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7)
데크 앞에서 화단 사이의 폭 4미터, 길이 10미터가 되는 마당에 잔디를 심기로 하고 조카 또식씨가 조경회사에 가서 잔디를 한 차 사다 부리며
“외삼촌. 화단은 직접 조성한다고 하시니 잔디는 알아서 숭구소.”
화단조성은 따로 돈을 받지 않는 일이라 그 냥 부리고 떠났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대신 농사를 지을 때 서마지기 700평이 무려 열세 도가리나 되는 진장골짝논은 장마철이 되면 해마다 높이가 1미터 이상이 되는 논둑이 무너져
“야야, 골짝논에 논두럼 안 방천 안 났는가 가 봐라.”
앉은뱅이 앉아서 용쓴다고 기동불능의 아버지가 조바심을 내면 날이 새기 바쁘게 지게에 삽과 톱을 싣고 올라가 13개의 논두렁을 점검하는데 골짜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기저기 작은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는 무너진 논두렁을 세다가
“아이구야! 몇 며칠은 걸리겠구나.”
탄식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논둑이 무너진 방천은 우선 주변에서 큰 돌 몇 개를 주어다 단단히 다진 지면부분에 주욱 세우고 물에 젖은 흙을 한 층 채운 뒤 야산의 솔가지를 베어다 그 위에 또 한 층을 쌓고 무너진 흙으로 채운 뒤 산이나 무덤가에 사람이 많이 밟아 단단한 떼를 떠다 쌓고 또 흙을 채우고 마지막엔 작은 돌들로 한 층을 채우고 또 떼를 쌓고 흙을 채워 논두렁을 바르면 끝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방천공사를 하는 열찬씨를 진장 밭에 간다고 지나가던 마을사람들이 보면
“공동묘지 때딴지는 열찬이가 방천공사한다고 다 떼가서 발 디딜 틈도 없는 곰보딱지가 되었구나! 하기야 맨날 방천이 나는 골짝논을 지 아부지대신 부치는 지 마음은 오죽 아프겠나?”
하며 혀를 찼다. 그렇게 말끔하게 논두렁을 복원하면 무너진 흙더미에 깔린 벼 포기를 세워주는데 심하게 깔려서 제 힘으로 설 수 없는 것들은 서너 포기의 끝을 상투처럼 한데 묶어 주었다. 그러나 그런 논두렁의 방천공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공사, 즉 산에서 갑자기 대규모로 휩쓸려 내려오는 빗물이 좁은 도랑으로 감당이 안 되어 길 위로 넘쳐 나락 논을 덮어씌우는 일이 많았는데 이 경우는 무너진 길도 회복해야 하지만 복새 흙이라고 부르는 산에서 휩쓸려 내려와 벼 포기를 덮어씌운 황토 흙을 파내는 일이 여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미 떼를 뜨거나 잔디공사를 하는데 이골이 난 열찬씨가
“여보, 오늘은 진장산소에 가자.”
하고 삽을 챙겨 나서자
“산소는 와? 성묘를 가면 술을 사가야지 뜬금없이 수금포는 와 들고?”
“수금포?”
“아, 울산대름하고 둘이 이야기할 때 늘 삽을 보고 수금포라고 하데. 나는 처음 소금포대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아이가”
“야, 언양사람 다 됐네. 삽을 수금포라 카는 것도 다 알고.”
하고 잔디가 제일 좋은 평리공동묘지에 가서 여기 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진 산소를 연결하는 길 부분에 꽁꽁 다져진 잔디를 가로세로 80*40 정도로 떠내면서
“할매. 제가 명촌에 집을 짓고 마당에 할매산소의 떼딴지를 파다 심심더. 한 번 놀러 오이소.”
하고 그 옆에 있는 친구 용천씨의 무덤에선
“어이 사형, 잘 지내나? 니 거게서도 늘 장에 가는 쌍수정처녀들 치마자락만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지?”
픽 웃고는 그가 죽기 며칠전 안다리박사 순찬씨가 그걸 알고 부산까지 열찬씨를
“그 용천이가 덩치는 작고 새까마도 명색이 우리 일본 김씨 종가종손이다. 동생니가 내 얼굴로 봐서 사돈대표로 문상을 한번 가면 안 되겠나?”
