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정치이고,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제 중요한 주장 중 하나입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제학자들 자체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가 경제학을 쓸 때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었습니다.
그때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죠. 20세기 들어 신고전주의학파가 득세하면서 이를 ‘경제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학은 과학이니까 정치 논리나 도덕적 윤리 기준은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제학을 탈정치화된 학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즘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정말 틀린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뭔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는 노예를 사고팔아도 되고, 아동 노동도 허용됐고, 공해 물질을 배출해도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때는 노예와 아동 노동도 경제에 포함됐지만, 지금 최소한 선진국에서는 누가 노동 시장 유연화를 위해 아동 노동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 합니까?
경제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아동 노동이 있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바뀐 것이 아니라, 결국은 아동 노동이 옳지 않다고 사람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금지한 것입니다.
경제 자체가 정치에 의해 결정되는데 어떻게 경제에 정치 논리를 개입하지 말라고 얘기하죠? 그런 분들이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내 정치 논리는 경제니까 건드리지 말고, 네 정치 논리는 (내가 보기에) 정치니까 개입하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결정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할 수도 없고요. 많은 부분은 기술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런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경제도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면, 경제 현상이 지진이나 해일처럼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요.」 -장하준/『경제학 강의』/The User's Guide(pp.28~29)-
이재명 정부가 7월 21일부터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1차 지급한다. 기본 지급액은 1인당 15만 원이다. 차상위계층과 한부모가족에게는 30만 원, 기초생활 수급자에게는 40만 원이 지급된다. 여기에 지역별로 추가지원을 한다.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 거주자에게는 3만 원,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84곳의 거주자에게는 5만 원이 추가 지급된다.
이어서 9월 22일부터 2차 지급을 한다.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를 대상으로 1인당 10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이다.
경제는 곧 정치이다. 이재명 정부가 경제를 대하는 방식은 이재명 정부의 정치를 규정한다. 경제는 정치이므로, 응당 야당은 경제를 이재명 정부와 다르게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묻지마 추경 강행”이라 주장하며, 추경안을 처리하는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대변인은 “추경안에는 소비 쿠폰이라는 선심성 현금 살포가 포함됐고, 야당이 요구한 실질적 민생예산은 철저히 배제됐다”며, “국민의 세금을 들고 표를 사려는 노골적인 포퓰리즘, 그저 ‘선거용 돈풀기’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과연 ‘선심성 현금 살포’이며 ‘노골적인 포퓰리즘’일까? 소비 쿠폰이 민생회복의 마중물로 보느냐, 표를 사려는 선섬성 현금 살포로 보느냐는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은 12조 1709억 원이다. 이를 포함한 추경 재원(30조 5000억) 마련을 위해 19조 8000억원 규모의 국채를 추가 발행할 계획이다. 국채 발행 증가로 국가채무는 GDP의 49%에 달할 전망이다.
소비 쿠폰 예산 12조 1709억 원과 국가채무 GDP의 49%는 미국과 일본과 비교하면 그 재정 건정성의 객관적 지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의 부채비율은 122.3%이고, 일본은 252.4%이다. 미국과 일본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우리와 경제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어쨌건 우리의 재정 건전성은 양호하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것은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에 국가가 내 몰라라, 하며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그 간단한 예로 코로나19 기간에 각국의 지원금을 살펴보자.
한국은 코로나19 시기 긴급재난지원금을 가구별로 4인 이상은 100만 원, 3인 80만 원, 2인 60만 원, 1인 40만원을 지급했다. 전체 예산은 약 14조 2000억 원이었다.
일본은 1인당 현금 100,000엔(약 100만 원)을 지급했고, 전체 예산 규모는 12조 8000억 엔(약 133조 원)이었다.
미국은 세 차례에 걸쳐 1인당 약 2590달러(약 320만 원)을 지급했고, 전체 예산 규모는 8580억 달러(약 1,063조 9200억 원)였다.
한국은 1인당이 아니라 가구별로 지급했다. 아마 1인당 평균은 30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1/3, 미국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무슨 의미인가?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때, 미국과 일본은 그 극복을 위해 국가가 그 부담을 떠안았다면, 한국은 국가의 역할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난 극복으로 미국과 일본은 국가의 빚은 늘었지만 국민은 부담이 가벼웠고, 한국은 국고는 탄탄한데 반해 국민은 빚쟁이가 된 것이다.
부산 남구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당선 축하금”이라고 비아냥대며, “우리 부산 시민은 25만원 필요 없어요”라고 돈키호테식 발언을 했다. 약 34억 원의 자산을 가진 박 의원으로서는 25만원이 아쉬울 이유가 없을 것이다.
2024년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뺌)은 4억 4894만원이다. 전체 가구의 56.9%가 3억 미만의 순자산을 보유했다. 10억 원 이상인 가구는 10.9%이다. 박 의원은 상위 5%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 그가 어느 계층을 대변할까? 서민을 대변하지 않는 것 같다.
민생회복 소비 쿠폰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 소비와 투자 활성화가 성장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까? 아니면, 선심성 현금 살포의 포퓰리즘어어서 언 발에 오줌 누기로 결판이 날까?
어느 쪽이든 결과에 따라 심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정치가 곧 경제다. 경제는 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 먹고 사는 문제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일반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기득권 세력은 활개 치며 해먹을 수 있다.
한데도 누구 좋으라고, ‘정치가 밥 먹여주냐’며 정치혐오 발언을 하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