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거 고물이라니까요

정광모(소설가)

이스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야기 공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스의 78차 행사에 참여한 회원과 참가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이스는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발표자는 메모나 폰 등 어떤 도구에도 기대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겪은 사건과 삶을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와 예술인, 기업인들이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나눴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말을 잘못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진실은 사람에게 언어를 넘어 파동으로 전해지니까요. 저희와 참가자 모두 동시대를 사는 발표자가 전하는 ‘진솔한 경험’에 감동하고 이 시대를 구성하는 수많은 측면을 살펴볼 기회에 놀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생활과 나’라는 주제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직장과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번에 말씀을 해주실 이분을 어떻게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 흔히 고물상이라고 많이 부릅니다만 최근에는 리사이클링업자 또는 자원재활용업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고재석 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소개받은 고재석입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서 많이 떨립니다. 앞에 계신 분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고 진행자 말도 깜박깜박 놓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요, 제가 말하게 된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도 못 했습니다. 솔직히 강사비가 30만 원이나 되어서 나왔습니다. 제 일당의 두 배나 되거든요. 아니 세 배인가요. 미리 리허설도 하고 사전 교육 받는 시간도 들었지만 요즘 같이 어려운 시절에 작지 않은 수고비입니다.

전 여러분들이 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예전 출연자 동영상을 보니 뭐 독일에서 유학한 피아니스트나 전기차 배터리 연구원과 같은 분이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혼과 화학 원리를 말씀하더군요. 음악이 전하는 영혼의 울림이나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전기 동력을 만드는 과정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 동영상만 봤다면 여기 나올 생각을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그런데 출연자 중에 만둣가게 사장, 콜센터 직원도 있더라고요. 저도 만두소를 만들고 힘들게 만두를 빚는 분과 온갖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전화기 한 대로 버티는 삶이 놀라웠습니다. 여러분이 왜 만두를 빚고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나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겠다. 자신감이 불끈 솟았습니다.

저는 고물상을 하고 있습니다. 고상하게 말하면 청소서비스업이죠. 제 사업자 등록증에는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저는 달랑 1톤 포터 트럭으로 작업을 합니다. 소박하죠. 고물상을 하려면 트럭에다 담장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하며 집게차와 30톤 저울을 갖춰야 한다고 안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제법 규모가 큰 중견 업자입니다. 거기다 전선 피복을 벗겨 구리를 채취하는 전선 탈피 기계와 고철을 분쇄 정리하는 슈레더 기계도 필요하고 알루미늄 캔과 철 캔을 분류하는 이동 컨베이어 기계도 있으면 더 좋지요. 그렇게 갖춰놓고 일하는 게 우리 고물 업자의 꿈 아니냐 말하면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넣어야 하는 사업이 되면 고철 1kg당 10원만 단가가 떨어져도 업이 휘청휘청합니다. 공장과 같은 큰 업소를 관리하는 고물 업자끼리 서로 계약을 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해지고요. 힘듭니다. 1톤 트럭 하나만으로 어떻게 고물업을 하느냐, 그래도 마당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묻는 분이 계시는데 요즘 도시에 마당 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고물상 마당에서 철이나 플라스틱 정리하면 우리는 귀에 익어 있으니까 괜찮은데 철컹철컹 시끄럽다고 주변에서 민원이 그렇게 많이 들어옵니다. 사람은 생소한 소음에 민감한 동물입니다. 고물상이 미관이 좋지 않다, 우리 아파트값 오르지 않는 게 후문 근처에 있는 고물상 때문이다, 고물상 이전을 촉구한다, 구청에 이런 민원 내는 분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원인이 장땡인 나라에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민원공화국입니다. 민원 내면 공무원이 일일이 답을 해줘야 하고 구청장은 선거에 표 떨어질까 싶어 안절부절 챙기고 또 챙기지요.

저는 1톤 트럭 한 대만 있고 마당도 없는 아주 맨몸의 업자입니다. 그래도 거래처가 27곳이나 되어서 밥을 먹고 삽니다. 그 27곳이란 게 20이나 30세대 되는 빌라가 여러 채, 낡고 층수도 낮은 두 동짜리 아파트나 한 동짜리 아파트, 초등학교와 중학교 몇 곳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장이나 대단위 아파트는 당연히 없지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데는 자본과 기계와 야적장이 준비된 곳에서 챙겨간다고요. 2,000세대 아파트만 되면 업자가 1년에 삼천만 원 정도 아파트 사무소에 대금을 지불하고 가져갑니다. 2,000세대면 25층 아파트가 20동이나 됩니다. 거기서 나오는 폐지와 캔과 고철과 병과 플라스틱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사는 동네면 괜찮은 물건이 더 많이 나오죠. 폐기물조차 소득이 높은 곳일수록 질이 좋아져요. 오래되었다고, 신상품 샀다고 샤넬, 구찌 가방을 버려요. 뻥 아닙니다. 실수로 버렸다고요? 제 친구는 그거 주워서 명품 수선업체에서 손보고 광내서 중고로 팔았습니다. 제가 거래하는 곳은 아파트래도 경사진 산자락에 있거나 진입로가 좁아 큰 차가 들어가지 못하고요. 빌라는 더욱더 규모 있는 업자가 오기가 어렵습니다. 큰 차라면 기름값도 빼기 힘든 곳이죠. 저는 폐기물 시장 중에서도 틈새시장에서 먹고 사는 맨발의 청춘인 셈입니다.

