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62) 호랑이콩 - 이숙경
이광
승인
2022.12.21 13:53 | 최종 수정 2022.12.23 15:07
의견
0
호랑이콩
이숙경
말린 장어 떨이가
몹시도 고마운지
여투어 둔 콩코투리
덤을 주는 항구 아낙
밥물에 붉게 우러나
무늬지는 무서운 정
이숙경 시인의 <호랑이콩>을 읽는다. 호랑이콩은 콩알에 호피 무늬 같은 얼룩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초장은 시인이 호랑이콩을 입수하기 직전 상황으로 그 배경은 항구에 인근한 시장의 난전 같아 보인다, 한 아낙이 팔고 있는 말린 장어를 떨이해줌으로서 한 편의 시를 이루는 정서적 교감이 일어난다.
떨이로 하루의 과업을 완수한 항구 아낙은 손님이 ‘몹시도 고마운’가 보다. 그녀는 ‘여투어 둔 콩코투리’를 꺼내 손님에게 쓸 만큼 건네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덤으로 줄 자신의 상품을 떨이하였으니 더는 줄 게 없어 집에 가져가려고 따로 챙겨놓은 콩코투리를 집어든 것이다. 이렇듯 덤은 흥정을 끝낸 뒤 오가는 정으로 상거래를 상호유대의 장으로 만든다. ‘원 플러스 원’이나 쿠폰 다섯 장 모으면 한 번 공짜라는 상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골이 될 리 없는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건네는 덤은 너그럽게 떨이해준 손님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가 담겨 있다.
이러한 진심은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리하여 흐뭇한 심정으로 귀가한 시인은 덤으로 받은 콩을 넣어 밥을 짓는다. ‘밥물에 붉게 우러나’는 콩밥을 보며 오늘 우연찮게 나눈 정을 음미한다. ‘무서운 정’이라 함은 호랑이콩이란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면서 주변을 물들일 수 있는 인정에 감탄하는 마음을 잘 나타낸 표현이라 하겠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