어디 가서 괜히 동생 열찬이를 팔아 자기체면 세우는 대신 부조봉투를 주거나 직접 몸을 움직이게 하는 누님, 그렇게 부산동생 득수, 내 동생 득수를 자랑하는 일을 최고의 기쁨이지 명예로 몸에 배인 누님이 하도 통사정을 해
“그렇게 중한 사람이 아프면 당신도 한번 가 봐야지요. 거기다 동기동창이고요.”
하고 영순씨의 자동차로 언양의 <서울산보람병원>응급실을 향했는데 하필 옛날 명촌자영 백수진이 누웠던 침상을 차지한 용천씨가
“아, 작은 엄마가 또 오셨네. 우리 동창사돈도 오고.”
옆구리가 아파 오만상을 쓰는 환자에게
“됐다. 가만 누벘거라.”
손을 들어 만류한 순찬씨가
“천지만물의 성쇠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주 하느님이시여...”
긴 기도와 찬송까지 끝난 순찬씨가
“그라면 우리는 나가자. 동창친구끼리 오랜만에 회포라도 좀 풀게.”
하고 나간 뒤
“부인이 안 비네. 장개는 갔다고 들었는데?”
“응. 5년도 체 못 살고 아아 서이만 떨구고 도망갔다. 하기는 내라도 도망가고 말 것이 내가 먹는 걸 제대로 대어줬나, 입는 걸 제대로 해줬나, 그러면서도 하늘에 해박힌 날, 일 년에 3백6십5일간은 내 아랫도리기 뻐근하도록 다섯 번, 일곱 번, 어떤 때는 열한 번 꼬재이를 했으니?”
“...”
“판수로 지면 40년 해로한 부부의 한 다섯 신랑각시가 할 만큼은 했을 기다.”
“내가 언양 최고 <꼬배쟁이>다. 이 김용천이 전에도 뒤에도 이만한 <꼬배쟁이>는 없을 끼다. 그기 내가 이땅에 왔다간 기록이다.”
“그래 장하구나. 우리 사돈친구.”
하고 손을 잡아주는데
“하아, 꼬배쟁이영감님 아직도 안 죽었네.”
교대시간인지 간호사 둘이 드러내고 웃으며 들어와
“어디 보자. 복수는 얼매나 더 채였는지...”
하고 환자복을 손으로 제끼자
“가시나야, 놔라. 니 그 설탕 같은 손으로 내 몸을 만지만 내가 그만 온몸이 살살 녹는다 말이다. 언양국민학교 골목 똥과자 쪽자처럼 말이다 말이다.”
하는 순간 간호사 둘이 픽 웃으며
“김용천씨 친구 분인 모양인데 저 못 된 화상을 좀 단디 뭐라카고 가이소.”
환자복을 덮어주고 돌아서서 나가는데
“야, 이년들아, 내가 어데 간이 뭉개져 복수가 찾지 조지 뭉개졌나? 쓸데없이 아침부터 싱숭거리구로.”
아직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성욕을 아낌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젊은 니가 죽어 산소 쓴다고 우리할매 산소 때딴지를 다 떠가디마는 인자 니 산소의 떼를 내가 쪼깨 떠갈란다.”
하고 조그맣고 새까맣지만 반질반질한 이마와 눈빛을 떠올리다
“엄마산소에는 아직 떼가 성글어 못 뜨겠네. 보소 명촌댁이요, 큰엄마 상남댁이하고 같이 우리 집에 놀러오소. 친정이 명촌이라 등말리에서 골티 도산댁 찾아오는 거는 일도 아일 기고.”
어머니 명촌댁산소에서 잠시 비석을 어루만진 뒤 명촌 집으로 돌아와
(아, 참. 이 마사토땅에는 물기가 없어 떼가 잘 못 살겠네.)
황토 땅일수록 잘 사는 잔디의 속성에 맞게 벌겋게 황토 흙이 드러난 울산사람 임사장네 밭둑이 무너진 곳에서 손수레로 여남은 번 흙을 파다 마사토 위에 덮은 뒤 자동차트렁크에서 내린 뗏장을 폭 10센티로 좁게 잘라 주욱 심어나가는데
“당신도 괜한 고생을 하네. 꽃집에 잔디 씨 판다던데 조카가 가져온 떼를 대충 심고 그 사이에 잔디 씨를 뿌리면 될 것을,”
하고 자기로서는 도와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데
“조경 집에서 사오는 잔디는 개량종 금잔디라서 키도 크고 조밀해서 금방 파랗게 어불리기는 하는데 납작하게 드러누워 발에 밟히는 떼딴지기분이 안 나지. 또 너무 빨리, 소물게 자라서 관리하기도 힘들고.”