제 어제 하루의 일과를 말씀드리죠. 산자락 경사진 곳에 있는 200세대 연식 나가는 아파트에 먼저 갑니다. 1층에 별의별 것을 다 버려놓았습니다. 침대도 있고 의자와 탁자에 소파도 있습니다. 제가 1달에 38만 원 받고 저런 것을 다 정리합니다. 거저죠. 38만 원이 다 내게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못 쓰는 침대 하나만 해도 구청 관할 폐기물 업체에 연락해서 가져가게 하면 5만 원은 내야 합니다. 제가 침대를 해체해서 분리하면 50리터 쓰레기봉투가 두 개는 필요합니다. 그거 다 제 돈으로 사야죠. 하여튼 1주일에 한 번은 들려서 부피 나가는 폐기물부터 병, 캔, 고철 등을 챙겨오죠.

그다음은 150세대 아파트입니다. 경사가 급하고 마당이 좁아서 1톤 트럭을 후진해서 폐기물장까지 모양 좋게 집어넣어야 합니다. 폐지는 1층 구석에 쌓아둡니다. 박스부터 폐지, 포장지 등등이 가득 쌓여 있죠. 1톤 트럭 양옆에 받침대를 세우고 폐지를 바닥에서 던져 올립니다. 여름철에 작업하면 죽을 맛이죠. 땀이 흘러 눈을 못 뜰 때가 있어요. 물을 마시면 땀으로 몽땅 나가서 화장실 갈 필요가 없지요. 깨끗한 박스와 종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치킨 박스, 아이스크림 포장지, 음식물 봉지 이런 게 많으니 벌레들이 꼬입니다. 박스를 들춰서 트럭에 올리면 살판났던 벌레들이 여기저기 숨는다고 바쁩니다. 물기도 축축하고 비라도 한 번 오면 어디서 새어 들어왔는지 빗물이 폐지장으로 스며들어오죠. 폐지가 물에 젖어 있으면 수집상에서 감량해서 계산합니다. 저는 물에 젖은 박스 올린다고 괜히 힘만 뺄 뿐이죠. 어유, 벌레와 빗물은 양반입니다. 뱀 몇 마리가 박스 밑에 진 치고 있었어요. 어쩌긴요. 삽날로 바로 동강 내서 죽였죠. 산이 옆에 붙어서 담장 사이 틈새로 기어들어 온 겁니다. 트럭에서 몰타르 꺼내와서 담장의 빈틈을 싹 메웠습니다. 여기도 제가 한 달에 35만 원 정도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받습니다. 폐지를 중간상에게 넘기면 1kg에 70원 줍니다. 폐지 가격은 1kg에 40원에서 160원까지 오르내립니다. 폐지 가격이 30년 전에도 30원에서 50원 사이였어요. 그동안 짜장면값 오른 것 따져보세요. 아파트 가격 얼마나 올랐습니까. 비교가 안 되죠. 고물상해서 겨우 먹고 살지 큰돈 쥘 수가 없습니다. kg당 160원 할 때도 있으니까 그때는 목돈을 잡지 않느냐고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폐지가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고물업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여기는 진입 장벽이 없는 업종입니다. 반도체니 전기차 배터리니 하는 장벽 높은 사업이 하늘이면 여긴 지하실 4층입니다. 길 가다 리어카에 폐지 가득 싣고 다니는 할아버지 자주 보지요. 리어카 한 대 채우면 150kg에요. 리어카에 그렇게 많이 실릴 줄 몰랐다고요. 무슨 말씀을요. 2단으로 올리면 리어카 1대에 350kg도 올릴 수 있습니다. 간혹 그렇게 끄는 분들도 있어요. 슈퍼맨 급이죠. kg에 160원 해도 150kg이면 24,000원이에요. 괜찮지 않냐고요. 여러 곳 다니며 수거해서 중간 수집상까지 내 팔과 다리로 끌고 가야 합니다. 헬기로 나르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도 시세가 최고가일 때 말이고 요즘같이 kg당 70원이면 10,500원입니다. 극한 직업이죠. 박스는 중간 수집상에서 아세아제지 같은 골판지 제조회사로 넘기고요. A4 용지만 모으면 1kg에 120원 줍니다. 이건 종이 질이 좋아요. 중간 수집상이 한솔제지 같은 제지회사에 납품합니다.

