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 아이들은 논다 : 뇌가 좋아하는놀이
4. 아이들은 표현한다 : 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5. 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 : 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6. 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 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12.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은 대가
자녀의 놀이를 찾아 헤매는 부모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아우성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할 거리가 없다 보니 아이들과 부딪히게 되고 야단을 치거나 화를 내는 빈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주말마다 체험학습장이나 키즈까페 등 외출할 곳을 찾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부모들의 고충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이제 부모가 자녀와 노는 법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는 사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 것인가?’ 라는 물음은 성인이 던지기에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아이의 놀이 상대는 또래이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자녀를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훈육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모는 있었지만, 자녀와 노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식사와 수면, 훈육은 당연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여겼지만, 아이들의 놀이까지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아이의 놀이시간에 부모는 집안일을 하였고, 아이는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부모가 어린 자녀와 놀이하는 것은 사실 부모에게나 아이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성인인 부모와 유아기 자녀가 자유 시간을 오래 공유하기는 생물학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주는 부모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이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 역시 부모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생애 주기에 있는 부모와 자녀는 생체리듬도 다르고 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다르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뛰어다니고 파헤치며 어지르기를 원하지만, 부모는 얌전히 앉아 휴식하고 싶다. 게다가 집안에서 할 일이 많은 부모는 아이와 진득하게 놀아줄 넉넉한 물리적인 시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 움직이고 싶은 아이와 조용히 쉬고 싶은 부모가 장시간 실내에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불행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통제된 놀이 문화,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왜 한국의 많은 부모는 자녀의 놀이까지 고민하게 되었을까?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자녀와의 놀이를 고민하는 부모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부모와 자녀가 가정에서 격리되면서, 뛰어다니고 떠들고 어질고 싶은 아이와 그런 아이의 행동을 제지해야 하는 부모의 갈등이 극심해졌고 이를 타개하는 놀이법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가져온 변화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며 최근 20여 년간 꾸준히 악화하여 온 우리 사회의 놀이 환경의 취약함을 드러내준 계기일 뿐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는 “제발 좀 밖에 나가서 놀아라” 하며 아이들을 집밖으로 쫓아버릴 수 없다. 자동차가 오가는 길에 아이 혼자 보내기도 위험할뿐더러 우레탄 바닥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즐기는 모래놀이나 곤충잡기를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놀이터에는 같이 놀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어른과 같이 집에서 놀아야만 한다.
한국의 놀이 문화를 바꾼 또 다른 요인은 놀이를 효율적인 학습 시간으로 만들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이었다. 유아교육계에는 ‘교육적인 놀이‘라는 미명으로 어른 입맛에 맞는 학습교재들이 대량 보급되었고, 이것이 가정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한국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쇠퇴하고 있다. 놀이 시간은 줄고, 놀이 공간은 실내 중심으로 협소해졌으며 놀이의 내용도 빈곤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거창한 연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가 기억하는 놀이 공간은 집 앞 골목이나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해가 지기 전까지는 늘 동네 언니오빠나 친구들과 놀았던 것 같다. 좋아했던 공놀이나 모래놀이, 소꿉놀이, 딱지치기, 잘하지 못해서 깍두기로 참가할 수 있었던 고무줄뛰기, 동네 언니들과 함께했던 종이인형놀이 등이 기억난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당신에게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추억의 놀이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놀이를 지금 아이들에게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추억의 놀이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우리 아이들의 놀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가 제한된 ‘통제된 놀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미리 준비해주고 세팅해주는 놀이, 기계나 놀잇감이 있고 놀이하는 방법이 정해진 놀이들이다. 예를 들어 유아기 놀이로 자주 소개되는 물감놀이나 요리놀이도 부모나 교사가 물감이나 요리 재료를 세팅해주고 옆에 붙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놀이’를 해주어야 한다. 퍼즐이나 레고, 색칠공부,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TV와 테블릿,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도구와 방법에 따라 하는 것이 바로 ‘놀이’인 것이다. 대신,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물·모래놀이, 잡기놀이나 숨박꼭질, 곤충잡기 등은 사라지고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통제된 놀이의 대가,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아이들
아이들을 ‘통제된 놀이’로 키운 대가는 실로 크다. 필자는 매년 급증하고 있는 소아・청소년의 불안장애와 주의력 결핍장애(ADHD)는 자유로운 놀이의 결핍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학 전문가들은 이들 질환은 다양한 원인(유전적, 환경적, 개인적 경험 등)에 의해 발생되며 그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놀이의 결핍과 불안장애의 관련성에 관한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불안이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갖는 정상적인 경고 반응이다. 불안장애란, 불안을 느낄 만한 위험한 상황과 자극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느낌이 계속되어 고통스럽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즉, 위험에 처해있지 않은데, 끊임없이 심각한 과각성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안을 일으킬 활동을 미리 피하는 회피 증상을 보인다.
영유아기는 성인보다 불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유아기는 높은 불안만큼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공원에서 공벌레를 한참을 쳐다보다 문득 뒤를 돌아보고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공벌레에 집중하는 것이 아이이다. 건강한 아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미지의 세계로 나가며 성장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놀이이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계를 온몸으로 알아가며 미지를 기지의 세계로, 불안을 안정감으로 바꾸어 간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 자신감은 적응력과 창조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미지의 세계로 나가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만 생활한 아이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무기력과 불안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안한 아이는 당연히 진득하게 한 곳에 집중할 수 없고 쉽게 피로해지니 더욱 집중이 어려워진다. 결국 학습과 정서, 사회성 발달에도 지장을 준다. 이것이 자유로운 놀이의 결핍이 불안장애와 주의력 결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놀 줄 모르는 아이, 필요한 놀이는 따로 있다
통제된 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은 생애 한번도 제대로 놀아보지 못하고 성인으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증거가 바로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이다. 매력적인 놀이터에 데려다 놓아도 “뭐 하고 놀까요?”, “이거 해도 돼요?”, “엄마(선생님), 이거 좀 해주세요.” 하며 연신 어른들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스스로 놀 거리를 찾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이다. 통제된 놀이만 경험했으니 당연하다. 사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는 부모의 고민의 이면에는 ‘놀 줄 모르는 아이’가 있다.
당신이 어린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취했던 놀이를 한번 떠올려 보라. 왜 그 놀이가 그토록 재미있었는가? 자유로웠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내가 뭐라도 된 것마냥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했다는 그 짜릿한 만족감에 온몸이 전율했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그런 짜릿함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논 것이다. 그러니 놀이를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해서도, 어설픈 학습교재로 아이의 귀한 놀이 시간을 빼앗아서도 안 된다.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놀이는 따로 있다.
<참고문헌>
김성원, 권미량(2015). 한국 유아기 놀이의 세대별 변화에 대한 연구. 한국보육학회지, 15(2), 263- 293
요한 하리(2023).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김하현 옮김). 에크로스.
◇ 임지연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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