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카카벨로스 알베르게 2층 방에서 새벽 2시 넘어서까지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셀카로 촬영했다.
오늘은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이다. 어젯밤 여러 명이 한 방에 자면서 코 고는 소리와 들락거리는 소리 등에 수시로 잠이 깨던 밤과는 달리 혼자 잤음에도 편두통이 심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스트레스성 편두통이다. 밤에 두통약 한 알을 먹었으니 멎지 않아 새벽에 한 알 더 먹었다. 새벽 2시 넘어까지 원고를 작성했다. 편두통이 멈추지 않아 아침에 알베르게를 출발하기 전에 두통약을 한 알 더 먹었다.
숙소 옆 교회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통형 건물이 있다. 사진= 조해훈
아침 8시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1층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마 어제 이 알베르게에서 잠을 잔 순례객이 많았다면 주인아저씨가 카페 문을 열었을 것이다. 필자 한 사람을 위해 문을 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카페 2층에 잤음에도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고 떠나는 셈이다.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자그마한 교회가 있다. 카페 옆 교회에 둥근 원통형 건물이 있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다.
아침 8시에 알베르게를 나왔으나 날씨가 완전 개지 않았다. 사진= 조해훈
아직 날씨가 완전 개이지 않았다. 카카벨로스 중심 거리를 걷는다. 건물의 상가들은 아직 문을 연 곳이 없다. 중심가인 상가 건물 거리를 지나니 주택 거리다. 오전 8시 10분, 이제 카카벨로스 시내를 벗어난다. 거리에는 아직 가로등이 켜져 있다. 카카벨로스를 빠져나오니 쿠아강(rio Cua) 표지판이 있다. 강가 나무들이 물에 그대로 비친다. 다리 위로 도로가 연결돼 있다.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아직 어스름해 앞에서 맞은 편에서 오는 승용차는 헤드라이트를 켠 채 달린다.
카카벨로스를 벗어나니 쿠아강(Río Cua)이 도로 아래로 흐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8시 14분, 건물에 사용된 긴 나무가 전시돼 있다. 제법 두께도 있다. 잘 알지는 못하나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였다. 거기를 지나 도로를 따라 건물이 양옆으로 몇 채 띄엄띄엄 나열해 있다. 오전 8시 20분, 카카벨로스(Cacabelos)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걸은 지 20분 만이다.
알베르게를 출발한 후 14분 뒤 오래전 건물에 사용된 긴 나무가 전시돼 있다. 사진= 조해훈
도로를 따라 집이 몇 채 더 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옆은 경작지이다. 오전 8시 30분, 구릉지는 모두 포도밭이다. 길옆엔 빨간색으로 단풍 든 포도나무들이다. 오전 8시 37분, 저 멀리 아침 해가 떠오른다. 오전 8시 41분, 피에로스(Pieros) 마을 표지판이 있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있다. 도로를 따라 집이 몇 채 있을 뿐, 6분 후 피에로스 마을이 끝난다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오전 8시 37분, 멀리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물론 길 양옆은 경작지이고 저 멀리 산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멀리 산들이 있다. 산티아고 길도 대체로 산맥 구간을 걸어 평지 외엔 멀리 산들이 이어져 있음을 본다.
오전 9시 12분, 저 멀리 산으로 운무까지 끼어 있어 우리나라가 아닌 스페인이지만 약간 도가적(道家的)인 분위기이다. 스페인은 철저하게 가톨릭 국가여서 동양적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몽환적인 분위기의 수묵담채화 같은 장면을 보았던 것이다.
오전 9시 39분, 경작지는 모두 포도밭이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19분, 도로에서 오른쪽 흙길로 들어가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산타이고까지 191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하늘은 맑다. 경작지는 대부분 포도밭이다. 오전 9시 29분, 길에 차량 두 대가 주차해 있다. 이제부터는 온통 넓은 포도밭이다. 단풍 든 포도밭이 아름답다. 포도밭 위 하늘은 점차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이 포도밭과 잉크색 하늘, 그리고 이국의 느낌을 벤치라도 있다면 느긋하게 즐기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인 ‘閒(한)’자가 떠올랐다. 그냥 한가로운 의미보다도 더 한가롭고 무위무상(無爲無想)의 개념이다. 평소에도 필자는 이 어휘를 좋아한다. 지리산에 들어가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한(閒)’의 상태로 살고 싶어서였다.
