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특집>

계엄령 내란 사태의 민낯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계엄령은 언제나 국가와 시민 사이에 놓인 긴장과 억압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번 인본특집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된 순간부터 그로 인해 벌어진 내란 사태의 실상을 낱낱이 조명합니다.

권력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하며, 시민의 저항은 어떻게 탄압당하는가? 우리는 역사의 기록과 생생한 증언을 통해 계엄령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합니다.

이번 특집에서는 총 4편의 원고를 통해 계엄령이 초래한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파장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합니다. 계엄령의 법적 의미, 내란 사태의 전개 과정, 피해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억압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그리고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이번 특집이 꼭 필요한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헌법으로 본 바람직한 지도자 상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1. 서
우리는 12.3 비상계엄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겪으면서 심각한 국론 분열을 목격했다. 한 헌법 아래서 하나의 나라로 가다가 어찌하여 이렇게 분열되는지 깊이 자성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는 총체적인 전쟁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수년간 지속되어 오며 수백만이 다치고 죽고 있다. 무력 전쟁뿐 아니라 무역전쟁도 자국의 이익만 앞세워 이 세상의 공존을 파괴해 버릴 것처럼 심각해졌고, 우리도 이미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에 따라 이제 국론 분열은 대내외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존망에도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떻게든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로 통합하여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분열된 나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 통합의 역할을 해 줄 지도자를 갈망하는 것은 온 국민의 소망이 되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통합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우리 헌법안에서 찾아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 전체의 총체적 결단에 의해 헌법이 제정되고 그리하여 이 나라가 만들어졌으므로 온 국민을 통합할 규범은 바로 헌법이고 따라서 통합을 이끌 지도자도 헌법에 나오는 헌법상의 지도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서 찾을 지도자는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헌법상 덕목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바람직한 지도자 상을 그려 보려고 한다.

2. 헌법상 지도자

(가) 의의
지도자란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 또는 어느 조직이나 집단의 활동을 앞장서서 주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헌법에는 각종의 권한을 가진 국가 조직과 기구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헌법 조항을 살펴보면 국가의 조직과 기구를 이끌 지도자가 저절로 드러난다. 헌법이 정한 주요 지도자들을 그 규정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국회에는 국회의장, 국회의원이, 행정부에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행정 각 부의 장), 감사원장, 감사위원이, 법원에는 대법원장, 대법관, 법관(판사)가 있고, 헌법재판소에는 재판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선거관리 위원회에는 선거관리위원장 및 위원이 그리고 지방자치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이 있다.

헌법은 위와 같은 공직 지도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선출, 선임되어 어떤 기관을 이끌어 가야 하며, 그를 위한 그들의 권한은 무엇이며,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를 헌법이 스스로 정하거나 또는 법률에 위임하여 정하고 있으므로, 위의 지도자들은 헌법에 의해 자연적으로 지도자의 지위를 갖게 된다.(나) 정치지도자
헌법상 지도자들 중 직책의 성질, 선출 절차와 책임지는 방법, 여론과의 관계, 국민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의 직접성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해 정치적 지도자와 비정치적 지도자로 나눠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찾는 새로운 지도자는 앞장서서 나라의 통합을 이끌 정치적 지도자일 것이고, 정치지도자 중 대표적 정치지도자는 대통령, 주요 국회의원, 정당의 대표*1등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우리 헌법상의 지도자 중 정치 지도자에 한정해 살펴보겠다. 물론 가장 중심에 있는 지도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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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니나 우리 헌법에서 직접 규정하고 있는 정치 단체다. 그 이유는 정당이 국민과 국가의 중개자 역할을 함으로써 국민의 다원적 정치 의사를 유도, 통합하고 국가 정책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오늘날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필수적 정치 조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정당의 대표나 주요 보직을 담당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정당의 대표와 주요 보직자도 정치 지도자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바람직한 지도자 상을 얘기함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만 설명하면 되므로 정당 대표 등을 떼내어 별도로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 공무원
헌법상 지도자들은 국록을 받고 나랏일을 맡아 수행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지위는 공무원이다.

3. 국가의 변천과 지도자의 지위
국가의 지도자가 누가 되어야 할 것인지는 역사의 변천과 같이 가므로 그 변천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 국가 주인의 변천
국가의 변천이란 국가의 주인이 누구에서 누구로 바뀌었나 하는 것이 가장 큰 변천이고 여기서 살펴보는 변천의 핵심이다.

