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 윤슬에게
노 유 섭
이리도 조용하게 빛나는 세상이 있었던가
호텔 15층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정박한 배 위로 퍼져 나가는 지문
그 지문 찍으면 닫힌 문 하나씩 열리겠지
섬과 섬 사이 이토록 반짝이는 윤슬이여
이토록 밝고 고요한, 고운 세상이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세상이 다가온다면
그 어떤 절망과 슬픔, 근심 걱정, 두려움도
이리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햇살에 감싸여
저 수평선 끝까지 기쁨으로 가 닿으리
그 어떤 도둑 같은 악몽도 침투하지 못하리
사방의 방파제에 둘러싸인 아늑한 고향
그 둥근 마음 물결 위로 비쳐드는 햇살이여
삶의 어두운 고샅길 길목, 길목마다
이 땅의 힘 없고 힘 잃은 자에게
하루가 주는 뜻밖의 선물인 양
오늘도 그리 찾아들어
다시금 비추고 비춰주오
물결이여 빛이여
마음 물결에 비쳐드는 곱디고운 빛살이여
- PEN문학, 2025 5.6월호, 186
시 해설
여수 오동도 부근 오션힐 호텔 같은 곳에 투숙하면서 쓴 시를 감상한다. 15층 방에서 바닷물이 가득 들어온 정경을 내려다보면서 바람에 물결이 정박한 배를 비켜 가는 지문형상을 눈여겨 살핀 것이다.
시인의 ‘이리도 조용하게 빛나는 세상이 있’음에 감탄하고 ‘이토록~’과 ‘이리도~’를 반복하며 감정을 나타낸다. 작은 ‘섬과 섬 사이 이토록 반짝이는 윤슬’이 좋고 ‘이토록 밝고 고요한’ 세상이 시인에게도 다가온다면 시인은 ‘그 어떤 절망과 슬픔, 근심 걱정, 두려움도’ 잊어버리고 ‘이리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햇살에 감싸여’서 ‘저 수평선 끝까지’ 기쁜 마음으로 가서 닿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방파제에 둘러싸인 아늑한 고향’ 같아서 ‘그 어떤 도둑 같은 악몽도 침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햇살은 ‘그 둥근 마음 물결 위로’ 비출 것이다. 그런 세상이 다가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은 햇살에게 바란다. ‘이 땅의 힘 없고 힘 잃은 자에게 하루가 주는 뜻밖의 선물인 양’ 다시금 비추고 비추어 주시라고. 축복 같은 ‘물결이여 빛이여 마음 물결에 비쳐드는 곱디고운 빛살이여’ 오늘도 그리 찾아들어 주소서.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