폐지 가격은 너무 올라도 좋지 않고 너무 내려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너무 오만하게 살아서도 안 되고 너무 자학에 빠져 살아도 곤란하죠. 적절하게 중간의 어느 지점을 택해 욕심부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폐지 가격에 한 말씀 더 드리면 비상계엄 아시죠. 2024년 12월 벌어진 사건 말입니다. 비상계엄 다음날부터 폐짓값이 kg당 20원 떨어져서 40원 했습니다. 이게 언제 회복됐느냐 하면 2025년 6월에 대통령 선거 다음 날에 올라서 70원이 된 거에요. 비상계엄은 우리 말단의 자영업자까지 골병들게 했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따지면 몸 끝의 마지막 모세혈관이에요. 우리가 나누는 영양분 먹고 사는 세포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kg당 40원 주면 폐지 수집이 잘 돌아가겠습니까. 제가 아는 분은 그 뭐라고 하더라, 숙박업, 그렇죠, 에어비앤비 사업을 하는데 계엄 다음 날부터 손님들이 쫙 빠졌다는 거예요. 유럽 쪽 손님은 모두 예약 취소해 버리고요. 유럽인은 계엄 하면 아프리카 독재국가에서 터지는 후진국형 살상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우리 도시가 자랑하는 해변의 매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죠. 위약금이 얼마이든 바로 취소를 합니다. 그러고는 몇 달간 거의 빈방으로 공쳤다고 해요.

다음에는 중학교를 갔죠. 중학교는 행정실에서 마대자루에 병과 캔, 플라스틱, 고철 등 분리수거를 잘해놨고요. 폐지도 나무 바닥에 울타리를 쳐서 깨끗하게 쌓아두었습니다. 여기는 제가 매입비용을 조금 지급합니다. 행정실에서 회식 한 번 할 정도의 돈입니다. 옛날 학생 수가 많을 때는 물건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학생이 팍 줄어서 양도 적게 나오고요. 폐품이 별로 돈이 안 되니까 많이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어요. 수거계약서에는 무상수거로 되어 있습니다만 사람 사는 게 그렇지 않죠. 제 판매 수익 중에 일부를 건네는 거죠. 안 그러면 이 조그만 학교에도 치고 들어오는 폐기업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폐품 가격이 올라가면 그런 미친 업자 놈이 꼭 한두 명씩 생깁니다. 업자들이 동업자 정신이 없어요. 뭐 세상살이가 다 그렇죠.

이 중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하면요. 2월 말에 교과서가 폐지로 막 나옵니다. 3톤 정도 됩니다. 누가 내게 권해요. 교과서는 폐지 상태가 좋아서 kg당 100원쯤 하는데 3톤이면 30만 원쯤 되죠. 교과서를 몽땅 넘겨줄 테니 절반인 15만 원을 자기에게 달라고요. 누가 그랬냐고요. 뭐 행정실 직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폐지를 수거하고 트럭에 싣고 폐지 수집장에 팔고 하는 건 제가 다 하고, 그 양반은 딱 절반 돈만 먹겠다는 겁니다. 제가 안 한다고 했어요. 상도의가 있지 그건 곤란하지요. 내 땀값에 기름값도 계산에 들어가야지요. 그 양반이 3분의 1을 가져가면 마음을 바꿨을까요. 내가 20만 원 가지고 그 양반은 10만 원으로 처리한다면요. 흠. 글쎄요. 지나간 일이니까 이제 따져봐야 뭘 하겠습니까.