우리의 시조 왕인 고조선의 단군에서 시작해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우리 5000년 역사에서 나라의 주인은 왕이었다. 왕의 나라에서는 왕이 주권자이므로 국토는 왕의 땅이며 모든 재산은 왕의 것이었다. 국민들도 왕의 백성이므로 그 신체나 목숨도 왕이 좌지우지했다.

조선 왕조가 끝나고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면서 우리는 조선왕국을 새로 대한민국이란 민주국가로 만들었다. 1948년 7월 17일 우리는 50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보다 더 큰 국가의 변천(혁명)은 일찍이 없었다.

(나) 지도자의 지위 변천
(1) 왕권시대
왕권시대에는 왕이 주인이었고 그의 신하들이 목숨 바쳐 왕을 도왔으니, 왕과 그 신료들이 지도자였다. 그들은 통치자였고 지배자였으며 권력을 독점했다. 왕권시대에는 왕의 말이 곧 법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도자들은 왕명을 받든다는 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정치는 법 위에 있었고 왕명을 활용해 통치했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법보단 왕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2) 민주시대
1948년 7월 17일 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만방에 선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고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국가 시대가 열린다*2.

그런데 국민은 수천만 대중이라 비록 나라의 주인이 되긴 했지만, 수천만 대중이 지도자 노릇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에 의하여 주인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 헌법에 의하면 국민은 총선에 의하여 그들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법률을 만들고 거기에 의거해 국가가 운영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국가에서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선출된 자들일 것이다.

민주시대 지도자가 왕권시대 지도자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는 헌법 제1조와 제7조를 읽어보면 나온다. 우리 헌법은 총강편 제1조와 제7조에서 민주시대의 새 주인과 새 지도자들의 지위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즉 헌법 제1조 제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으로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선언했다.

이어 헌법 제7조 제1항(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으로 모든 지도자들을 공무원이란 이름 속에 넣어 봉사자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3) 지배자에서 봉사자로
국가의 변천에 따라 주인이 바뀌었고 주인이 바뀜에 따라 지도자들도 바뀌었다. 왕권시대에는 왕과 그 신료들이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 지배자, 권력자였지만 민주시대에 와서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을 수여 받은 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국민에 대한 봉사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날 바뀐 민주국가에서의 바람직한 지도자 상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의 핵심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2 헌법을 가지지 못한 단체는 국가라 부르지 않는다. 아무리 땅이 있고 무력(군대)이 있어도 헌법을 갖지 못한다면 단순한 무력 단체에 불과하며 헌법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국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국가가 되는 것은 1948년 7월 17일(제헌절) 헌법을 제정해 만방에 공포한 날이며 따라서 제헌절이 대한민국의 법적 건국절이다.

*3국민주권 규정은 1948. 7. 17. 제정 헌법 아래서는 헌법 제2조로 규정되었으나 1962. 12. 26. 개정 시부터 제1조 제2항으로 조문 변경되어 지금까지 그 내용은 같았다. 공무원 지위에 관한 규정은 그 당시에는 제27조에 규정되었는데 내용은 “공무원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수임자로서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민은 불법 행위를 한 공무원의 파면을 청원할 권리가 있다.”였다. 이 공무원 지위 규정은 1962. 12. 26. 개정 시부터 제6조 제1항에서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개정되었고. 1987. 10. 29. 개정 시부터 내용은 변경하지 않고 제7조 제1항으로 조문 번호만 변경되었다. 즉 주권 규정은 조문의 번호만 다르지, 건국 시나 지금이나 같지만 공무원 지위 규정은 1962년 개정 시 수임자에서 봉사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4. 지도자의 가장 기초적 헌법상 지위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가) 봉사자
(1) 봉사자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자이다
봉사자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사람을 말한다. 봉사자라는 개념 속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헌신이라는 정신이 개념 요소로 깃든 말이다.

이 점에서 최초 헌법에서 사용했던 수임자라는 용어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 헌법은 왕권 국가를 청산하고 민주국가를 개국하면서 처음에는 공무원의 지위를 국민의 수임자로 정했다가 1962. 12. 26. 헌법 개정 시부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 헌법은 1962. 12. 26.의 헌법 개정을 통해 공무원의 지위에 헌신을 심었고 이로써 헌법의 민주성을 한층 더 높였다고 봐야 한다.