“소물게가 뭐꼬? 소가 문다 말이가?”
“소물게는 빽빽하게 복잡하다는 말로 드물게하고 반댓말 아이가?”
“아, 그래서 잔디 깎는 기계를 사서 미는구나?”
“그렇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원생활하는 사람들이 잔디 깎는다고 윙윙거리며 기계를 모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골병거리란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꽃이 피는 것도 아닌 그 잔디를 깎는 일에 서양사람들은 휴일이 대부분을 소비한단 말이지. 아무튼 황토도 우리 고향 진장이 전국최고, 그 황토 흙에 사는 떼딴지도 전국최고니까 나중에 이 떼들이 살면 카가 작아 깎을 필요도 없고 보기도 좋고 밟히는 촉감도 좋은 전국최고의 잔디밭이 될 거야. 우리 손녀들은 완전히 팔자 고치는 거지.”
하면서 공사를 마치자
“당신 말은 그럴 듯한데 물기가 없어서 잘 살랑가 모르겠네.”
영순씨가 손잡이가 달린 긴 수도호스를 사와 올 때마다 물을 주는데
“물을 주지 말고 꼭꼭 밟아. 떼딴지는 밟을 수록 잘 산다. 당신 민초라는 말이 무언지 아는지 몰라도 옛날에 농사꾼이나 숯 굽는 사람, 고기를 잡거나 소금을 만드는 최하층의 사람들을 민초라고 하는데 양반한테 밟히고 지주한테 앗기고 고을원님한테 볼기짝이나 맞고 살아도 마치 빼빼장구라고 불리는 질경이나 저 떼딴지처럼 밟히면 밟힐수록 더 악착같이 살아나 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거지. 마치 우리조상들처럼.”
“알았심더. 강의는 고만하소. 내가 장화신고 밟으면 될 거 아이가?”
그날 오후였다. 둘째 또식씨가 찾아와
“외삼촌, 추석이 다 되가는데요.”
“그래 알았다. 추석 전에 돈 달라는 말이제?”
“예. 일꾼들 품도 주고 자재상도 그렇고...”
“알았다. 주말에 너거 외숙모 오면 우선 같이 계산이나 맞차 보자.”
하고 마침 여보산악회 곗날이기도 해 부산에 내려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하면서
“박집사가 공사비이야기 하던데.”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집에 도착하자말자 컴퓨터를 켜고 전에 작성해둔 창을 열고
“보자아. 얼마나 더 돈이 더 들어갈지...”
하고 들여다보자
“보소. 그거 나도 한 부 인쇄해 주소.”
해서 2부를 출력해 한 장씩 들여다보며
2015.3월 이후 들어갈 돈(단위: 천원)
1.가옥건축비-32,500-13평→15평37,500→40,000(데크수리), 자재비인상5,000천(옆집에 비교 너무 후질까봐)→45,000
※옵션
정화조, 보일러,
창고와 거치대
수돗가, 장독대, 화단(1,500요구로 직접하기로)
탁자셋트, 바베큐통, 소각통
화덕과 덮개포함
2.설계비, 건축허가에 따른 제세공과금-2,000
3.전기설비-1,000
4.마을수도-500천원→1,000
5.벌채정지비용-1,500(1,000선지급)+유공파이프13*50=8,000→또 추가200=결국 10,000천원
6.펜스-3,000천원→3,500
7.이사비 기타-500→5,900
※인터넷 가구당 60만원씩
※스카이라이프 30만원-안테나 부스터 리모콘
※데크 위에 투명 가리개-300
※물탱크와 건물-100
※집들이등- 100
계40,000천원 단 측량비 1,500천원 변동있음→총계62,900→ 6,840만원으로
“자, 봐라. 한 5,6백 들여서 농막 짓는다는 기 결국 근 7천만 원이 들었네. 혹시 빠진 거 있는가 확인하지.”
“그런 거는 당신 전공 아이가? 내사마...”
“아, 그러니까 나는 계산이나 대고 당신은 돈을 댄단 말이지.”
“무슨 말씀. 당신이 시작한 일 당신이 마무리짓지.”
“그래 당신이 돈 정산하면 나는 컴퓨터에 계산 마무리 짓지.”
“말장난 그만 하고.”
“그래. 말장난 그만하고 우리가 박집사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돈을 줬지?”
“총 3,500만원.”
“언제, 언제?”
“시작할 때 천만 원, 지붕 올라갈 때 2,000만원 또 급하다고 해서 500만원.”
