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7일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걷기 위해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머무는 지역이다. 그날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크레덴셜)을 발급받은 후 한 알베르게에서 잠을 잤다.
비가 끝없이 내리는 가운데 한 순례자가 비옷을 입은 채 필자를 스쳐지나 피레네산맥을 걷고 있다. 이 사람 이후론 필자가 피레네산맥을 넘는 마지막 순례자가 되었다. 사진= 조해훈
그리곤 다음날인 2024년 10월 18일, 순례의 첫 일정으로 피레네산맥을 넘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해 2024년 11월 29일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떠날 때까지 43일간 순례길 위에 있었다.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만 해도 문제가 좀 생겨 과연 다 걸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마침내 걸어서 완주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데 걸리는 시일이 사람마다 같지 않다. 걷는 목적과 방법 등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27일 만에 완주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자처럼 43일 걸린 사람도 있다. 대개 프랑스 길을 완주하는 데 30~40일이 걸린다. ‘빨리 완주하였다,’·‘늦게 완주하였다.’라는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 자신이 걷고자 한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종교·여행 목적에서, 자신의 인내성을 실험하기 위해,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하던 사업을 접고 다른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등 여러 목적에서 걷는다. 필자가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순례 목적이 크게 위와 같았다. 가끔 우리나라 여성 순례자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걷는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음식 조절하면서 걸으면 15kg까지 몸무게를 줄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가씨의 경우 “유럽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필자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2024년 한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증서를 발급받은 순례자 숫자는 총 49만 9,056명(거의 50만 명)에 달한다. 한해 전인 2023년보다 5만 명 넘게 늘었다. 이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프랑스길, 800㎞) 또는 포르투갈 리스본((포르투갈길, 612㎞) 등지에서 출발해 30일 이상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순례자만 셈한 숫자다. 100km 미만을 걸어 순례 인증서를 받지 못한 사람까지 합하면 그 인원을 헤아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러면 순례자들의 국적은 어떻게 될까? 순례 완주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 국내인들로 약 20만 명에 달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출발하는 비아 델라 플라타(Via de la Plata, 은의 길) 코스를 선택해 1,000㎞에 달하는 거리를 걷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생장에서 ‘프랑스 길’을 걸으면서 같은 코스를 걷는 스페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외국 순례자는 미국인(3만 2,000여 명)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이탈리아인(2만 8,000명)과 독일인(2만 4,000명)이었다. 그 외 포르투갈·프랑스·영국·멕시코·한국·아일랜드·호주 순으로 순례자가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30여 일 걸리는 ‘프랑스 길’을 따라 걷는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코스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루트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약 155개의 마을을 지난다. 약 800km이므로 하루에 25km씩 걷는다면 32일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그렇게 걷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리에 문제가 생기거나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중간에 쉬어야 한다.
알다시피 산티아고 순례길은 역사가 1,200년이 넘는다. 9세기에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당이 세워져 유럽의 가톨릭교도들이 무덤 참배 등의 종교적인 이유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페인 왕국 시민들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는 국토수복운동(레콩키스타·718~1492) 기간에 성 야고보 무덤 순례를 통해 전투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길은 종교개혁 등 여러 이유로 오랜 세월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8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가 다시 산티아고 순례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완주자 중 23%는 비종교적인 동기로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는 통계가 있다. 실제로 많은 현대인이 신앙과 관계없이 이 길에 오른다고 한다. 1986년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은 작가 코엘료는 “산티아고 가는 길은 목표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영감을 준다.”라고 말한 바 있다.(가톨릭평화신문 2023. 3. 27일자 참조)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의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천오백 년 전부터 순례자는 자신의 집을 나와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티아고 순례길은 먼 동쪽의 도시인 로마에서, 부다페스트에서 그리고 폴란드의 오그로드니키에서도 시작되었다. 2000년 초반 시작된 우리나라 산티아고 순례자의 숫자가 4,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필자의 지인들은 “어떤 목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까?”라며 궁금해한다. 필자의 연재 글을 읽으신 독자분들도 왜 걸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목적과 순례 후 얻은 생각 등을 함께 섞어 정리하겠다.
첫째, 필자는 30년 전부터 산티아고 완주를 염원하였다. 30대인 1990년대 중반에 스페인에 취재차 갔다. 이미 야고보와 가톨릭 순례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콤포스텔라 성당 인근을 며칠 걸었다. 그리곤 언젠가는 ‘프랑스 길’을 통해 완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산티아고와 관련한 영화가 있으면 찾아서 보고, 순례기 책도 구해 여러 권을 읽었다. 바쁜 신문사 생활에서 30일 이상 소요되는 휴가를 얻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무렵부터 실크로드를 걷게 됨으로써 산티아고 순례는 그야말로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이후 2007년 초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방학 등을 이용해 휴가를 얻었을 때도 실크로드에 갔다. 2017년 학교를 그만둘 무렵 실크로드를 완주(?)하였다. 부산에서 중국을 거쳐(북한 지역은 다 걷지 못함)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란과 튀르키예를 거쳐 그리스·이탈리아에서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 등 북부 아프리카까지 갔다. 물론 걷기도 하고, 낙타와 당나귀 마차도 타고, 버스와 택시, 기차, 배, 비행기 등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였다.