(2) 봉사자로의 의식 개혁
헌법이 모든 공무원의 가장 기초적, 보편적 지위를 통치자, 지배자, 권력자가 아닌 헌법이 정한 권한만을 행사하고 그 권한 행사에 대해 책임지는 봉사자로 규정한 뜻은 이같이 소중한 무게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국가의 정치 지도자의 지위가 이렇게 명확히 바뀌게 되었음에도 헌법 조항을 통해 목격할 수 있건만 아직도 지도자나 지도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란 뜻을 다 함께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공무원이라 했으니 대통령도 봉사자요 국회의원도 봉사자란 말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느껴온 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인이 바뀐 지 벌써 77년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봉사자라는 생각을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국민들이 피 흘려 주인 자리를 쟁취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주는 도움으로 아무 공도 들이지 않고 주인이 되어서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가깝게 500년 전부터만 보더라도 통치의 객체로서 온갖 설움을 받아온 일반 백성들, 전란이 있으면 가장 먼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건만 인권은 무시되고 재산은 함부로 뺏겨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살아온 백성들, 이 백성들이 그 질곡을 벗어나고자 쌓고 쌓은 염원이 수백 년 아니던가? 일제에 의한 36년간의 노예 생활 중에도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웠고 새 나라 만들려고 일제와 싸운 역사는 또 그 얼마나 치열했던가. 이 모든 것이 모이고 쌓여 대한민국이 건설되었는데 힘 안 들이고 얻은 나라라니! 그래서 천만의 말씀이라 했다.

우리 국민들의 오랜 염원이 모이고 모여 옛날 주인 노릇하던 왕과 그 신료들을 공무원이란 이름 아래 포괄시켜 그들의 신분을 국민의 봉사자로 한 것이니 이와 같은 의식의 개혁은 오늘날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헌법상 의무다.

(3) 봉사자의 길은 모든 지도자가 벗어나지 말아야 할 울타리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가 된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당연히 오늘날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의사는 헌법과 법률에 들어 있으니 전체 국민의 의사에 따른다는 말은 곧 헌법과 법률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입법부 지도자인 국회의원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입법해야 하고, 대통령과 행정부 지도자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하며, 사법부 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오늘날까지 발생되어 온 지도자들의 수많은 위헌 위법한 일탈이나 국론 분열도 지도자들이 스스로 봉사자의 울타리를 벗어나 통치자, 지배자 행세를 하려 했기 때문이다. 모든 지도자들이 헌법을 지키고 헌법 아래 하나가 된다면 국난을 초래할 이유가 없고 국론이 분열될 까닭이 없다.

5. 바람직한 지도자 상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 헌법은 공무원을 수임자에서 봉사자로 변천시켰다. 그러면 수임자에서 변천된 공무원은 어떤 자세로 근무해야 할까? 국민을 사랑해야 하고 국민의 일(나랏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런 만큼 국민을 무시하거나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국민을 속여서도 안 된다. 또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국민을 탓해서도 안 된다. 봉사자는 모름지기 성실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는 몇 가지 제도와 이때까지 우리가 겪어 본 지도자들의 과거 몇몇 일탈 행태들을 비판하면서 바람직한 봉사자인 지도자 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가) 선의의 독재자
주인이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군주처럼 지배자가 되어도 결과적으로 나라를 부유케 하고 국민들을 잘살게만 해 준다면 이것은 바람직한 지도자인가? 즉 선의의 독재자는 좋은 지도자인가?

민주주의 즉 국민이 주인이라는 가치는 한순간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고 또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 일의 결과뿐 아니라 일의 절차도 국민을 주인 아닌 객체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쿠데타로 일시적 전제군주 노릇하다가 다시 스스로 민주주의로 환원한 역사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국민의 주인 자리는 한시라도 부정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의의 독재자라는 개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다.

(나) 특권을 가진 지도자
지도자가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도 지도자의 봉사자 상에 어긋난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지도자의 우월성과 지배성을 드러내는 특권 제도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적지 않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면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을 때까지 수십 명의 경호를 받고 나라로부터 특혜를 받는다. 공인이 아닌 그의 부인까지 대통령 사후에도 특혜를 받고 있다. 또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헌재소장 등 소위 삼부 요인은 죽으면 그 부부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특혜를 가진다, 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죽은 자를 묻는 곳이지 벼슬 높았다고 묻히는 자리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봉사자 상에 어긋난다.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가 아니면 재직 중 형사소추되지 않고(헌법 제84조) 국회의원은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면책되는데(헌법 제45조), 이 또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또 대통령을 국가 원수라 하고 있다(헌법 제66조). 원수란 사전적 의미가 우두머리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 웬 우두머리가 있어야 하나? 그냥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원수라는 특별한 지위를 설정하는 것도 봉사자 상에 어긋난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과 영전수여권도 봉사자 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은 모두 군주 주권 시대에 군주들이 썼던 특권들이니 민주국가에서 봉사자가 된 대통령이 써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하자면 국회의 법률로써 하면 된다.