저 멀리 산에 운무가 끼어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여하튼 걸으면서 보니 길옆 포도밭에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가 제법 있다. 포도를 딸 인력이 없어서 그대로 둔 것일까? 포도나무 이파리는 누렇게 변해 있다.
오전 9시 44분, 이제 길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길 오른쪽에 자그마한 흙으로 만든 창고가 있다. 그 길옆에 있는 경작지는 모두 포도밭이다. 저 멀리 산 중턱에 집들이 옹기종기 있다. 우리나라 산간지대의 집들은 정겹게 느껴지지만 스페인의 산촌 민가들은 구조와 색상, 환경이 달라서인지 정겨움은 덜하다. 그래도 저 산촌의 집들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오전 9시 50분, 회색의 긴 담장 안에 있는 별장 같은 집을 따라 난 길을 통과한다. 다시 산 능선 길이다. 이 지역이 엘 카미노 올비다도(El Camino Olvidado)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아직 레온 주(州)다.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 마을로 들어서니 12세기에 건축되었다는 교회가 있다. 사진= 조해훈
날씨는 쾌청하다. 오전 10시 5분,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교회가 있다. 표지판에 12세기 말에 건축된 교회라고 적혀 있다. 교회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Villafranca Del Bierzo) 마을 표지판이 있다. 거기서 조금 가니 청동으로 된 얼굴 형상이 있다. 형상 아래에 라몬 카르니체르(Ramon Carnicer)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1789년에 태어나 1855년에 생을 마감한 작곡가 겸 오페라 지휘자이다. 마을 길은 내리막길이다. 길 양쪽에 2층 주택들이 쭉 이어져 있다.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 마을에 작곡가 겸 오페라 지휘자인 '라온 카르니체르'의 청동 흉상이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필자. 셀카로 촬영했다.
오전 10시 19분, 카페가 있다. 카페에 들어가 밀크커피를 한 잔 주문해 마셨다. 크지 않으나 깔끔한 마을 카페이다. 오전 11시, 커피를 마신 후 카페를 나오면서 보니 바깥벽에 울트레이야(Ultreia)라는 카페 이름이 붙어 있다. ‘전진’이란 뜻이다. 지금은 순례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부엔 카미노!”(Buen Camino!)라는 말을 하지만 예전에는 “울트레이야!”(Ultreia!)라는 어휘를 썼다고 한다.
주택 골목을 더 내려갔다. 오전 11시 4분, 크지 않은 마을 광장이 있다. 3층 건물의 ‘El Casino’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다. 이 건물 1층은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그 광장을 지나니 오른 편에 제법 큰 성당이 있다. 성당을 지나 직진하라는 산티아고 길 표지판이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느 마을이건, 어느 도시이건 간에 그 지역 주민들에게 순례자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구나’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지금보다 더 사람의 이동이 적었던 중세든, 중세 이전이든, 중세 이후든 이방인들은 아마도 순례자들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해당 지역을 찾는 순례자들은 손님이었다. 그것도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삶을 지배(?)하던 시기인 데다 가끔 주교도 순례자 틈에 끼여 순례했으니 당연히 이방인들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그러니 도시 중심가의 길바닥이나 길옆에 산티아고 길 표식이나 표지가 있어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례자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가고 있으면 쫓아가 “산티아고 길은 이쪽이 아니고 저쪽 길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필자 역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주민들이 와 알려주었다.
관광차로 저 앞에 보이는 교회를 찾은 사람들. 사진= 조해훈
관광차 한 대가 필자가 가는 앞쪽에 섰다. 차에서 관광객들이 내렸다. 그들이 내린 앞쪽에 큰 교회가 보였다. 아마 저 교회를 찾는 사람들로 추측되었다.
필자는 산티아고 표지판을 보고 도로를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주변 산세가 좋아서인지 마을이 청결했다. 햇살도 좋았다.