학교에서 나와 고철을 수집상에게 팔았습니다. 거래하는 곳이 있는데 차를 10분쯤 몰고 가야 합니다. 그래도 수집상 가까이 갔을 때 팔아야죠. 재수 나쁘면 얼마 되지 않는 고철 팔러 30분씩 운전해야 합니다. 그때가 12시 20분쯤 되었습니다. 수집상에 들어가면 입구에 저울이 있습니다. 저울 앞이 사무실인데 고철을 올리면 제 쪽과 사무실 양쪽에 다 무게가 떠요. 23kg. kg당 250원밖에 안 해요. 하등급 품질의 그냥 그런 잡철이죠. 그런데 250원 더 얹어 6,000원 아귀 맞춰 주더라고요. 고철은 품질이 상 중 하 그리고 잡철이 있어요. 일반 고철과 중량 고철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중량 고철은 철근이나 판재 같은 철강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고철이고요. 재활용 가치가 높죠. 이런 건 비쌉니다. 시세야 늘 변동하지만 kg당 520원 정도 하지요. 중간 수집상 아저씨가 웃으면서 내게 이렇게 팔아서 먹고사는지 묻더라고요. 저야, 고철이 주 종목이 아니니까 괜찮지요. 고철 요즘 고상하게 철 스크랩으로 부르는 고물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을 낀 중소 규모 이상의 수거업자들이 맡아서 하지요. 저는 어쩌다가 걸리는 물건을 잡을 뿐입니다. 운수 좋게 큰 물건이 걸려들 때도 있지만요. 그런 날은 탕수육 먹어도 되는 날이지요. 고철은요. 포스코 그러니까 포항제철에서 직원이 나와 상태를 보고 매입합니다. 플라스틱과 고철이 붙어 있으면 미리 플라스틱 떼야 하고요. 고철값이 많이 오르면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니까요.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것도 힘듭니다.

제가 요 고철 수집상을 좋아하는 이유가요. 바로 옆으로 이면도로로 돌아가면 중국집이 있습니다. 중국집 앞에 트럭을 주차하기도 좋고 1인석이 몇 개 있는데 모서리에 딱 제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어요. 고물 싣고 내리면 몸과 옷에 아무래도 고물 냄새가 배여요. 땀도 많이 나고요. 냄새가요. 이게 골치 아파요. 냄새 민감한 분은요. 사람 귓불 옆 오목한 틈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다네요. 겨드랑이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전 억울해요.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는 사실은 문명의 냄새에요. 우리 생활의 마지막 단계가 뿜어내는 겁니다. 인간이란 배은망덕이에요. 무슨 미쉐린 별 맛집이니 어쩌고 몰려서 즐겁게 먹고 쏟아내는 음식쓰레기에는 기겁을 하니까요. 그래도 어쩝니까. 제가 조심하고 참아야죠. 손님 많은 중국집에서는 썩 반기지를 않습니다. 이 집은 주인이 전혀 그런 내색이 없습니다. 아저씨가 주방을 맡고 아줌마가 홀을 보는데 늘 반갑게 맞아줘요.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놓고 단무지와 함께 한입 가득 넣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어요. 옛날 유목민이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달렸지만 저는 1톤 트럭 한 대로 도시를 종횡무진하는 겁니다. 트럭 노마드인 셈이죠. 트럭 노마드보다 고물 노마드가 더 어울리는 말이라고요. 고물 노마드! 그거 좋네요. 트럭 앞 유리창에 붙이고 다닐까 봐요. 도시라는 초원을 누비며 풀 대신 폐지와 고물을 건져내는 겁니다. 트럭의 변속기를 1단에서 2단으로 올렸다가 3단 4단으로 바꾸면 꼭 말에 박차를 가하는 느낌이죠. 아, 제 트럭은 수동 변속기에요. 지금은 사람들 수동 변속기 운전도 못 해요. 기름값이 적게 들지만 중고차 가격이 별로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 사는 이치 아니겠습니까.

광안리와 해운대에 몇 곳 빌라 거래처가 있습니다. 몇십 가구 되는 빌라는 자체 관리인도 없고 청소부도 없습니다. 그런 빌라들 여러 곳을 묶어서 최소한의 관리만 해주는 주택관리업체는 있습니다. 트럭을 몰고 광안리 빌라로 넘어갑니다. 빌라마다 요일을 정해놓고 1주일에 한 번은 꼭 갑니다. 계약이니까요. 트럭에 음악을 틀어놓고 휘파람 불며 유유히 도로를 질주합니다. 운전 거칠게 한다는 성미 급한 사람도 제 차는 슬슬 피하죠. 제 트럭은 흉터 많은 상이용사를 닮았으니까요. 초원을 달리는 성깔 있는 야생마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런 빌라는 한 번 가면 적어도 50리터 쓰레기봉투 하나는 씁니다. 제가 그래도 20 몇만 원 받잖아요. 쓰레기장 옆에 널린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쓸어 쓰레기봉투에 담고요. 뻘건 국물 남은 컵라면 용기도 치우고요. 거주자들이 재활용 안 되는 폐기물을 제법 내놓아요. 전 불평불만 안 해요. 뭐 한국인이 수준이 안된다, 혼자 사는 연놈들이 인성이 아주 개판이다, 이런 불평 할 사이에 깨끗하게 쓰레기장을 청소합니다. 마대가 낡아 구멍이 나면 제가 마대도 교체해 놓습니다. 마대에 담긴 비닐, 스티로폼, 캔과 페트병, 플라스틱을 트럭에 올리고요. 이거 트럭에 물건 따라 구획을 잘 지어놔야 합니다. 플라스틱과 캔이 섞이면 두 벌 일 해야 합니다. 손수레 끌면서 빌라 마대에서 몰래 캔이나 빈 병 가져가는 양심 불량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완전 양심이 없지는 않아요. 캔을 몽땅 들고 간다 이러지 않아요. 캔 조금만 들고 갑니다. 새벽에 다녀서 저하고 부딪히지도 않아요. 서로 얼굴 붉힐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거죠. 여기 빌라도 폐지 수집장이 구석에 있는데 몽땅 들어내면 바닥이 아주 엉망입니다. 빗자루로 싹싹 깨끗하게 쓸어서 쓰레기봉투에 담습니다. 제가 한 번 다녀가면 빌라 1층 쓰레기장도 1주일은 숨을 쉴 만합니다.

