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 아이들은 논다 : 뇌가 좋아하는 놀이
4. 아이들은 표현한다 : 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5. 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 : 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6. 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 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 3-16 대립과 경쟁을 풀어가는 지혜를 배우는 전래놀이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서 사라져 버린 전래놀이
오징어게임 시리즈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이 놀라운 인기에는 드라마의 긴장감 고조에 일익을 담당하는 각종 전래놀이가 있다. 우리나라 전래놀이에는 분명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재미있었던 어린 시절 놀이를 떠올려 보라. 아마도 고무줄, 땅따먹기, 구슬치기와 같은 전래놀이가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강력한 매력에도 요즘 아이들 놀이에서 전래놀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바깥놀이터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나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이들을 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있다면 아마도 선생님 주도하에 ‘전래놀이’ 수업을 하는 경우일 것이다. 전래놀이가 이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즐기는 놀이 문화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대립적인 경쟁 관계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전래놀이 속 규칙
시대가 변했고 놀이 문화도 달라졌으니 전래놀이 같은 구식 놀이가 사라지는 것도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걱정스러운 이유는 전래놀이 속에서 아이들이 마땅히 경험했던 ‘규칙놀이’의 결핍이다.
전래놀이의 재미는 특유의 놀이 규칙에서 출발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든 술래잡기든 대부분 전래놀이에는 함께 놀면서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 있다. 그런 이유로 전래놀이는 놀이 유형에서 규칙놀이로 분류할 수 있다.
전래놀이의 규칙에는 명확한 특징이 있다. 바로 참여자에게 상호 대립적인 목표 행동을 부여하여 서로 경쟁하게 한다는 점이다. 술래잡기에서 술래는 쫓고 나머지는 도망치는 것이 목표 행동이고, 숨바꼭질에서는 찾는 것과 숨는 것이 목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숨는 자와 찾아내는 자 사이의 대립과 경쟁 관계가 긴장감과 스릴을 만들고, 잡았을 때의 성취감과 도망쳤을 때의 안도감 등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다. 이것이 놀이의 재미를 만든다. 인기 TV 프로그램인 러닝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규칙을 따르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
이렇게 재미있는 규칙놀이인데 왜 아이들의 놀이 문화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왜 놀이중심교육과정을 표방하는 유아교육 현장은 규칙놀이 문화를 부활시키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필자는 한마디로 요즘 아이들에게 규칙놀이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규칙놀이를 즐기기에는 미성숙하다는 뜻이다.
규칙놀이는 참여한 아이들이 규칙을 이해하고 규칙을 지키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개 다섯 살이 되면 간단한 놀이 규칙을 이해한다. 술래잡기 하면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다가도 술래에게 잡히면 울어버리는 다섯 살이다. 놀이 규칙을 이해했지만 쫓기는 다급한 상황은 아이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다. 한편, 여섯 살 정도가 되면 다소 복잡한 규칙도 이해하는 인지 능력과 자기 행동을 통제하는 힘도 생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다. 여섯 살 아이들과 얼음땡을 하면, 누가 ‘땡’도 안 해줬는데 움직인다는 제보가 빗발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규칙을 어기고 싶은 충동도 함께 있는 시기이다. 그런 충동과 갈등을 놀이 속에서 경험한 일곱 살이 되어야 비로소 규칙을 따르면서도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하며 진정으로 규칙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이런 일반적인 발달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규칙놀이 경험과 절대적인 놀이 시간이 부족한 요즘 아이 중에는 놀이규칙을 인지적으로 이해해도, 신체적으로 놀이 규칙을 따르기 힘든 아이들이 많다. 정해진 규칙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이 편한 쪽으로 규칙을 바꾸려 하거나, 반대로 규칙을 억압으로 여기며 놀이 참여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놀이가 재미없다고 말한다. 자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절제하는 힘, 즉 자율성이 길러지지 못한 탓이다.
이러니 전래놀이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참여자들이 놀이 규칙을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는데 전래놀이는 재미있을 리 없다. 누가 누가 규칙을 어겼다고 선생님에게 일러주기 바쁘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심판관이 감시해야 하는 놀이가 무슨 놀이란 말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 제공]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 제공]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한 장면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 제공]
승부가 동반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아이들이 전래놀이를 즐기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놀이 속에서 경험해야만 하는 격정적인 감정들 때문이다. 전래놀이는 본질적으로 규칙이 정하는 대립 관계 속에서 이기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흥분과 긴장을 견디며 목표 행동을 향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기는 기쁨 또는 패배의 쓴맛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높은 정신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소화하기 힘든 감정들이다.
개인차는 있더라도 대개 여섯 살쯤 되면 자의식이 생기면서 승부에 진심이 된다. 이기면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지면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빠와 달리기에서 졌다고 울기도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패배에 얼마나 격정적으로 반응하는가는 그 아이가 가진 승부욕과 에너지,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의 배려로 얻는 조작된 승리가 아니다(한두 번은 필요할지 모른다). 오히려 이겼을 때의 성취감만큼이나 패배했을 때의 절망감도 온몸으로 느껴야 건강한 자신감이 자란다. 어떤 감정도 내성을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이런 감정의 근육을 기르는 것은 놀이라는 인생의 연습장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져도 그만이고 이겨도 그만인 놀이, 매일 매일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놀이는 감정의 근육을 기르는 최적이자 유일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대부분의 아이가 이런 승부와 관련된 감정에 취약한 것이 안타깝다.
전래놀이 속에서 배우는 ‘규칙 감각’
한 사회가 어떤 규칙을 어떻게 정하고 얼마나 잘 지키는가는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규칙이란, 사회가 가진 힘(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이고 그 힘은 구성원을 위해서 사용될 수도, 구성원을 괴롭히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래놀이는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해도 아이가 ‘규칙에 대한 감각’을 배워 가는 과정이 된다.
자연법칙과 달리 인간 사회의 규칙은 절대적이지 않다. 규칙은 구성원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놀이 규칙이라고 늘 같은 것은 아니다. 맨날 하는 잡기놀이 규칙도 좁은 놀이터에서 할 때와 넓은 공원에서 할 때가 다르다. 아이들도 너무 넓은 곳에서는 술래도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도망칠 수 있는 범위를 좀 줄이거나 술래를 두 명으로 늘려 규칙을 조정한다. 술래가 너무 힘들면 놀이가 재미없어지기 떄문이다. 여섯 살이나 일곱 살 형 누나가 다섯 살 동생들과 함께 놀 때면 동생들에게만 유리한 ‘깍두기’ 규칙을 적용해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약자인 동생을 놀이에서 배제하는 대신 규칙을 조정하여 함께 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대립적인 경쟁 관계의 양자 간 균형을 공정한 규칙으로 조정해가는 법을 배워간다. 규칙 감각은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함께 살아가는 지혜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이 정해 주면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규칙의 다는 아니다.
대립과 경쟁을 풀어가는 지혜, 전래놀이
인간의 뇌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크게 인지한다. 갈등과 대립이 없는 사회는 없다. 다만, 문명화된 인간은 대립을 불화나 전쟁이 아닌 타협과 화합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대립과 경쟁을 풀어가는 지혜를 어린 사회 구성원에게 가르치는 진화된 형태가 바로 규칙이 있는 전래놀이가 아닐까? 놀이 속에서는 대립과 경쟁도 재미로 승화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전래놀이에 재미를 붙이고 자주 많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보자. 전래놀이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놔두기에는 너무도 값진 문화이자 교육 방법이다.
◇ 임지연 박사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