그 후 해마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 실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 계획이 무산되고 무산되다 마침내 2024년 9월에 파리로 가는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산티아고 순례는 벼르면 못 가니 일단 비행기표부터 예약하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산티아고 순례를 하게 된 것이다. 필자의 지인 중에 필자가 그러하였듯이 늘 계획만 세우는 사람도 있다. 또한 필자의 고교 동기인 이규봉이 아들과 산티아고 순례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부산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김예강 시인이 산티아고 순례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녀와야겠다.’라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둘째, 종교적으로 어떤 영적 체험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뒤부터 가끔 성당에 다녔다. 군대 시절까지는 교회에 자주 다녔다. 물론 집안의 종교적 분위기는 불교 쪽이어서 절에도 다니면서 어느 한 종교에 집착하지 않았다. 누가 “종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종교 혹은 무교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기자 시절 유럽 등에 취재차 가면 인근의 성당에 들러 기도하곤 했다. 그리하여 필자를 아는 사람들은 필자의 종교를 가톨릭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종교란을 적어야 할 경우에 가톨릭으로 적곤 했다. 하지만 한 종교에 구속되기 싫어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필자는 바티칸에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고 가톨릭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는 편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스페인의 가톨릭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 1천 년 넘게 순례자들이 걸었던 마을에 들러 실생활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어떤 역할을 했고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셋째, 스페인 북부 사람들과 그곳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필자는 1987년 초 시단(詩壇)에 등단하여 시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시를 짓고 있다. 또 필자는 학창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여러 일(노동)을 하였고, 대학 시절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순례길 중 특히 산골 어르신들의 삶과 생각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였다. 산골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예전에는 초지가 비좁을 정도로 소와 양 등 가축을 많이 키웠다.”라며 아쉬워하였다. 실제로 필자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본 바로는 그 많은 초지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아 무너져 있었고, 트랙터로 농사를 짓고 목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80대 이상의 고령층이었다.
셋째, 문화적인 목적에서였다. 필자는 일찍부터 시를 썼고, 역사를 포함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신문기자 시절 문화부에서 문학·역사·음악·미술·연극·종교 등 문화 전반의 기사를 많이 썼다. 걸으면서 필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문화적인 현상들을 보고 느꼈다. 이를테면 부르고스에서 하루 날을 잡아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에 다녀온 것을 비롯해 와인 생산지를 본 것 등이다. 또한 스페인 건축가인 가우디의 건물을 세 채나 새로이 본 것이라든지 스페인 내전의 흔적과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등 다양하다. 인간 삶의 어느 부분 하나 문화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넷째, 정신적인 ‘긴장감 풀기’이다. 사람은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감 속에서 살아간다. 필자 역시 산티아고 순례를 떠날 무렵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다. 평소에 외국 취재나 여행 등을 많이 해본 경험에 비추어 일단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고 정신적인 압박감도 어느 정도 느슨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순례하는 도중 컨디션이 좋지 않을 시에는 무척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원해서 온 것이니 걸을 수 있는 데까지는 걸어야 한다.’라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리하여 걸으면서 현지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힘듦도 사라지고 마음도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 기대했던 대로 ‘긴장감 풀기’가 나름 이루어진 것이다.
다섯째, 건강 즉 ‘다리 힘 기르기’ 차원이다. 필자는 몸에 근육이 상대적으로 적고 다리도 약한 편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고, 가슴에 스탠트도 삽입한 상태이다. 약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억지로라도 걷다 보면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건강도 좋아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전체 거리의 절반인 400km 이상을 걸으면서 허벅지와 종아리에 근육이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만져보면 단단해진 것이었다. 전체 거리의 절반 이상을 걸었을 때부터 저녁에 숙소에 들어서면 “다리가 아파 더 이상 못 걷겠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병원에 가야겠다.”, “무릎 관절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라는 등의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필자와 몇 차례 숙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성 두 명 중 한 사람은 “작년에 걷다가 무릎이 파열돼 집으로 돌아가 수술받고 완치된 후 다시 걷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행히 필자는 천천히 걸어서인지 다리에 큰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 중인 근육질 몸매의 알베르토 티토도 결국 다리에 문제가 중간에 쉬었다고 했다. 가끔 다리를 만져보면 단단해진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필자는 기분이 좋다. 물론 정신적인 건강까지 좋아졌으니 말이다.
이상으로 필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이유와 완주한 후의 개인적 이야기를 좀 늘어놓았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사람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과 걸은 후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 어떤 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갈 필요 없다. 내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는지 후회막급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라고 필자의 개인적인 느낌을 두서없이 적어봤다. 물론 글로 다 설명하지 못한 필자 내면 의식 속의 그 무엇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800km에 달하는 스페인 북부 산맥 지방의 낯선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그리고 들렀던 그 많은 마을의 분위기와 느낌 등이 생각난다. 우리와 역사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등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도 “조만간 다시 다녀와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산티아고 길을 여덟 번째 걷는다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예수라는 이름의 남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걸을 때마다 다른 생각이 납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