플라스틱은 kg당 180원 하고요. 페트병은 그보다 비쌉니다. 알루미늄은 kg당 1,500원, 구리가 kg당 10,000원입니다. 구리는 8,500원 이하로 내려갈 때가 없습니다. 전기차가 잘 팔리면 알루미늄과 구리 가격이 오릅니다. 데이터센터 많이 짓는다 이래도 올라요. 구리가 재활용품의 왕입니다. 시장경제의 시장가격을 재깍재깍 반영해준다 이런 얘기입니다.

옷은 kg당 250원으로 땡처리하는 용도가 있고, 그 위의 급은 공장에서 기름 닦는 보루로 씁니다. 보루라고 들어보셨어요. 못 들어봤다고요. 공장을 안 다녀보셨네요. 공장 기계와 장비는 기름이 많아요. 절삭유, 윤활유, 구리스, 액체, 반고체 윤활유를 닦을 때 씁니다. 옷은 상 중 하로 나뉘고 상등급은 동남아 등에 팝니다. 어떤 옷은 팔자가 좋아서 멀리까지 갑니다. 아프리카도 가고 남미도 가고요. 팔자가 사납다고 해야 한다고요. 바다 건너 멀리까지 가니까 넓은 세상 구경하는 거 아닐까요. 저야 늘 도시를 뺑뺑이 도는 신세이지만요. 때로는 저 재활용 옷들처럼 멀리 아프리카까지 가서 세렝게티 초원인가요, 초원을 뛰어다니는 사자와 코끼리와 얼룩말과 가젤을 구경하고요. 남미로 가면 물소리가 천둥 같다는 이과수폭포도 구경하고요. 아프리카 사람이 몸에 옷을 걸치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구경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는요. 아프리카까지 가서 그냥 불에 태워버리는 옷이 많습니다. 중국에서도 헌 옷이 엄청 나오고요. 여러분 아파트 단지의 옷 수거함 한 번 보십시오. 늘 가득 차 있습니다. 홈쇼핑에서 파는 옷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거함으로 들어옵니다. 구멍 난 양말 기워서 신는 시절이 끝나면서 인류 문명의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전 믿습니다.

개똥철학은 이만하고요. 이렇게 도시를 누비고 다니다 보면 특별한 선물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박스째 버려진 물건들이 있어요. 절대로 제가 훔친 박스가 아닙니다. 포장 튼튼하게 된 박스가 쓰레기장에 와 있는 겁니다. 그런 박스 뜯는 재미가 기가 막혀요. 하하. 박스 안에서 백골이 된 아기가 나올 때도 있지만요. 하하 뭘 그렇게 놀라셔요.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 어떻게 했는지 뼈만 가지런히 들어있었다지요. 처음에는 이게 닭 뼈인가 돼지 뼈인가 고민을 했대요. 닭 뼈 치고는 크고, 돼지 뼈 치고는 뼈가 약하고. 경찰에 신고했냐고요. 그건 제가 몰라요. 업자가 아기 뼈를 묻어주고 제까지 지냈다고 해요. 내한테 온 것도 운명이니 훨훨 혼백이 푸른 하늘로 날아가기를 기원했답니다.

