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차산에 있는 차나무들. 사진= 조해훈

오늘인 2025년 4월 16일, 올해 첫 찻잎을 땄다. 말이 찻잎을 딴 것이지 온 차산(茶山)을 돌아다녀 딴 찻잎이 한 움큼밖에 되지 않았다.

올해 봄 날씨가 계속 추웠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찻잎을 좀 땄을 터이다. 오늘 찻잎을 따보니 그나마 햇볕이 잘 드는 위 차밭의 두세 그루 차나무에만 잎이 조금 올라왔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손톱을 이용해 하나하나 땄다. 찻잎이 아직 ‘1창(槍) 2기(旗)’의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소위 1창 1기가 대부분이었다.

위 차밭은 경사가 좀 있는 편이다. 찻잎이 올라온 곳은 원두막 뒤쪽의 차나무와 좀 더 위쪽 차나무 두 군데 정도였다. 결국 온 차밭을 다 돌아다녀도 그 두 군데에서 찻잎을 땄다. 차산을 돌아다니느라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아래로 굴렀다. 경사가 심한 곳이 있고 특히 미끄러운 곳도 있다.

필자가 올해인 2025년 4월 16일, 올해 처음 딴 찻잎. 한 움큼밖에 안 된다. 사진= 조해훈

필자는 찻잎을 많이 따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마시고 손님들 방문하면 대접할 목적으로 차 농사를 짓는다. 만약에 생계를 위해 차를 만든다면 이렇게 해서는 되지 않는다. 차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필자처럼 하지 않는다. 찻잎이 적으면 찻잎 따는 사람들을 불러 따거나, 그렇지 않으면 농협에 가 찻잎을 산다. 이 화개골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찻잎을 따 마을의 다원(茶園)에 팔거나 농협에 내다 판다.

그리하여 자신의 차밭이 없어도 차를 만들어 판매하거나, 차밭이 있어도 따지 않고 구매한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낮에 딴 한 움큼의 찻잎을 밤에 덖어 말리는 모습. 사진= 조해훈

여하튼 오늘 찻잎을 따면서 인근에 올라와 있는 고사리와 두릅나무의 두릅도 함께 땄다.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내려와 각각 나누어 그릇에 담았다. 9년 동안 찻잎을 땄지만 한해 처음 딴 찻잎 중에서 가장 양이 적었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처음 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몇 번이나 이 그릇 저 그릇에 옮겨 담으며 아주 작은 이물질이라도 있으면 골라냈다. 그런 다음 불을 올려 찻잎을 덖었다. 남들이 보면 “무슨 소꿉장난 하느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해마다 양이 적더라도 좋은 차를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찻잎의 양이 적든 많든 만드는 방법은 같다. 양이 적으면 힘이 적게 든다는 것뿐이다. 실장갑을 끼고 덖은 후 비볐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였다. 그런 후 거실에 판을 펴고 그 위에 종이를 깔아 덖은 찻잎을 널었다. 혼자 두 번 정도 우려먹을 양이다. 필자는 진지하건만, 직접 차 농사를 지어 찻잎을 따 차를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웃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우린 2025년 첫 녹차. 그리 진하지는 않지만 차향이 확 번져 황홀했다. 사진= 조해훈

이튿날 필자는 부산에 볼일이 있어 아침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찻물을 끓여 조심조심 작은 다관(茶罐)에 차를 넣고 물을 부었다. 이 다관은 필자가 구매하여 사용한 지 30년이 넘었다. 다관에 물을 부으니 그리 진하지는 않지만 차향이 번졌다. 그 순간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이 기쁨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다관이 작아 찻잔에 두 잔 정도 나올 것 같다. 한꺼번에 두 잔 다 마시기는 아까워 한 잔만 마시고 일어섰다. 다른 한 잔은 부산에 갔다가 저녁에 집에 와 마신 후, 두세 번 더 우려 마실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2025년 첫 차를 만들어 한 잔 마셨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우울한 일이 많지만 첫 차를 만들어 마시는 이런 작은 기쁨들이 큰 힘이 된다. 사람마다 작은 기쁨을 느끼는 종류가 다 다를 것이다. 필자는 차를 통하여 남들이 느낄 수 없는 별다른 기쁨이 있어 나름 행복하다.

그리하여 필자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정말 귀한(?) 차를 맛보게 되는 셈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