오전 11시 17분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돌로 만든 순례자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17분, 길은 우회전을 해 강을 아래에 두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 왼쪽에 돌로 깎아 만든 순례자의 형상이 제법 크게 세워져 있다. 하늘이 청명하니 마을이 더 깨끗해 보인다. 다리를 건너 역시 도롯가에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또 약간 내리막 도로를 따라 걷는다. 오전 11시 20분, 인도 돌담 아래 독특한 산티아고 길 표식이 있다. 널빤지 같은 것을 세워 산티아고 문양과 이 마을 이름인 ‘Villafranca Del Bierzo’(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를 새겨 놓았다.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 마을을 벗어나는 길에 널빤지에 산티아고 문양과 마을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이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반쯤, 이제 마을을 완전히 벗어났다. 좀 전에 봤던 그 널빤지 같은 산티아고 표지판이 있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87km 남았다고 새겨져 있다. 도로를 따라 순례길은 이어졌다. 사방으로 제법 높은 산들이 도로를 에워싸있다. 길옆으로 강인지 계곡인지 흐른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페레헤' 마을 끝집 앞에 한 할아버지께서 의자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34분, 페레헤(Pereje) 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2분 더 걸어가니 길가에 집 몇 채가 있다. 페레헤 마을인 모양이다. 자그마하지만 마을로 들어가라는 표식이 있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니 다시 도로가 횡으로 나타난다. 도로를 만나는 마을 끝 집 앞에 한 할아버지께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다. 역시 독서하는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께서 보고 계시는 책이 어떠한 내용이든 상관없다. 독서 삼매경에 빠진 그 모습 자체가 존경스럽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독서에 방해될까 봐 조심스레 그 앞을 지나 도로로 내려섰다.
오후 1시 38분, 오랜만에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들을 만났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26분, 트라발델로(Trabadelo) 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순례길로 접어드니 저 앞에 어떤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다. 뒤따라 가면서 보니 발걸음도 무겁고 힘겨워 보인다. 오후 1시 38분, 길 왼쪽 목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오랜만에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를 본 것이다.
오후 1시 45분. 도롯가에 있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 조해훈
1시 45분, 도롯가에 카페가 있다. 입구 야외 테이블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젊은 순례자가 있다. 인사를 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에 카미노 식사가 있었다. 12유로였다. 그걸로 주문했다. 순례길에서 카미노 식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수프와 빵이 먼저 나와 먹고 나니, 주요리로 스테이크가 나왔다. 후식에 과일이 있어 주문하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께서 커다란 오렌지를 하나 주셨다. 맛있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따라 걸었다. 사진= 조해훈
도로를 지나다 들리는 손님들이 계속 카페에 들어와 점심을 먹곤 바로 나왔다. 오후 3시 8분이었다. 동양인은 야외 테이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형성된 산간 마을이어서 크게 볼거리는 없었다.
그래도 필자의 눈길을 끈 건 아주 오래된 흙집의 지붕이 얇은 돌판이었다는 것이다. 지나온 어느 마을에서는 지붕이 얇은 돌판을 얹어놓은 것 같아서 만져보니 다른 소재로 만든 가짜 돌판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집의 지붕은 진짜 얇은 돌판이었다. ‘옛날에는 산에서 이 얇은 돌판을 가져와 지붕을 덮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지붕에 비를 피하고 보온을 위해 얇은 돌판을 얹어 놓은 집.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27분, 마을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길을 걸었다. 오후 3시 47분, 도로에서 다리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으라는 표지판이 있다. 다리 아래를 돌아 올라오니 다시 도로다. 오후 4시 18분, 도로 오른쪽에 Valcarce(발카르세) 호텔과 주유소가 있다. 2분 더 걸어가니 네노스(Nenos) 마을 표지판이 손 글씨로 적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석에 174.4km 남았다고 새겨져 있다. 저 앞에 집 몇 개가 보인다. 마을을 지나 계속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인'베가 델 발카르세'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가 문이 닫혀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53분,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마을 간판이 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한 카카벨로스에서 여기까지는 25.1km이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이 오늘 목적지이다. 역시 산촌이어서 길가에 집 몇 채가 보인다. 마을 길을 걸어 오늘 묵을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알베르게 문이 닫혀 있었다. 지금이 올해의 순례 시즌 끝무렵인 데다 순례자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이곳저곳 둘러 찾아보니 사립 알베르게가 있었다. 역시 폐쇄한 상태였다. 마침 도롯가에 구멍가게 같은 게 있어서 연세가 많아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이 마을에는 문을 연 알베르게가 없습니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루이테란(Ruitelan)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 가시어 여쭤보세요.”라고 말하셨다. 루이테란 마을까지는 2.1km 거리였다.
'베가 델 발카르세' 마을의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 2.1km 더 걸어 도착한 '루이테란' 마을의 알베르게도 문이 닫혀 있다. 사진= 조해훈
할 수 없이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산길에 일 차선으로 포장만 해놓은 길이었다. 어스름해지고 있다. 2.1km를 걷는 동안 사람 한 명, 차 한 대를 만나지 못했다. 이곳은 해가 일찍 지는데 루이테란에서도 문 연 알베르게가 없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산속이어서 무섭기도 하였다.
