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단주차)를 만들기 위한 찻잎을 따러 차산에 올라가는데 풀이 필자의 키보다 높게 자라 길이 없어졌다. 사진= 조해훈
해마다 마시던 일주차(一株茶)를 올해도 만들어 마셨다. 시기적으로는 다소 늦은 편이다. 일주차는 단주차(單株茶)라고도 한다. 한 차나무에서만 딴 찻잎으로 제다한 차를 말한다.
지난 6월 30일 폭염경보가 내린 가운데 일주차를 만들기 위한 찻잎을 따러 차산(茶山)으로 올라갔다. 산에서 굴러 다치는 바람에 정작 찻잎을 한창 딸 시기에는 산에 올라갈 수 없었다. 오른쪽 엉덩이가 아파 차산에 오르는 게 불가능했다.
차산에 낫으로 풀을 베 길을 내면서 올라갔다. 사진= 조해훈
이날 오후 5시 넘어 집에서 낫을 갈아 차산으로 향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부터 풀과 대나무 등이 자라나 애를 먹었다. 낫으로 베면서 조금씩 올라갔다. 날씨가 아직 무더워 필자의 움막(일명 베이스캠프)까지 가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땀이 눈에 들어가 안경을 벗고 눈 주위를 닦아도 금방 또 안경을 벗고 반복해야 했다.
날씨가 더워 차산의 원두막에 올라가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셀카로 촬영했다.
그렇게 같은 작업을 반복하며 풀을 베면서 윤도현 어르신의 고사리밭 입구까지 가니 길이 아예 없어졌다. 풀들이 필자의 키보다 더 높게 자라 있었다. 땀이 너무 많이 흘러 안경을 쓰고 있을 수가 없어 벗어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풀을 조금씩 베며 위를 쳐다보니 까마득했다. ‘저 풀을 어제 다 베고 올라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오늘 찻잎을 따지 않으면 완전 피어 버려 찻잎을 딸 수 없을 것 같았다.
엎드려 한 번 풀을 벤 후 허리를 펴 소매로 땀을 닦고 다시 엎드려 풀을 베는 걸 반복했다. 올라가는데 1시간 넘게 걸렸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머리가 띵했다. ‘안 되겠다.’ 싶어 풀을 베지 않고 헤치며 원두막까지 가 의자에 앉아 가지고 온 조그만 생수를 한 병 그대로 들이켰다. 필자는 당뇨가 있어 저혈당이 오면 곤란했다.
해마다 일주차를 제다해 마시는 차나무. 높이가 4m 넘는다. 낫으로 칡넝쿨을 걷어낸 차나무 모습. 사진= 조해훈
아직 햇볕이 완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10분쯤 앉아 안정을 취한 후 역시 풀을 헤치며 일주차를 만들어 마시는 차나무 앞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차나무를 칡넝쿨이 칭칭 감고 있었다. 일주차 나무는 높이가 대략 4m가 좀 넘는다. 필자가 앞에 서서 키로 재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 나무에는 유달리 칡넝쿨이 칭칭 감는다. 9년 전인 2017년 4월, 이 차나무 앞에 처음 섰을 때는 좀 놀랐다. 마치 일부러 누군가 칡넝쿨로 차나무 전체를 묶어놓은 것 같았다. 아무리 야생차밭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일주차를 접한 다음 날 일주차 나무의 칡넝쿨을 베어내는데 하루 꼬박 걸렸다. 속으로 ‘일주차를 만들어 먹는데 적당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봄에 처음 이 나무에서 찻잎을 조금 따 일주차를 만들어 마셨다. 우리나라에는 일주차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운남성(雲南省)에는 대개 돈 많은 사람들이 한 나무를 지정해 일주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마신다.
