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키타카 MKTK]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인생 경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인 순간의 고난이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시켜 심리적 안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소중한 통찰이나 격려의 말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개인을 벗어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내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웃이 고통을 받을 때, 이 말은 가해자와 그에 빌붙은 부역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저항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세월이 거저 가져다주는 법은 없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이미 가진 자들이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 할 뿐, 못 가진 자들을 배려해 스스로 내어준 역사는 없다. 하여 역사의 굵직한 물줄기는 혁명을 통해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소중한 것은 어떤 것이든 ‘쟁취’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이나 세월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나는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변증법 철학에서 나오는 ‘양질(良質) 전환의 법칙’을 믿는다. “양적인 변화가 누적되면,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다”는 원리 말한다. 양이 일정 수준으로 축적되면, 질적인 변화 일어난다는 뜻이다.

체력이 약해 가벼운 산책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매일 하더라도 초기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신체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운동을 이어가면 체력이 서서히 향상되고 신체의 전반적인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운동을 양적으로 누적하게 되어 일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몸 전체의 기능과 체력이 질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극적인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언제 체력이 회복되느냐, 영영 회복되지 않는 게 아닌가, 고 의심하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계속하여 임계점을 넘어서면, 몸 전체의 기능과 체력이 달라져 있음이 확인되는 게 일반적이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99도가 될 때까지 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데 가열이 누적되다보면 딱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가 거짓말처럼 기체로 변한다.

이처럼 사회의 모든 변화는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일어난다. 천천히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니라,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기존의 공고한 사회가 어느 순간 폭발적인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질적인 변화를 위해, 충분한 양적 누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헤겔은 “양이 차지 않으면, 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로 양질 전환의 법칙을 설명했다. 그래서 혁명을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의 좌절이 필요했다. 그 좌절이 없었다면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5년 4월 4일 11시, 조금 후에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를 전 국민이 들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간 게 아니다. 거저 얻는 게 아니다. 뭇 희생의 대가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줄기차게 ‘윤석열 퇴진 운동’의 결실인 것이다. 퇴진 운동, 탄핵 집회에 참여하는 일은 물론 ‘담벼락에다 욕이라도 하고’ ‘바위에 계란이라도 쳤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2년여 세월 동안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을 온몸으로 부르짖던 이 땅의 장삼이사들의 크고 작은 희생과 열정에 마땅히 경탄해 하며, 경의를 표한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