오후 5시 42분, 루이테란은 왼쪽으로, 트라바델로(Trabadelo)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오후 5시 48분, 루이테란 마을 입간판을 만났다.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위를 지나는 높다란 도로 2개가 보였다. 이 마을에도 문을 연 알베르게가 없었다. 마침 길 가 집의 마당에서 탁구하고 있는 아저씨들이 있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들은 “여기서 1.4km를 더 가면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이 나옵니다. 거기서 한 번 여쭤보세요.”라고 했다.
'루이테란' 마을의 알베르게도 문을 닫아 1.4km 더 걸어 도착한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의 숙소. 카페 2층인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진= 조해훈
눈앞이 캄캄했다. ‘이러다 산속에서 노숙하는 건 아닐까? 텐트도 없는데…’라는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할 수 없이 다시 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만약 그 마을에도 알베르게가 없으면 어느 집 처마 밑에서라도 밤을 새워야 할 것인가? 산속이 아니고 평지 마을 길이라면 날 밝을 때까지 걷더라도 괜찮을 것인데, 좀 막막했다. 오후 5시 50분, 도로 옆에 물이 흐르고 있다.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 마을에서부터 도로 왼쪽에 쭉 보아왔던 그 계곡물일 것이다. 물이 아주 맑다.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로 가려면 여기서 좌회전해야 한다. 도로보다 지대가 더 낮다. 왼쪽으로 들어서니 마을이 보인다. 마을이 역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이 좀 낮게 위치해 주위의 산들이 아주 높게 느껴졌다.
오후 5시 53분, 조마조마하며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불이 꺼져 있다. 1층은 바(Bar)인 것 같은데 역시 인기척이 없다. ‘큰일이다.’ 싶어 마을 안쪽으로 보니 조금 더 마을 쪽에 불이 켜진 카페가 있다. 가까이 가니 영업을 종료하는 중이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을 정리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혹시 이 마을에 오늘 밤 잘 수 있는 곳이 없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지금 마을에서 잠잘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방은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네. 2층에 방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러면 한 개 주세요.”라며, 카드를 건네주었다. 결제 한 걸 보니 48유로였다. 엄청 비쌌다. 48유로면 공립 알베르게에 다섯 밤을 잘 수 있는 가격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곤 “혹시 이 근방에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마을 끝에 바가 있는데 아직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2층 방을 배정받아 배낭을 풀어놓고 바로 마을 끝에 있다는 바로 빠른 걸음으로 갔다. 바에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가니 테이블에 부부로 보이는 필자 또래의 남녀가 앉아 있고 주방 앞 스탠드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맥주를 드시고 있었다. “저녁 식사 가능합니까?”라고 물으니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예. 가능합니다.”라며 메뉴판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수프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후식은 밀크커피를 달라고 했다. 필자는 “커피를 먼저 주십시오.”라고 했다.
테이블에 앉으니 곧장 커피가 나왔다. 서빙을 하는 여종업원이 아주 친절했다. 커피를 마시니 마음이 좀 진정이 됐다. 자칫하면 날씨가 추운데 노숙할 뻔했다. 옆 테이블의 부부는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필자 또래의 남편이 쳐다보길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남편은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필자가 “이 마을에 사십니까?”라고 물었다. 남편은 “폰페라다에 삽니다. 오늘 여기 인근 산에 등산하고 내려와 저녁을 먹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폰페라다에서 이곳 라스 에레리아스와의 거리는 44km이다. 차로 이동하면 40분 내외면 된다. 부부는 필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부부는 무척 친절했다.
맥주를 마시던 할아버지께서 가신 후 다른 손님이 없어 바의 주인 부부와 여종업원, 폰페라다에서 온 부부와 필자는 밤 10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진 후 폰페라다에서 온 부부와 바깥에서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작별 인사를 했다.
폰페라다에서 44km 떨어진 이곳 '라스 에레리아스' 인근 산에 왔다 바에 저녁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 바 주인아저씨
숙소가 있으니 빨리 걸을 필요가 없어졌다. 숙소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m 정도다. 숙소로 오는 동안 마을의 가로등 외엔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낯선 이국에서 마주한 불 꺼진 늦은 밤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좀 전에 친절하고 좋은 분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편해서인지 낯선 곳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숙소로 와 두어 시간가량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투숙객은 없었다.
오늘은 카카발로스에서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rias)까지 28.7km를 걸었다. 생장에서 여기까지는 총 607.7km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