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차산으로 올라가니 풀이 자라 길이 없어졌다. 사진= 조해훈
땀이 비 오듯 내려 연신 안경을 벗어 소맷자락으로 눈을 닦는다. 그러다 결국은 아예 안경을 벗는다. 날씨가 연일 섭씨 35, 36도를 웃돌고 있다. 체감 온도는 더 높은 것 같다. 차산이 더위에 달궈진(?) 데다 낫으로 풀을 베고 웃자란 차나무를 전지하느라 노동을 하니 당연히 땀으로 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일들이 있어 차산에 올라가지 못하는 날들도 많다. 여름 동안 폭우가 쏟아지다 그치면 폭염이 이어졌다. 하루만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실뱀처럼 가는 오솔길에 풀이 자라나 낫으로 베면서 올라간다. 필자만 다닌다. 차산에 있는 원두막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온몸이 땀투성이다. 어떻게 풀이 이다지도 잘 올라오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귀촌했다가 돋아나는 풀 탓에 다시 도시로 나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필자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일주일 정도만 차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길이 없어져 애를 먹는다. 길을 잠식한 풀을 낫으로 자르면서 올라야 한다.
낫으로 풀을 베어내고 길을 만들면서 올라갔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8월 20일(수)이다. 어제 하루 다른 일이 있어 차산에 오르지 못했다. 오후에 산에 오르는데 하루 만에 풀이 제법 자라 있고 필자 혼자 다니는 좁은 길가에 자란 풀들이 몸을 누인 채 길을 가로막고 있다. 낫으로 잘라내지 않을 수 없다. 2, 3m만 풀을 자르는 작업을 해도 허리가 아프고 안경을 벗어 땀을 닦아낸다. 돈 될 게 별로 없는 지리산 골짜기 사람들의 경우 먹고 살고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된다. 요즘 여기 사람들도 필자처럼 이처럼 무식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겨울에 한 번 예초기를 들고 와 풀을 깎는 정도다.
차산에 올라와서도 30분 이상 작업하기가 어렵다. 땀 때문이다. 땀 닦으러 ‘청학루(靑鶴樓)’라 이름 붙인 원두막에 오른다. 의자에 앉아 땀을 닦은 후 작업한 부분을 보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오후 내내 차밭에 올라온 풀과 커져 버린 고사리, 잡목을 베고 차나무 전지를 해도 겨우 한 고랑 끝낼 정도이다. 낫으로 이런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의 효율성이 그다지 없다. 필자의 집 아래의 목압민박 김갑득(70) 사장님은 “예초기로 하면 금방 할 걸 뭘 그리 맨날 낫 가지고 그럽니까?”라고 한다. 김 사장님은 예초기를 아주 잘 사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는 예초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어쩌다 집에서 예초기의 시동을 걸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그리하여 예초기 수리점에 가 고치면 그곳에서는 시동이 걸린다. 그런데 집에 갖고 와 시동을 걸면 걸리지 않는다. 집과 수리점을 참 많이도 왕복하였다. 집에서는 예초기 시동을 한 번 걸어보지도 못하고 수리비만 많이 들었다. 예초기 사용은 오래전에 포기했다. 분명 필자가 기계를 다루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차밭 고랑의 풀을 베고 웃자란 차나무를 잘라주며 정리를 한 부분이다. 오후 내내 작업했다.사진= 조해훈
오늘도 차나무 골 사이에 올라온 풀을 베다가 몇 차례 필자의 무릎을 낫으로 찍었다. 다행히 골이 좁아 낫을 세게 내려치지 않아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조금 아파 다리를 약간 절룩인다. 낫에 하도 많이 다쳐 요즘은 낫을 적당하게 간다. 몇 번 예리하게 간 낫에 찍혀 병원에 다닌 트라우마가 있어서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넘으면 산모기와 벌레들이 극성을 부린다. 이제 모기들이 들어갈 때가 되었는지 아주 독해졌다. 물리면 엄청 간지럽고 아프기도 하지만 혹처럼 붓는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내려와 샤워하면서 몸을 보면 작업복을 입고 일을 했는데도 다리에서 허리, 얼굴까지 물려 팅팅 부어 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올 여름 동안 사진에 보이는 정도밖에 작업하지 못했다.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사진 = 조해훈
농사에 전문성이 없는 필자가 오로지 좋은 차 만들어 마시겠다는 생각만으로 밭차가 아닌 산차(山茶)를 선택한 탓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작 봄에 몸을 다치는 등의 이유로 찻잎을 따지 못하더라도 일 년 내내 차산에서 지내다시피 한다. 필자의 무식함(?) 탓에 해마다 이렇게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예쁘게(?) 정리가 되어가는 차밭을 보면 고생한 기억은 사라지고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그런 기분 때문에 몸이 골병(?)이 드는 줄 모르고 반복적으로 일을 한다.
집 거실의 앉은뱅이 차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등 좌식 생활을 좋아하던 필자는 얼마 전부터 불편하여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면 허리와 엉덩이, 다리까지 아파 불편하다. 앉더라도 양반다리를 하지 못하고 오른쪽 다리를 세우고 등 뒤의 책꽂이에 몸을 기댄 채 비스듬한 자세를 한다. 9년째 낫질을 한 탓에 오른쪽 팔은 벌써 골병이 들어 아파 가끔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갈수록 숟가락질이 힘들 정도로 손도 떨린다. 시골 어른들께서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걸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요즘은 점점 빨리 어둑해진다. 오후 6시 반쯤 산에서 내려갈 채비를 서두른다. 어두워지면 멧돼지나 곰이 출몰할까 봐 겁이 난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 길을 걸어 집 마당에 들어서니 제법 껌껌해졌다. 마당에 ‘노랭이’와 ‘까망이’, ‘까톨이’, 그리고 최근에 처음 새끼를 낳은 ‘예삐’가 모여 있다. 필자의 집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죽치고 사는 들고양이 네 마리가 무리지어(?) 저녁밥을 달라고 시위하는 중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