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박사의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생태유아교육】(13) 몸으로 터득하는 도전놀이가 아이를 키운다

임지연 승인 2024.08.27 14:29 의견 0
[픽사베이]

<차례>

1.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 아이들은 논다 : 뇌가 좋아하는놀이
4. 아이들은 표현한다 : 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5. 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 : 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6. 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 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13. 몸으로 터득하는 도전놀이가 아이를 키운다

패배가 불편한 아이들, “내가 봐줬다!”

수년 전 연구를 위해 방문한 한 유치원 바깥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만5세 남자아이들 4명이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흙바닥에 동그란 선을 그리고 중앙에는 작은 홈을 파서 선 밖에서 구슬을 던져 홈에 집어넣는 아이가 구슬을 따먹는 놀이었다. 요즘 보기 드문 구슬치기라 반가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던 필자는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아이가 구슬을 던지니 안타깝게도 홈 밖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말했다. “봐줬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다음 아이가 구슬을 던졌고 마찬가지로 구슬이 홈에 들어가지 않자, 그 아이도 약속한 듯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봐줬다!”

이 귀여운 ‘허세’에 웃음이 나면서도 필자는 아이들에게서 걱정스러운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바로 ‘패배’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태도이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각하는가? 그러나 의외로 승패와 관련한 문제는 최근 부모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우리 아이는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문제예요. 형이랑 게임하다가 지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에요.”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안 하려고 해요. 아빠랑 보드게임에서 진 뒤로는 다시는 그 게임을 안 하려고 해요.”와 같은 고민이다.

[Gettyimagebank]

실패 속에서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힘이 자란다

냉혹한 경쟁사회를 살아가게 될 아이들에게 굳이 어릴 때부터 실패의 아픔을 맛보게 해야 할까? 패배가 아이의 기를 죽이지는 않을까 걱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른들의 편견으로 놀이 속 패배를 확대하여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도 어릴 적 딱지치기에서 겪은 패배를 인생의 좌절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유년기 놀이를 통해 승패와 성패를 경험하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 속 패배와 실패 속에서 자기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내가 구슬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구슬을 따먹기도, 구슬을 따먹히기도 한다는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왜 구슬이 홈에 들어가지 않았냐, 왜 내 구슬을 따먹느냐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승부니까. 자연스럽게 아이는 행위의 결과가 항상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님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수용하는 자세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바꾸고 싶다. 지면 이기고 싶고, 못하면 잘하고 싶은 놀이 특유의 재미와 스릴이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아이는 결과를 바꾸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한다. 구슬치기를 잘하고 싶어 구슬 던지는 연습을 하고, 릴레이 선수가 되려고 음식을 골고루 먹기 시작한다. 놀이 속 실패가 아이에게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길러준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힘이다. 놀이 아닌 살벌한 사회생활 속에서는 절대 기를 수 없는 힘이다.

이것이 앞서 소개한 “봐줬다”는 아이들의 허세가 불편한 이유이다. ‘봐줬다’는 자기 위안으로 자기 행위의 객관적 결과를 회피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구슬이 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내가 제대로 던지지 못한 탓이지 ‘봐준 것’이 아니다. 결과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으니 그 결과를 바꾸는 힘도 생길 리 없다. 구슬 던지기 연습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아이는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기를 기회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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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놀이는 영유아기 아이에게 도전 놀이가 될 수 없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기르는데 효과적인 유년기 놀이가 있다. 필자는 그것을 ‘도전놀이’라 부른다. 도전놀이란,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팽이치기, 줄넘기, 자전거타기와 같이 잘하기 위에서 반복되는 실패나 연습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놀이를 말한다. 한마디로 한번에 성공을 할 수 없기에 도전을 해야 하는 놀이들이다. 대개 승패가 있는 놀이는 아이들에게 ‘도전’에 대한 강한 동기를 주기 때문에 좋은 도전놀이가 된다.

단, 영유아기 아이에 유익한 도전놀이에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몸을 움직여 하는’ 놀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7살 아이에게 팽이 돌리기와 한글 읽기 중 어떤 것이 더 유익한 도전놀이일까? 즉,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놀이는 무엇일까? 필자는 팽이가 훨씬 더 유익한 유년기 도전놀이며 반대로 한글에서 도전을 배우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팽이는 대소근육을 움직이는 신체 능력과 관련되지만, 한글은 인지 능력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영유아기는 신체 및 감각 기능이 발달하는 시기이고 이 능력이 뇌발달을 비롯한 다른 능력 발달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개인차는 있으나 대부분의 영유아기 아이들은 자기 손발을 움직이는 것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신체기능이 능숙해짐을 지각할 수 있다. 줄팽이를 돌리기 위해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여 줄을 감아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팽이를 던져야 성공하는지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반면, 한글 읽기는 다르다. 문자를 읽는 능력은 문자의 모양을 기억하고 자음과 모음의 관계를 이해하는 인지 능력과 관계되며, 이러한 인지 능력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는 개인차가 큰 편이다. 만 3세에도 한글을 읽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만 5세도 아직 한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가 있는 것이다. 즉, 한글을 읽는 능력은 개별 유아의 발달차이지, 개인 노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한글을 읽는 아이는 자기가 노력해서 읽게 된 것이 아니고, 한글을 못 읽는 아이도 노력이 게을러서가 아니란 뜻이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팽이는 다르다. 어떤 아이도 팽이를 처음부터 잘 돌리는 아이는 없으니 팽이를 돌리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따라서 팽이를 잘 돌리게 된 아이는 그 결과가 자신의 연습과 노력 때문임을 정확히 인식한다. 내 노력으로 얻어낸 성취가 바로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반면, 인지능력인 한글 읽기는 대개 한글을 읽게 된 과정을 아이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 아이로서는 ‘노력 없이’ 성공이 얻어진 셈이다. 그러니 자신감을 배우기 어렵다. 심각한 것은 인지적으로 준비가 안 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을 때이다. 노력은커녕 학습에 대한 좌절감이나 부정적인 편견을 길러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유아기의 도전은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아이가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노력이고 결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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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놀이문화에서 도전놀이가 사라졌다

초등 방과 후 강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승패가 있는 전래놀이를 할 수 없다고. 승부에서 진 아이들은 울고불고 화를 내고, 이긴 아이들도 다시 게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진 아이도 이긴 아이도 다음 승부가 불편하긴 마찬가지이다.

왜 아이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봐줬다’는 허세 뒤에 숨겼을까? 왜 고작 구슬치기 승부에 아이들은 자존심을 세웠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기고 지는 경험, 성공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해서이다.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도전놀이’를 찾아보라. 그저 처음부터 성공하도록 세팅된 놀이 밖에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한 번에 성공하지 않으면 쉽게 포기를 하고 사소한 실패나 패배에도 심리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른보다 우월한 유연함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지면 울던 아이도 그런 경험을 몇 번만 하고 나면 더는 울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과를 받아들인다. 지다가 이길 수도 있고 실패하다가 성공할 수도 있으며, 그 반대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아이는 체험으로 터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도전놀이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임지연 박사

◇ 임지연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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