일주차를 만들기 위해 딴 찻잎의 양 너무 적다. 사진= 조해훈
일반 차는 차밭의 여러 차나무에서 잎을 따 섞어 제다해 마시지만 일주차는 한 차나무에서만 찻잎을 따 만들어 마신다. 그리하여 차 맛이 일정하고 순수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운남성에서는 일주차를 수령이 오래된 노차수(老茶樹)에서 잎을 따 마시지만 우리나라는 그만큼 오래된 차나무가 없다. 필자의 일주차 나무는 수령이 족히 100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9년 전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나무의 높이나 줄기의 굵기 등에 있어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여하튼 1창(槍) 2기(旗) 찻잎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4월부터 계속 찻잎을 땄더라면 지금도 찻잎이 제법 올라올 터인데 올해 처음 따다 보니 잎이 거의 다 펴버린 것이다. 보이는 대로 찻잎을 땄다. 찻잎도 보드랍지 않고 두껍게 억셌다. 그래도 할 수 없어 다 땄다. 한번 우려먹을 양이라도 따야 했다. 해거름에 가까워지니 깔따구 등 벌레들이 얼굴에 달려들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 벌레들은 달려들지 급하게 딴 후 원두막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필자가 물웅덩이에 풍덩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밤에 덖어 만든 일주차. 양이 너무 적어 제대로 비비지를 못했다. 사진= 조해훈
작은 생수병 한 개를 갖고 와 아까 원두막에서 한꺼번에 물을 다 마셔버려 목이 말라도 마실 물이 없었다. 해거름이 되어 빨리 내려가야 했다. 내려오면서 아까 건너뛴 풀들을 조금씩 베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올라갈 때 길이 아닌 곳으로 간 부분도 있다. 위 차밭에서 아래 차밭으로 내려올 때도 원래 길이 아닌 곳으로 내려오다가 한 번 미끄러졌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올라올 때 풀을 제대로 베 원래 길을 살려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일단 내려오는 게 급선무였다. 필자의 움막 앞으로 내려왔다. 도재명차 뒤에서 합쳐지는 곳에서 어린 나무줄기를 잡고 내려서다 아래의 차밭으로 나 뒹굴었다. 다행히 바위나 돌이 없어 큰 상처는 없었지만 나뒹굴면서 ‘또 다치면 어쩌나?’라고 순간적으로 겁이 났다. 몸이 아래쪽으로 처박혀 일어서는 데 고생을 했다. 잡을 게 없어 몸을 겨우 굴려 엎드린 자세로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와 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벗고 1.8L 큰 생수병 한 통을 다 마셨다. 어지러워 빵과 이것저것 찾아 먹었다. 그런 후 아래채에 가 찬물에 샤워했다. 본채에 있는 필자의 방으로 와 의자에 앉으니 그래도 어질했다. 이것저것 더 찾아 먹었다. 그랬더니 너무 많이 먹었는지 토할 것 같았다. 약을 먹고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런 후 찻잎을 덖었다. 양이 적어 제대로 비빌 수가 없었다. 필자가 여태 찻잎을 따면서 가장 적은 양이었다. 양이 너무 적다 보니 아홉 번을 덖을 수 없었다. 덖고 바깥으로 빼어 내 열기를 식히고 하는 동작을 일곱 번 하고 나니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찻잎이 탈 것 같았다. 그렇게 제다해 거실에 널어 건조했다.
하동문화원 관계자들과 일주차를 마시는 모습. 사진 = 하동학연구소 제공
이틀 뒤인 7월 2일, 박성아 하동학연구소장 등 하동문화원 관계자를 만나 필자가 만든 일주차를 함께 마셨다. 일주차에 대한 설명을 느릿느릿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찻물의 색이 괜찮았고 차향도 제법 있었다. 그런대로 맛도 보통 이상은 됐다. 차 맛이 묵직하면서도 맑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떫은 맛이 있지만 뒤에 가서 단맛이 느껴졌다. 함께 일주차를 마신 이들은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주차를 맛보았습니다. 일주차 설명과 함께 마시니 차가 더 품위 있고 좋았습니다.”라고 품평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