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비율이 92.5%에 달한다. 25년 전인 1993년은 19.3%였음을 고려하면, 장례문화가 급변했음을 알 수 있다. 화장률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는 도시화와 묘지 공간 부족, 경제적 현실성, 가족구조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발복(發福)을 원하는 산소자리잡기 폐습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풍수는 우리 민족이 지녀온 전통적인 지리관이다. 산소자리잡기인 음택풍수(陰宅風水)와 고을이나 마을의 터잡기인 양기풍수(陽基風水)로 나뉜다. 일반인들은 개인적 욕망으로 음택풍수에만 관심해 왔다.
이제는 매장은 예외적인 경우가 되어 버렸으므로, 적어도 조상의 산소가 자손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는 미신에서 우리가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선조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 일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발복풍수를 믿은 그 심성에는 변화가 없지 않을까?
윤석열의 의식은 까마득한 옛날 제정일치 시대의 샤머니즘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손바닥에 왕(王) 자 부적에 의지해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우리는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또 그는 무속과 풍수에 따라 집무실과 관저를 용산과 한남동으로 이전하는 주술로 임기 첫날 업무를 시작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 무속인은 ‘김건희 여사가 공적 문제 처리나 결정을 위해 조언을 구하는 명리학자와 무속인이 본인 외에도 풍수, 관상, 사주, 미래 예측 등 분야별로 7~8명 더 있다’고 한겨레신문 취재에서 증언했다. 무속과 주술에 의지해 국민의 선택을 받았고, 또 그것들에 의탁해 국정을 운영하는 무지몽매를 누가 추인한 것인가?
현대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무속, 발복을 위한 의식, 음택풍수와 같은 미신에 기대는 심리에는 몇 가지 요인이 깔려 있다고 본다.
첫째, 인간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통제감을 찾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세상이 때때로 예측불가능하게 흘러갈 때, 미신은 숨겨진 질서나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스스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둘째, 이러한 믿음은 인지적 편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두뇌는 무작위적인 사건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의식을 행한 후에 원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면, 그 인과관계를 확증하려는 마음이 작용한다. 이런 확증 편향은 갈수록 미신에 의존하게 만들고, 개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셋째, 미신적 신념은 사회문화적 배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과 의례는 단순한 ‘비합리적인 믿음’을 넘어, 한 집단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속이니 풍수와 같은 의례들은 개인의 고통이나 좌절을 사회적·문화적 맥락 내에서 해석하게 해 주어, ‘보복’이나 ‘복수’ 같은 감정을 보다 상징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넷째, 심리적으로 볼 때 이러한 미신은 인간이 직면한 무력감이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복수나 재난에 대한 통제력을 상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내면의 깊은 불만이나 불안, 고통을 외부 세계에 투영시키려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신을 믿는 행위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감정 작용과 삶에 대한 해석 방식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미신에 의존하는 심리는 단순한 미신적 믿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 내면의 불안, 통제욕,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개인사에 개인적 욕망으로 굿을 하든 이장(移葬)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마는, 미신적 야욕이 국가의 대사(大事)에 관계한다는 소문과 의혹이 난비(亂飛)함에도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공포 전까지 대통령과 영부인 자리를 보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른 이유를 여럿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신에 관련해서는 사회적·문화적 맥락으로 우리사회가 미신에 친화적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묏자리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 미신적 사고가 하 많은가!
인간은 본디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초월적인 힘이나 ‘종교라는 이름의 미신’(에둘러 표현하면, 사이비종교라 해야겠지)에 기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현대에도 ‘과학적·비판적 사고’를 훈련 받은 이는 드물다.
음택풍수가 허무맹랑함은 한 번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왕조는 누대에 걸쳐 풍수의 입장에서 왕릉 입지(立地)를 결정해 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특히 조선 초기 풍수 유행이 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았음을 상기해 볼 일이다. 일류 지사(地師)들을 총동원하고, 쓰고 싶은 땅을 마음대로 골라 쓰게 했는데도 임금의 자손들이 겪은 일들은 오히려 참담한 바가 있으니 이는 어찌 된 일인가.
미신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혹은 땅에서 갑자기 솟은 돌출적인 게 아니다.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미신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얼굴을 달리한다. 미신 친화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미신적 심성’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얼굴을 한 미신이 혹세무민을 계속할 것이다.
따라서 이미 ‘산소자리잡기’ 풍수는 쇠락해졌더라도 그 미신적 심성을 바로잡을 기회로 음택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더 하려고 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후보의 조상 묏자리가 ‘제왕지지’(帝王之地)니 ‘천제지지(天帝之地)니 따위의 가십성 기사가 나지 않기를 바람에서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