산역하고는// 하늘에서 흘러 내려오는/ 여명의 시냇물에 흙삽을 씻는다// 가시와 엉겅퀴에 낫질을 하고// 쉼 없이 밀려와/ 괴로워하며 부서지는 파도// 십자가 생명 나무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에/ 다시 살아서// 나를 산역하고는/ 사냇가로 내려와 흙삽을 씻는다”(시 「산역山役」 전문)

필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위 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시인은 성령의 말씀대로 성실히 살며 매일의 삶을 반성하며 기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대학교 교양 국어책인 『大學國語』(교양교재편찬위원회편, 도서출판 한글, 1990. 222~223쪽)의 ‘한국 현대시’ 부문에 「조선 징소리」가 실려 있다. 그 시의 일부만 보겠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눈빛이/ 꼬리가 열두 개나 달린 여우의 눈빛으로/ 보이거든/ 하늘도 멀거니 아무 말 없거든,/ 한 천년쯤 버텨온 소나무 그늘에서/ 삼베 뭉치를 꺼내어/ 朝鮮의 가슴을 징징 한번 울려 보자 …(이하 생략)”

정순영 시인의 시화 등도 전시돼 있다. [사진= 조해훈]

우리나라의 여러 문예지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그에 대한 문학 특집을 실을 정도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여러 동인 활동도 했다. 경남권에서 시작 활동을 하는 황선하·강희근·김석규·이광석·표성흠 시인과 함께 ‘흙과 바람’, 주광일·정태호·조덕혜·도경회·이영하·유경희·조국형·이희강 시인과 함께 ‘셋’ 동인 활동을 했다. 지금은 1940년대 출생 시인들인 조병기·허형만·임병호 시인과 ‘4인 詩’ 동인을 하며, 최근에 ‘한국시학 시인선 41’로 여덟 번째 동인지 『석양의 뒷모습』(문학과 사람·2025. 9.)을 펴냈다.

정 시인은 그동안 우리나라 대표 문예지인 『월간문학』·『시문학』·『한국시학』 등 1,450권에 시를 발표하였다.

임애월 시인(『한국시학』 편집주간)은 ‘4인 詩’ 동인지인 『四人詩集』(문학과 사람·2018)의 시편들을 해설하면서 정순영 시인을 두고 ‘맑고 순수한 서정- 정순영 시인’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평을 한 바 있다.

“서정성이 풍부한 정순영 시인의 시를 읽으면 모네의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볼 때처럼 영혼이 맑아 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푸르스름한 하늘빛 색채의 순수한 영혼을 닮은 순정적인 이미지들이, 추억이라는 마차를 타고 풍경이 아름다운 들길을 달리는 듯하다.”

그는 하동 출신의 문학인인 소설가 이병주 선생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정 시인이 등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 선생은 그를 불러 술과 밥을 사며 축하해줬다. 역시 하동 출신인 정공채 시인과는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다.

진주의 한 문학 행사에서 축하하러 온 설창수 시인과 김석규 시인 등의 주선으로 당시 동명고등학교 음악 교사이던 현재의 부인과 결혼했다. 시인의 부친은 진해여자고등학교 교장과 진주고등학교 교장 등을 지낸 유명한 교육자이셨다.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학 행정을 책임지는 총장까지 지낸 그는 지금도 아름답고 순수한 서정으로 여전히 시작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는 문학 부문에서 하동을 위해서 여러 일도 했다. 하동공원의 문학공원을 그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조성했고, 현재 하동 문인들의 문예지인 『하동 문단』도 그가 정공채 시인과 함께 만들어 현재까지 해마다 발간되고 있다.

또한 정 시인은 하동을 비롯해 서부 경남권, 우리나라 문학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중앙 문단 및 지역 문단사를 손바닥 보듯 훤하게 기억하며 끝없이 증명한다.

하동 읍내의 구 하동역 철로 변에 있는 그의 시 「하동골에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한번 보자.

“섬진강/ 오백 리/ 하동골에는// 산새가 울어서/ 꽃을 피운다// 보고픈/ 고향 친구/ 누이 동생이/ 세상 사람/ 시샘 끝에/ 산에 들어서// 꽃 피우는/ 산새가/ 되었나 보다// 짚신 자락/ 고달픈/ 나는 나그네// 전설처럼/ 밤 지새는/ 산짐승 되어/ 소매 끝에/ 눈물을/ 적시다 보면// 어느새/ 하동골에/ 꽃은 지리라”(시 「하동골에서」 전문)

목압서사 연빙재 앞에서 정순영(왼쪽) 시인과 그의 형 정윤영 선생. [사진= 조해훈]

한편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초회 추천받은 월간 시 전문지 『풀과 별』 1973년 10월 호와 천료된 『풀과 별』 1974년 5월 호를 비롯해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꽃이고 싶은 斷章』(새빛社·1976년), 세 번째 시집 『조선징소리』(한겨레출판사·1981)와 네 번째 시집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빛남·1990), 다섯 번째·여섯 번째 시집, 그리고 일곱 번째 시집 『사랑』(교보문고 PubPle·2014)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그의 시 「기도」·「긴 장마를 지나고」 등 7수가 실린 『현대명시특선집』(문학애출판사·2020)과 동인지 『흙과 바람』 창간호부터 제7집까지, 동인지 『셋』 창간호에서 5집까지, 그리고 동인지 ‘4인 詩’ 창간호부터 올해 9월에 발간된 제8집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 외 그의 시가 실린 여러 문예지를 비롯해 시화 10점 등 다양한 자료 등도 전시돼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