“그라면 우리가 줄 돈의 합은?”
“기본건축비 4,500만원, 정지비용 1,000만원, 펜스 350만원, 기타 투명가리개 300하고 물탱크 100만원 합계가 6,150만원이네.”
“그러니까 6,150에서 3,500을 빼면 2,650만원이 남았네.”
“그렇지.”
“그렇다면 아직도 이것저것 해서 한 3천만 원이 더 있어야 된다는 이야긴데?”
“그렇지.”
“당신 돈 있소?”
“없는데. 당신은?”
“나도 없소.”
“둘 다 없으면 우짜노?”
“우짜기는? 첨 집 짓자는 사람이 책임져야지.”
“책임이라?”
열찬씨가 미간을 좁히는데
“당신, 내 닮은 자식들을 놔서 말이요, 좌우간 자식하나는 다 잘 낳은 줄 아소.”
“그래 잘 할 때는 다 당신 닮은 자식이고 속 썩힐 땐 내 닮은 자식이제?”
이미 감을 잡은 열찬씨가 피식 웃으며
“슬비가 얼마 해 준다 카더노?”
“슬비가 와?”
“전에 정석이가 땅값 4천만 원 보태줄 때 보고 지도 얼마 내기로 했잖아?”
“맞소. 내 닮아서 빈틈없는 아이지. 은행에서 3천만 원 융자내서 이미 내 통장에 들어와 있소.”
“그럼 돈 걱정은 없네.”
“그간 쪼깨 쓰기는 했지만 다 당신 컴퓨터에 있는 돈 들어간 기고. 좌우간 조카 돈 2,650 빼고 마무리는 되겠네요.”
“쪼꼼 안 모지래나?”
“아, 장촌이모가 펜스치라고 준 돈 300이 따로 들어왔으니까 오히려 쪼깨 남을 거요.”
“그라면 내일이라도 돈을 갖다 줄까?”
“아니요. 내일 우선 천만 원만 갖다 주소.”
“와?”
“공사 뒷마무리가 뭔가 시원찮아요. 내가 단 대목에 직접 천만 원을 더 주면서 몇 가지 다짐을 받고 나머지를 주지요.”
해서 이튿날 집에 돈 달달 긁었다면서 천만 원을 건네주고 추석 사흘 전에 영순씨가 직접 화식씨를 마나 또 천만 원을 주면서 창고 안에 물건을 얹을 시렁을 짜주는 일과 물탱크를 놓고 패널로 벽을 치고 지붕을 얹는 일까지 다짐을 받더니
“참 창고와 물탱크사이에 그냥 아무것도 없는 창고 패널로 한쪽만 벽을 치고 지붕 얹어주는 데는 얼마나 들까?”
“와요? 그 정도는 간단히 서비스로 해줄 수 있는데, 용도가 문제지요.”
“다용도실. 주방에 쓸 물건도 놓아야 되겠지만 세탁기를 따로 빼내어야 하는데.”
“아이구, 골치 아파라. 껍데기정도는 서비스로 해줄 수 있지만 바닥에 타일 깔고 수도꼭지 달고. 보자아, 3미터에 4미터면 평수가 세 평 반이나 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서비스치고는 좀 과한가? 남은 돈 650만원에 내 200 더 얹어 줄게.”
“와아, 외숙모 귀신이다.”
“귀신이기는?”
“첫째 다용도실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가 생각했는데 그걸 귀신같이 알고.”
“이 사람아, 그러면 미리 다용도실이 필요하다고 지으라고 하지.”
열찬씨가 끼어들자
“우선은 외삼촌이 맨날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얼굴을 안 펴서 말을 못 했지만 나중에 외숙모가 틀림없이 해 달라고 말을 한 건데 그러면 공사가 없는 한겨울에 해줄라꼬 말입니다.”
“에레이, 순!”
“또 제가 공사비 다 정산할 때 이것저것 한 200 더 쳐 달라고 이야기할 금액을 정확히 더 준다고 말입니다.”
“하하, 그 기 그렇게 됐나?”
기분 좋게 웃던 영순씨가
“조카, 돈이 급한가?”
“예. 나머지 돈도 주면 좋지요.”
“그라면 추석 전에 다용도실 타일까지 될까?”
“예. 인건비 주면서 한나절 더 해달라고 통사정하지요.”
“그라면 어서 서둘러서 해주소. 추석 안날이라도 내가 돈을 송금할 테니까.”
“고맙심더.”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