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새밭

올 여름에는 감자를 서너 포대 캘 것 같다. 몇몇 지인들과 나눠먹을 만큼 씨감자를 제법 많이 심었다. 몇 년 묵혀 놓은 텃밭이라 땅심(地力)이 좋아 기대한 대로 결실을 얻을 것 같다.

방문 열면 열댓 발짝, 글자그대로 지척(咫尺)에 있는 텃밭을 몇 년째 묵혀둔 것은, 감히 말해 게으른 탓은 아니다. 내 일과 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 계산한다. 계획한 만큼 읽지도 못하고, 의도한 만큼 쓰지도 못하니, 항상 시간에 쫓겨 텃밭을 돌볼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핑계인가?

올해는 달랐다. 시간 쓰는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아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치미는 부아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 진정이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폭음은 한두 번으로 족하다. 술로 심화(心火)를 달랠 수도 끌 수도 없다. 차라리 과음은 몸을 피폐하게 하고, 몸이 피폐해지면 정신은 더욱 황폐해진다.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시킬 일거리가 절실했다.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마음 괴로움은 몸을 더욱 괴롭힘으로써 해소할 수 있으려니. 지난 가을, 아이들 키 높이로 우거진 잡초를 낫으로 베어, 표토를 덮어둔 채의 황량한 묵정밭이다.

신문을 읽다가,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부아가 치밀면, 차분히 책을 읽을 마음 준비를 갖출 수가 없다. 그때마다 짬짬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우선 갈쿠리(갈퀴)로 하얗게 바랜 잡초를 긁어모아 한옆으로 치웠다.

몇 년 갈지 않았으므로 겉흙이 딱딱하다. 이래서는 작물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삽을 깊이 푹 밟아 찔러 흙을 떠서 뒤집었다. 그리고 흙더미를 잘게 부수었다. 40여 평, 삽만으로 갈아엎는 데 제법 시간과 땀 흘림이 들었다.

일한 만큼 결과가 그대로 눈에 보이고, 땀나도록 몸을 부려먹으니, 마음은 좀은 추슬러졌다. 다음으로 작물을 선택해야 한다. 상추, 고추, 케일만을 심기에는 너무 너르다. 갈아엎어 준비한 땅의 10%면 충분하다. 나머지 90%의 밭에는 무엇을 심을까?

감자다. 절기상으로도 파종시기이고 더 중요한 건 감자가 내 체질에 맞음을 알고 있다. 동무 이제마(東武 李濟馬, 1837~1900)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사람은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네 가지 체질이 있다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제창했다. 이에 따르면 나는 전형적인 ‘소양인’이다.

소양인은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고, 위장의 온도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 열을 중화할 수 있는 차가운 음식이 몸에 더 맞게 된다. 감자는 차가운 음식이고 고구마는 더운 음식이다. 고구마는 따뜻한 성질이어서, 몸의 열을 더 높일 수 있어 소양인에게는 적합한 음식이 아니다.

‘사상의학’은 네 가지 체질로 나누고, 그 체질에 맞게 치료와 처방을 해야 한다는 의학적 통찰에 끝나지 않는다. ‘사상심학’(四象心學)으로 연결된다. 김명근의 『애哀노怒희喜락樂의 심리학(동무 이제마의 사상심학)』(개마고원/2003)을 통해 사상심학을 접했다.

사상심학은 인간의 마음을 애(哀), 노(怒), 희(喜). 락(樂) 네 가지 감정으로 분석하여, 이를 체질과 성격에 따라 조화롭게 관리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감정과 체질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인간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상의학이 체질과 신체적 건강에 초점을 맞춘 반면, 사상심학은 사람의 심리와 감정까지 포함하여 인간을 보다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 사상심학은 서양의 심리학에 해당하는데, 단순히 치료를 위한 보조적 지식의 수준을 넘어 그 자체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심리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요즈음 MBTI가 어떠니 저떠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카를 융(1875~1961)은 『심리유형』에서 사람들의 관심의 방향에 따라 외향성/내향성(Extraversion/Introversion),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서 감각형/직관형(Sensing/Intuition), 판단하는 방식에 따라서 사고형/감정형(Thinking/Feeling)으로 나누어, 성격을 8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여기에다 브릭스와 그의 딸 마이어스는 판단형/인식형(Judging/Perceiving)을 추가해,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곧 MBTI를 만들었다. 이 네 가지 분류기준을 조합하면, 16가지 성격유형이 나오게 된다.

인간을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유형별로 우열을 따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체질이든 성격이든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체질이나 MBTI인 경우라도 농담(濃淡) 강약 등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사상심학이나 MBTI의 신뢰성도 크게 높지 못하다.

우리는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이 소극적 표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름은 동등하다’ 따라서 사상심학에 의한 구분이나 MBTI를 통한 성격유형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앎과 동시에,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곧,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의 한 가지일 뿐이다. 전혀 우열고저 등의 ‘구별 짓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남는 문제가 있다. ‘윤석열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일반 시민이나 이웃이나 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건 체질이나 MBTI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팩트(facts)에 대한 이해력 문제이다.

‘내란 수괴’와 그 부역자들은 응당 죄과에 따른 엄격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거울로 삼기 위해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 될 것이다. 삽을 땅에 푹 찔러 밟을 때 ‘응징’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부아를 눌렀다. 그러나 성조기까지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지인들을 보노라면, 눌렀던 부아가 다시 치민다. 뭔가 뭔지도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차라라 양반이다.

숙제다. 탄핵에 반대하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두세 달 뒤 감자를 수확할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숙문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