칼로 쓱쓱 박스를 열면 또 포장이 나오지요. 그때부터는 조심조심 열어봅니다. 어떨 때는 금속 주형물이 나오고 어떤 때는 초등학생 일기장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금속 주형물은 여기가 항구도시라서 선박 예비 부품일 때가 있어요. 그게 선박과 임자만 찾으면 괜찮게 넘길 수 있는데 찾기 힘드니까 거의 고철로 넘어갑니다. 돈다발이 나올 때는 없냐고요. 없어요. 저도 30만 원 든 봉투를 주운 적은 있어요. 주인을 찾아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던지기 수법을 쓰다가 잘못 전달됐는지 마약 봉지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이건 경찰에 꼭 신고합니다. 마약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게 촉이 딱 와요. 수상하고 불안하고 흥분되고 그런 냄새를 마구 풍깁니다.

해운대 달맞이고개 소형 빌라로 넘어가기 전에 트럭 폐지를 처분해야 합니다. 광안리에서 석대동으로 가서 외곽 수집상에게 가죠. 여긴 외곽이고 주위에 민가나 마을이 없어서 수집상 위치가 좋지요. 땅 자체가 야적장 말고는 쓰기 어렵게 용도가 제한된 토지일 겁니다. 트럭을 몰고 폐지 수집장 앞에 있는 차량 계량기에 올라서서 무게를 재고요. 차 양 옆과 뒤에 설치한 지지대를 빼면 집게차가 와서 싹 폐지를 긁어냅니다. 그리고 다시 후진해서 차량 무게를 재지요. 처음 차량 무게에서 나중 무게를 빼면 폐지 무게가 숫자로 나옵니다. 업체 이름이 오성자원이고 일종의 폐기물 업체 지사입니다. 본사는 울산에 있고요. 본사는 고철과 알루미늄 나오는 공장하고 거래를 많이 합니다. 본사는 고철 파쇄 장비도 있고요. 드럼통도 순식간에 절단하고 폐지는 압축기로 1톤의 정육면체 모양으로 만듭니다. 1톤 트럭에도 압축 폐지를 3개에서 4개까지 실을 수 있어요. 조금 전에 잰 차량 총중량 2,450kg, 공차 2,090kg, 폐지 360kg 실중량. 지급 금액 28,800원. kg당 80원쯤으로 계산했네요. 지금까지 벌이가 고철 6,000원과 폐지 28,800원 합해서 34,800원 밖에 되지 않네요. 그래서야 이름만 근사한 노마드는 커녕 먹고 살 수 있냐고요. 뭐 빌라와 아파트에서 수거비로 받는 돈도 있고요. 전선이나 캔이 많이 나오는 날도 있어요.

이렇게 일하러 다니다 보면 고물을 팔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이 종종 있어요. 그분들은 희한하게도 가장 시세가 좋았던 시절의 금액을 부르는 거예요. 자기가 그때 그 금액으로 팔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거래가 안 맞죠. 거짓말은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니죠. 시세가 좋지 않았을 때의 거래는 깡그리 잊어먹은 거죠. 내게 득이 되고 유리한 것만 남아서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죠.

어제 마지막 일정은 해운대 빌라였습니다. 소형으로 몇 집 안 됩니다. 여긴 한 달에 수거비로 4만 원 밖에 못 받습니다. 달맞이고개 가까운 곳 작은 빌라인데 1층에 이삿짐용 대형 푸른색 박스가 하나 있어요. 폐지 수집통인데 거의 쓰레기통 수준입니다. 폐지도 있지만 담배꽁초가 많고요. 음식물 찌꺼기에 국물이나 빗물이 아래에 고여 있어요. 이런 거 50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정리해야 합니다. 분리 수거함이 있는데 거주자들이 제멋대로 버려요. 캔이나 고철은 별로 나오지도 않아요. 제가 수거하고 있으면 주민이 옆에 서서 다른 빌라 사람들이 여기다 쓰레기 버린다, 그런 거는 네가 처리 못 하나, 여기서 수거비로 얼마 받는가, 이거 팔면 돈 좀 되제, 와 이렇게 지저분하게 정리하노 등등 별 시답잖은 말도 걸어오고 때로는 시비도 겁니다. 저는 그저 예예 하면서 가볍게 맞장구치면서 정리를 합니다. 아무 말 않고 수거하면 젊은 사람이 건방지다거나 싸가지가 없다는 등 트집을 잡는 일도 일어나고요.

저녁에 일 마치면 가능한 퇴근 시간 전에 트럭을 운전해서 집으로 갑니다.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니까요. 어제 같은 경우 9시부터 5시까지 일을 했네요. 들어보니 건설 현장에 가서 일당 15만 원에 일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글쎄요. 건설 일용직도 현장에 매여 일해야 하고요. 저야 트럭 노마드이니까요. 규칙적으로 현장을 방문해야 하지만 목동도 소와 양을 풀밭에 데려가야 하니까요.

