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탄 나비

이광

나비다!
뜻밖인 듯 아이가 소리친다
전동차 한 곳으로 옮겨붙는 시선들
가녀린 나비 한 마리 가는 길 묻고 있다

깜빡 졸다 지나친 역 여긴 어디쯤일까
무심코 따라나선 꽃향기 사라지고
이제야 보이는 수렁 너무 깊이 들어왔나

축 처진 어깨처럼 한풀 꺾인 날갯짓
전동차 손잡이에 애처로이 매달릴 때
인생길 잠시 접은 채
나비가 된 승객들

나풀거리는 나비를 보면 나비를 잡으려고 뛰어가는 아이가 연상되고, 그 모습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꽃향기 따라가다 길을 잃은 나비, 깜빡 졸았을 뿐인데 수렁 깊은 지하철이라니! 한풀 꺾인 날갯짓에 애처로운 눈빛들이 더해진다. 수렁에서 벗어나 제 갈 길로 훨훨 날아갔으면 하는 승객들의 간절한 마음도 손잡이에 매달린다.

김석이 시인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