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수리 중
이 광
더 빨리 더 편하게 의심할 나위 없이
누르던 그 버튼이 응답하지 않는다
길이라 여겼던 벽이 감춘 본색 내민다
묵묵히 한옆에서 기다려준 길을 본다
어둠 속
한 층 한 층
밟고 오른 생의 계단
센서등 환한 불빛이 안부를 물어온다
시인들은 낡고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고장 난 사물을 통해 생의 회복을 꾀하기도 한다. 승강기는 고층 건물의 이동 수단으로 더 빠르고 더 편한 문명의 이기이다. 정전 시에도 비상 발전기가 가동하여 운행이 계속된다. 하지만 고장으로 작동이 정지되면 승강기 출입구는 ‘길이라 여겼던 벽’이 되고 만다.
승강기 이용이 불가한 위급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비상계단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처럼 묵묵히 한옆에서 맞이하는 길은 모처럼 찾아오는 이에게 그간 어떻게 살아왔느냐며 센서등을 밝혀준다. 우리 삶은 ‘어둠 속/ 한 층 한 층/ 밟고 오른’ 계단과 같은 거 아닐까. 계단은 현대문명과 상대되는 오래된 관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 관습이 우리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