제 노마드 삶에 큰 상처를 내는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제가 수거하는 해운대 빌라를 갔더니 폐지 박스 옆에 플라스틱 화분 세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화분에 흙이 좀 들었고 흔히 보는 파란색 화분이었지요. 당연히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폐지 박스와 재활용품 마대 사이의 빈 공간에 놓여져 있었고 새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트럭에 올려놓고 수집상에게 팔았죠.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팔았는데 무게로 따지기 때문에 개당 150원 정도 쳐서 450원 정도 받았을 겁니다. 이 화분을 밖에 내놓은 아주머니가 화분을 가져간 사람을 절도로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겁니다. 자기는 화분을 차에 싣고 가려고 내놓았다가 깜빡 잊고 놔두었다는 거예요. 그게 버리는 용도였으면 재활용품 마대에 넣었을 거고 바닥에 그렇게 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좋습니다. 말이 된다고 칩시다. 경찰서 담당 경찰관이 감시카메라를 몽땅 뒤져서 저를 찾아낸 겁니다. 이틀이나 카메라를 훑는다고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제게 소환장이 왔지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바쁜 사람입니까. 9시부터 5시까지는 정신없이 다녀야 합니다. 수거 장소에 1주일에 한 번은 가야 하니까요. 1주일만 지나면 폐지나 재활용품이 제법 쌓입니다. 냄새도 나고 버리는 물건이 많이 쌓여 있으면 주민이 보기에도 불편하지요.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어요. 무슨 일로 부르냐고 물었더니 수사 기밀이라서 얘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기밀이라니 같잖은 용어 아닙니까. 쓰레기맨인 제가 기밀 뭐 그따위 수상쩍은 말에 얽힐 뭐가 있겠습니까. 저녁 늦게 가면 안 되냐고 물으니 수사경찰도 근무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할 수 없이 경찰서에 갔습니다. 담당 경찰관이 턱이 좁고 광대뼈가 나오고 비쩍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조서라는 게 웃깁니다. 이름 주소 나이 직업 이런 것 처음에 묻지 않습니까. 내 신상 정보를 탈탈 털어 피의자 조서에 때려 넣는 거죠. 이게 컴퓨터 안에 들어가면 사라지지 않아요. 아마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동안은요. 이런저런 제 개인 신상을 한참 물었어요. 고물업을 얼마 동안 했느냐, 수입이 얼마냐 이런 것도 물었고요. 제가 청소서비스업으로 고쳤습니다. 고물상 그거 언제 적 용어입니까. 제가 한 달에 2,000만 원 번다고 하니까 경찰관이 자판을 탁 두들기더니 저를 째려보는 겁니다. 고재석 씨, 여기 장난치는 곳 아닙니다. 사실 그대로 진실되게 말해야 됩니다. 아니, 이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사실 그대로 진실되게 말하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대통령과 재벌 회장부터 9급 공무원과 신입 사원까지 그렇게 사는 사람 어디에 있나요? 결혼정보회사에 가보세요. 모두가 과장에 적당한 허위에 덧칠한 인생을 내놓아요. 경찰관이 도덕 교과서를 읊는 바람에 기분이 팍 상했습니다. 제 대답이 고울 리가 없지요. 전 한 번 조사로 끝나는 줄 알았어요. 마치고 트럭을 몰고 빌라로 가야 했으니까요. 경찰관이 질질 말을 끌더니 며칠 후에 다시 와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빌라 쪽과 맺은 재활용품 수거계약서를 가져와야 한다는 겁니다. 아니, 내가 바쁜 사람이다, 지금도 일하러 가야 한다, 오늘도 짬을 내서 왔다고 말하니까 경찰관이 자기도 바쁜데 CCTV를 이틀 뒤져서 나를 찾아냈다고 여유롭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고재석 씨 지금 범행을 부인하고 있잖아요? 네, 뭐라고요. 절도 말입니다. 절도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고 있죠. 내가 말했습니다. 그야 당연하죠. 제가 몇백 원짜리 화분을 왜 훔칩니까. 경찰관이 이러더군요. 범행을 부인하면 당연히 조사가 길어지고요. 조사해야 할 사람도 많아집니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제가 경찰관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만 실수했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겁니까.

하여튼 며칠 후에 또 갔습니다. 수거계약서를 드렸지요. 수사 경찰관이 나와 계약한 관리업체 직원을 부른 겁니다. 그 관리업체는 해운대 근처 작은 빌라를 대여섯 곳 묶어서 관리해 주는 곳입니다. 그분에게 이 계약서가 당신이 서명한 계약서가 맞나? 여기 수거 품목에 폐지, 캔, 고철, 공병(소주병, 맥주병)으로 되어 있는데 화분도 포함되는가? 계약서의 이 조항은 무슨 뜻인가? 저 조항은 무슨 뜻인가?

