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박사의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생태유아교육】(10) 아이의 뇌는 글자가 아니라 말과 이야기로 자란다

임지연 승인 2024.05.28 17:55 | 최종 수정 2024.05.28 17:56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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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 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 : 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4. 아이들은 논다 : 뇌가 좋아하는놀이
5. 아이들은 표현한다 : 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6. 어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 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10. 아이의 뇌는 글자가 아니라 말과 이야기로 자란다

혼잣말을 하는 아이가 문제해결력이 높다?!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노는 아이들이 있다. 공룡 인형 두 마리를 양손으로 잡고 “#$%@야~~“, ”아니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연신 진지하게 떠든다. 종이접기를 하며 “네모 접고, 열고, 세모 접고...” 중얼거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하는 혼잣말은 뇌발달에서 언어가 하고 있는 역할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다수의 연구는 혼잣말을 많이 하는 아이의 문제해결력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만 4~5세 아이들에게 퍼즐 맞추기를 하도록 하였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이들의 혼잣말이 늘었고, 혼잣말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높았다고 한다. 독일에서 이루어진 다른 연구에서도 혼잣말을 잘하는 학생일수록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어려움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대처했다고 밝혔다.

혼잣말은 문제해결력 외에도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력을 강화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하는 데 이러한 능력은 모두 뇌의 전두엽이 하는 고차원적인 기능들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과 전두엽의 기능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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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고와 감정, 행동을 조절하는 도구

건강한 뇌는 궁극적으로 목적에 맞게 잘 행동하는 뇌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정교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행동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부위인 전두엽은 호모사피엔스 고유의 발명품인 ‘언어’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기 때문이다. 사고능력은 비약적인 발전시킨 언어의 역할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언어는 감정과 움직임을 조절한다. 서너 살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린이집에서 처음 집단생활을 시작하는 영아들 사이에서는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어린이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지도가 바로 “화가 나면 말로 해요”이다. 말 못 하는 영아들은 친구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가면 바로 친구를 밀치거나 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반복해서 알려준다. “때리지 않고 말로 해요.” “안돼’라고 말로 해줘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감정대로 행동하려는 충동을 말로 통제하면서 사회적인 행동을 배워나간다. 비슷한 맥락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풍부한 사람일수록 감정 조절을 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둘째, 언어는 사고를 견인한다. 한마디로 높은 수준의 사고는 언어가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생각’은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 즉, 사고는 결국 언어인 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들을 떠올려보라. 너무 익숙해서 의식해 본 적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의도적인 생각들은 언어화되어 있다. 느낌과 이미지만으로 가득한 상념들(멍하게 있는 상태)도 ‘생각’으로 정리하려면 언어라는 필터를 거치게 된다.

저명한 인지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유아기 혼잣말을 통해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아이는 혼잣말로 느낌이나 경험을 표현함은 물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데, 아이는 점차 말소리를 내뱉지 않고서도 머릿속으로 말하게 되고, 혼잣말은 소리 없는 내적 언어(inner speech)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내적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아이는 사고를 정돈하고 논리를 발달시켜 간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어려운 과제에서 혼잣말은 많아지는 것도 아이가 어려운 과제를 풀기위해 더 많은 집중과 복잡한 사고를 하려고 언어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해석된다. 이처럼 언어는 내면의 감정과 충동을 컨트롤하고 자신의 사고를 고차원적으로 끌고 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언어가 없었다면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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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에 필요한 언어 자극은 글자가 아닌 말과 이야기

이제 사고력에는 언어라는 매개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제 영유아기 교육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러한 언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영유아기 교육에서 ‘언어’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어와 한글 교육은 부모님들이 유아교육기관에 요청하는 수업에서 빠진 적이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어른들이 관심 두는 언어 교육은 말이나 이야기보다 글자에 있다는 점이다. 성인 입장에서 언어는 곧 글자를 뜻할지 모르나 이제 막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영유아들에게 말과 글자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영유아기에는 문자언어보다 음성언어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언어와 관계된 뇌의 영역들은 광범위하다. 음색과 음소를 구분하는 청각 영역, 타인의 말소리와 입 모양을 주시하고 흉내 내게 하는 시각 영역, 혀와 턱, 성대를 움직여 발성을 하고, 단어와 문장의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 운동 영역, 음소, 단어,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영역, 등 언어와 관련된 영역은 대뇌피질 전체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언어와 관련된 뇌 영역들은 결국 말(소리)을 듣고 의미를 이해하는 동시에 의미를 이해해서 말(소리)로 바꾸는 능력을 위해 협업하고 있다. 바로 음성언어를 다루는 능력이다. 간단해보일지 모르나 엄청난 능력임을 명심하자. 이 능력이 간단했다면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푸념을 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은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음색, 음성에 담긴 어투나 감정을 읽는 것에서부터 긴 이야기를 들으며 등장인물들과 상황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거나 공감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반면, 문자언어는 어떤가? 복잡한 듯 간단하다. 음성언어를 다루는 능력에 문자라는 상징을 ‘해석’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듣고’ 이해하는 대신에 ‘읽어서’ 이해해야 한다. 분명 문자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음성언어보다 장기간의 학습을 요구한다. 학령기 내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는 데 들이고 있는가?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자언어를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음성언어에 기초한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긴 글을 해석하려면 긴 이야기를 듣고 떠올리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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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에 필요한 언어 자극은 ‘맥락 있는 일상 언어’

필자는 영유아기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한글을 읽고 쓰는 일도 영어를 배우는 일도 아닌, 말과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말하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정상적인 언어 습득을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맥락 있는 일상 언어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맥락 있는 일상 언어’이다. TV나 스마트폰 CD 플레이어와 같은 기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가상현실의 말소리들이 아니란 것이다. ‘듣고 이해하고 말하기’ 위해 영유아에게 필요한 언어 자극은 눈앞에 있는 어른들과 눈을 맞추며 하는 일상적 대화, 다양한 일상의 상황 속에서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맥락들과 그 속의 이야기들이다. 거실에서 놀면서 식탁에서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동냥하는 경험이야말로 아이에게 꼭 필요한 언어 자극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대 육아에서 1만 시간의 ‘맥락 있는 일상 언어’는 그것 자체로 큰 도전임을 알 수 있다. 말을 배우는 유년기를 대략 4년 정도이라고 보면 하루 평균 6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인데, 대한민국 가족의 56.7%는 간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30분 미만이다. 사람들의 시간은 TV와 스마트폰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언어치료센터, 점점 떨어지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문해력 문제는 제대로 된 언어 능력의 습득이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함을 보여준다. 영유아들이 자라나는 유아교육기관이나 가정에서만이라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가득해지길 바란다.

임지연 박사

◇ 임지연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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