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박사의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생태유아교육】(9) 아이의 뇌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하며 자란다

임지연 승인 2024.05.04 09:30 의견 0
[khc]

<차례>

1.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
2. 7세까지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배우고 자라는가?
3. 아이들은 일상을 반복하다 : 뇌 발달을 보장하는 하루 일과
4. 아이들은 논다 : 뇌가 좋아하는놀이
5. 아이들은 표현한다 : 만들고 그리고 이야기하며 발달하는 뇌
6. 어아이들은 공간과 호흡한다 : 뇌발달을 지원하는 환경
7. 대한민국에서 지혜로운 부모 되기

#09. 아이의 뇌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하며 자란다

건강한 인간 뇌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한다.

건강하게 발달을 완성한 인간의 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인간의 뇌는 한마디로 ‘잘 행동하기 위해’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동물들이 주어진 환경과 자극에 반응하고 본능을 따라 움직인다면 인간은 환경과 자극을 극복하기도 하고 본능을 억제하기도 하며 다양한 상황에 따라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동물의 뇌보다 우수한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뇌를 가진 성인이라면 사무실에서와 장례식장에서 혹은, 주말 TV 앞 소파에서 하는 행동이 알고 있다. 화가 아무리 치밀어도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건강한 뇌가 제대로 기능한 덕분이다.

인간이 상황에 따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본능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즉,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인간 뇌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적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목적 지향적 행동은 일견 간단한 능력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늘어나는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틱장애, 중독장애, 우울증 등의 각종 정신질환도 결국 뇌가 목적에 맞는 행동 조절에 실패한 결과임을 상기해 보라. 목적 지향적 행동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고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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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목적 지향적 행동을 얼마나 ‘잘’ 하는가

사실 목적의 종류만 다를 뿐 인간 삶에서 목적 지향적 행동이 아닌 것을 찾기 힘들다. 소파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목적이 있는가 하면, 다이어트로 체중을 10kg 감량하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과 같은 무게감 느껴지는 목적도 있다. 따라서 목적 지향적 행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뇌로 발달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뇌의 ‘전전두엽’에서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외부 자극과 감정, 욕구, 그리고 기억을 통합하여 목적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게 하는 인간 두뇌의 컨트롤 타워이다. 전전두엽의 발달은 유년기에 시작하여 사춘기를 거쳐 25세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무리된다. 데이비드 바드르는 저서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에서 전전두엽의 기능 중 하나인 목표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인지조절’이라고 부르고, 인간 뇌의 부위 중 가장 늦게 그리고 오래 발달하는 영역이라고 하였다.

성인기에 발달이 완성된다고 하여 영유아기에는 전혀 발달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전두엽은 유년기에 중요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청소년기까지 계속해서 정교해진다. 일단 큰 길이 생기는 때가 영유아기라면, 그 길 위에 고속도로가 생기냐 KTX가 생기냐는 청소년기 이후에 결정되는 것이다. 어쨌든 영유아기에는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뇌의 목표-계획-행동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 영유아기에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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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성은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로 부터

아무리 좋은 목적과 계획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목적 지향적 행동에는 마음먹은 것을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 바로 ‘자기 주도성’이 필요하다. 영유아기 아이들이 ‘목적-계획-행동’의 모든 단계를 정교하게 수행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목적)을 나름의 방법(계획)으로 직접 해보기(행동)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라. 계속 넘어져도 계속 일어난다. 걸음은 서툴러도 ‘하고자 하는 의욕’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목적 지향적 행동을 위한 기초공사가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주목할 할 점은 아이들의 의욕이 행동의 결과로 얻은 성공이나 평가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는 실패 가능성을 계산하고 아예 행동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어른과 다르다. 아이는 줄넘기를 넘지 못해도 계속 해본다. 아이가 겪는 작은 성공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여, 아이가 경험하는 실패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아이가 즐겁게 줄넘기의 실패를 감수하는 것은 그것이 아이 자신이 선택한 목적이고 계획이고 행동이기 때문이다. 자기 주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줄까 봐 ‘실패’는 제거하고, 성취감만 맛보게 하려고 ‘성공’을 조작하는 것이다. 아이의 선택과 행동의 반경은 제한하고 도전 과제를 없애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뇌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을 버리고 어른과 같이 결과와 평가를 의식하며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자기주도성은 ‘내가 해냈다’는 결과보다 ‘내가 선택했다’는 만족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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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열망하느냐가 행동을 지속하게 한다

어떤 목적이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계획한 행동을 지속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더 오래 집중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과제에 오래 집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뇌과학자들은 목적에 집중하는 힘은 과제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결국 절실한 사람이 포기 없이 꿈을 이루는 것이다.

목적에 가치를 부여하는 뇌의 영역은 ‘복내측전전두엽’(Ventral Medial Prefrontal Cortex)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감정과 공감과 관련된 영역으로 감정기억이나 사회적 가치, 윤리, 도덕을 바탕으로 행동 판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신나게 축구했던 기억이나 멋진 축구선수의 경기를 보았던 경험이 축구선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하고,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력을 촉발한다. 이렇게 보면 뇌과학적으로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유아기 교육에서 유의해야 할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는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과 정서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래에 아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을 때, 그 꿈에 대한 열정도, 행동하게 만드는 의욕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힘도 모두 다양하고 생생한 감정들이 섞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 속에서 아이들이 나름의 수준에서 공정, 관용, 공존, 협력 등의 선한 가치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정이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공동체가 전해주는 의식적 무의식적 가치들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사회정서적 가치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건강한 뇌를 가진 아이는 꿈꾸고 도전할 줄 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라. 서너 살의 아이부터 고3 수험생까지 온 나라가 교육에 열심인 세상이다. 그러나 가슴 속에서 ‘하고 싶다’는 열정이 사라진 아이들이 많다. 꿈이 있어도 도전을 해본 적이 없고, 게임에서 한번 졌다고 하늘이 무너진 듯 울어버릴 만큼 실패가 낯선 아이들이다. 더욱 개발되어야 할 아이들의 뇌는 오히려 더 망가져 가고 있다. 교육이 인간 뇌의 가장 고등한 능력인 전전두엽의 기능이 쇠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강한 뇌를 가진 아이는 꿈꾸고 도전할 줄 아는 아이이다. 필자는 이것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져야 할 뇌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간절히 열망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아이는 스스로 세상에 설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정확히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것만큼 안전한 교육 목표가 또 있을까?

<참고문헌>

박문호(2021).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공부. 김영사

데이비드 바드르(2022)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인지조절의 뇌과학(김한영 역). 해나무.

임지연 박사

◇ 임지연

▷(사)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https://www.ecoikium.org/) 소장

▷서울시 생태친화보육사업 컨설턴트

▷대구교육대학교 생태유아교육 강사

▷호치민시 한국학교 유치원 교사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학사/석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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