세 번째 불러갔을 때는 화가 솟구쳤습니다. 경찰서에서 순서 기다렸다가 조사받고 다시 현장에 가면 몇 시간은 훌쩍 빼먹는 겁니다. 그래서 몇몇 빌라에서는 야간작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불만이 나옵니다. 직장에서 퇴근한 사람이 집에 들어올 때 쓰레기 치우는 퀴퀴한 냄새 맡기 좋아하지 않거든요.

네 번째 조사에서 플라스틱 화분 소유자인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게 너무 미안해했습니다. 수거업자가 가져간 줄 알았으면 고소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지요. 고소도 처음에는 할 뜻이 없었다고 했어요. 지나는 길에 경찰서 민원실에 들러 이럴 경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고소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약식으로 된 종이 한 장에 사건 내용 쓰고 서명했더니 일이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말은 경찰관이 CCTV 찾는 시간도 들였고 범죄사건 별로 승진 점수가 있어서 그냥 못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어요. 아주머니에게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했더니 자기가 경찰관에게 고소 취하한다고 이미 말했답니다. 경찰관이 절도죄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도 조사가 계속 진행된다고 했다네요.

제가 조사받으면서 경찰관에게 고소인이 고소 취하하겠다는데 막았다고 따졌습니다. 경찰관이 말하기를 막은 건 아니고 조서에 취하로 기재해 놓았다고 답했습니다. 조사는 그래도 계속된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좋은 소리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경찰이 할 짓이냐, 당신 승진 점수 때문에 이 짓 벌이는 것 아니냐, 서민 등골 빼먹는 게 경찰 업무냐. 경찰관도 화가 나서 고함 지르고 나도 고함 질렀죠. 경찰관이 법대로 하겠다고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법대로 한다는 말은요.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뜻입니다. 조사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경찰관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어요. 제가 수거 업무만 5년을 했습니다. 팔 근육, 몸 근육이 단단합니다. 헬스장에서 근육 키운 것과 다릅니다. 경찰관이 내한테 멱살을 잡혀서 캑캑거리더군요. 조사실 경찰관들이 와서 뜯어말려서 제가 참았어요. 경찰관이 나를 공무집행방해에 폭행죄로 잡아넣겠다고 했습니다. 나도 조사 경찰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잡아넣어라. 나도 너 잡아넣겠다. 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제가 억울한 사정 꾹꾹 담은 호소문을 만들어 민원 게시판 올릴 수 있는 곳 다 올렸습니다. 대통령실, 행정안전부실, 국회, 경찰청, 지방경찰청, 언론사 제보실 나중에 헤아려보니 47곳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도 계정 만들어 올렸습니다. 갑질의 왕, OO 경찰서. 제가 글을 잘 썼어요. 젊을 때 글쓰기 강좌를 배웠는데 이럴 때 써먹을 줄 몰랐습니다. 지금도 강사의 말이 기억납니다. 단순 명쾌하게, 도입부에서 사건의 본질에 바로 뛰어들어라. 제목도 시선을 끌게 지었습니다.‘450원 폭탄은 서민을 어떻게 죽이는가’ 제목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눈에 탁 들어오지요.

제가 낸 호소문 덕분에 제가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제 사건을 무혐의로 처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저도 바랬습니다. 웬걸요. 경찰도 이런저런 해명을 하면서 저를 기소유예 처분으로 끝냈습니다. 기소유예는 죄는 있지만 혐의가 가볍다는 등 여러 이유로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다는 죄명이죠. 참 끈질긴 애들이에요.

저는 지금도 1톤 트럭과 함께 수거 업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 가까운 주점에 가서 하이볼 한 잔과 치즈에 프로슈토를 올린 안주를 먹곤 합니다. 프로슈토가 뭐냐고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많이 아시는 분들이. 때로는 삼겹살과 소주도 마십니다. 주점에 특이한 볼거리가 있어요. 주점 맞은편 흰 벽에 소리 없이 영화 화면만 보여줍니다. 며칠 전에 갔더니 첨밀밀 영화가 돌아가고 있어요. 장만옥과 여명이 10여 년을 홍콩에서, 미국에서 헤어지고 만나고를 되풀이하는 영화지요. 이상하게도 나는 영화에 빠져서 하이볼을 세잔이나 마셨습니다. 나는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렀습니다. 홍콩이라는 비좁은 도시에서 노동하고 겨우 생존하면서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하는 그들의 삶 때문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내 등을 여주인이 가볍게 두드리고 지나갔습니다.

어떻습니까. 도시를 떠도는 고물 노마드의 삶, 그런대로 괜찮지 않습니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