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알아냈는가?”일 것이다.

지구 생물체는 자신들 중의 하나가 진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30억 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밝힌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었다. 공정하게 말하면 몇몇 다른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을 종합한 사람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다윈은 이 장의 표제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에게 우리가 이치에 맞는 답을 가르쳐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명에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심오한 질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미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저명한 동물학자 심슨G.Simpson은 이 세 가지 중 마지막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1859년 이전에 이 문제에 답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모두 가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점이다.”」

-리처드 도킨스(홍영남·이상임)/THE SELFISH GENE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2025)/45쪽-

도킨스는 지적 오만에 가까운 확신을 가지고, 도발적 주장으로 이 책(『이기적 유전자』)을 시작한다. 위 인용문은 이 책의 제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Why are people?’의 첫 소제목 ‘진화 -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첫 부분이다.

우리는 세상사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도무지 가리사니가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타인들의 사회적 행위는 물론 지인들의 행위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문학·사회과학 책을 집어 들곤 한다.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진화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다. 확실히 인식의 지평은 넓어졌다. 그러다가 진화의 핵심인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서재에서 그와 관련한 책을 찾았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게 『이기적 유전자』다.

속표지에 2001년 판을 2001.8.31에 구입했다는 내 서명이 있다. 그러나 읽기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던지, ‘앎에의 욕망’을 추동하여 앎을 실현할 의지가 부족했던지, 서문 등만 읽고 서가에 밀쳐놨던 걸 알 수 있었다.

고전 반열에 드는 책은 가능한 한 최신본을 읽는 게 좋다. 누적된 번역 실력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예스 24’를 통해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 출판 40주년 기념판 에필로그를 붙인 무려 89쇄가 2025년 6월 10일에 나왔다.

즉시 주문하여 2001년 판과 대조하며 읽어보니, 본디 뜻에는 다르지 않지만, 역시 읽기가 쉽게 문장도 매끄럽고, 이해도를 높이는 점에서 새 판본을 산 게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킨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그대는 동의하는가?

“인간은 한때 모든 신비로운 존재 중 가장 위대한 존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신비하지 않다는 확신으로 이 책을 썼다. (왜냐하면 그 비밀이 풀렸기 때문이다.)

다윈과 월리스가 그 비밀을 풀었다. 비록 당분간은 우리가 그들의 설명에 각주를 다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가장 심오한 문제를 해명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에 대해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믿기지 않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이용철)/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2024/9쪽-

도킨스의 경험담 하나를 보자.

「창조론자인 학생이 선발 과정의 실수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동물학부에 입학한 사건이 생각난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건학 이념으로 하는 미국의 작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순진하고 어린 지구 창조론자로 자라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자 그는 진화론 강좌를 들어야만 했다. 강의가 끝났을 때 그는 강사 앞으로 다가왔다. (전에 우연히 만난 친구였다.)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원초적인 기쁨을 표출하면서 그는 환호했다.

“우와! 진화론 이거! 정말 말 되는데요.” 그렇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의 지도자가 친절하게도 내게 보내준 티셔츠에 적힌 문구 그대로다. “진화, 지상 최대의 쇼 -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 -앞의 책, 549쪽-

도킨스는 진화론에 대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대다수의 사람이 진화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은 진화론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지어 명망 있는 과학자들 중에는 창조 과학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진화론에 대한 내 짧은 지식으로 만든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다.

“원숭이는 왜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느냐?” 이 질문이 왜 엉터리인지를 안다면, 원숭이가 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진화론에 대한 기본 개념 파악은 했다고 할 수 있다.

도킨스의 삼부작은 ‘이기적 유전자 - 눈먼 시계공 - 확장된 표현형’이다. 이 외에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등이 있다. 그리고 여러 저서를 통해 펼친 이야기를 종합한 듯한 책이 『불멸의 유전자』(을유문화사/2025)이다.

내 일상이 늘 그러하듯, 지적 여행을 한다. 띄엄띄엄 읽은 위의 도킨스 저서를 체계적으로 섭렵하겠지. 여기에 더해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지능의 기원』, 『진화의 오리진』, 『다윈의 위험한 생각』 등을 정독하면, ‘진화’에 대한 일가견을 갖게 될 것이다.

지적 여행은 내 인생관과 형편에 맞는 여행일 뿐이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세상이 삶이 무엇인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즐겁게,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진화론은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지적 혁명이다. 그러나 이 지적 혁명을 무시해도 잘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AI가 일으키는 혁명은 진화론이 불러온 혁명과는 차원과 성질이 다르다. 모르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