(다) 지도자는 높은 사람인가?
공직자들 간에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도 봉사자성(奉仕者性)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높고 국회의원들은 대통령보다는 낮고, 대통령실 직원이나 국회의원의 보좌관들은 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아래에 있는 사람인가? 공무원법상 직위의 높낮이에 따라 보수를 비롯한 모든 대우가 높고 낮게 결정되긴 하나 그렇다고 봉사자성에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라면 국민에 대한 봉사의 방법이 다를 뿐 높고 낮은 것은 없다. 다만 직책이 서로 다를 뿐이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대통령의 직을 행하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의 직분을 행하고, 보좌관이나 운전기사는 각각 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직분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을 떠나서는 인간으로서 평등하다. 직급이 아래라 해서 상급자의 이삿짐까지 들어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일에는 맹종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 등이 국민에게 뭔가를 주면 하사라고 하고 반대의 경우를 상납이라 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을 행하고 비서나 보좌관은 비서, 보좌관의 직분을 행하면 되는 것이다.

(라) 충성의 대상과 임명권자
임명권자 한 개인에게 충성을 한다는 것은 공무원이 가야 할 봉사자의 길이 아니다. 충성은 주인인 국민에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기를 발탁해 준 대통령을 주군(主君)이라 부르며 거기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미덕인 양, 의리인 양 이야기들 하나 가당찮은 이야기다. 임명권자는 법에 의해 피임자를 국민에 봉사할 공무원으로 임명한 것일 뿐 자기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자기 직원을 채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권자다. 그러므로 공무원은 오직 전체 국민만 생각하고 거기에 충을 바치고 거기에 의리를 다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충성과 의리는 임명권자 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충성이 참 충성이고 국민에 대한 의리가 대의(大義)다.

(마) 국회와 대통령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나 국민의 수가 너무 방대하므로 대의기구를 만들어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구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민주주의는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률이라는 형식의 규범을 통한 법치(法治)여야 하므로 법률을 제정․개정하는 입법부(국회)가 가장 중요하며, 그 구성원을 뽑는 선거가 총선으로 가장 중요한 선거다.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총괄하는 수반이고 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 선거는 총선과 별도로 전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할 한 사람의 국민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하에서는 국회가 국민에 더 가까운 지위에 서므로 헌법에서도 행정부․대통령(제4장)에 앞서 국회(제3장)에 관해 먼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로 보면 대통령 선거에 의해 정권이 바뀌고 당(党)도 대통령을 당선시킨 정당을 여당, 그렇지 못한 정당을 야당이라 하여 야당은 다수당이라 해도 여당에 비해 국가 경영의 책임을 덜 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입법권이 행정권보다 상위에 있다. 그러므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전제에 서서 보면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당이 집권당이 되어 국정의 기초를 짜야 하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인데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당이 집권당이 됨으로써 나라를 운영하는 주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실은 헌법상으로는 괴리감이 든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보면 여소야대에서의 대통령은 의회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 여소야대 아래에서의 대통령은 국회 다수당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이고 국회는 법률을 만드는 기관이므로 행정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반박할 것이 아니라 자세를 낮춰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봉사자로서의 헌법적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바) 정권 교체와 보복
우리 역사를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이 뒤따르는 것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이 비극적 역사도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고 공무원(지도자)은 그 봉사자”라는 법의식만 확고히 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민주헌법 제정 이후 적잖은 정권 교체를 경험해 왔다. 그때마다 바뀐 것은 지도자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었을 뿐 나라의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기타 지도자들은 봉사자이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여전히 국민이었다. 이 인식만 속 깊이 지닌다면 정권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대립되는 지도자들이 모두 같은 주인(국민)에 봉사하는 같은 일꾼이라 서로 보복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지도자는 이념이나 정견이나 정치적 성향이 아무리 달라도 같은 주인을 모시고 거기에 봉사하는 봉사자일 뿐이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이 그들 개개의 이익과 가치 앞에 항상 주인의 행복과 가치를 소중히 놓는다면 보복이란 해서는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주인이 무척 싫어하는 일이다.

(사) 대통령과 지자체장과의 관계
민주주의는 지방자치를 필수 장치로 한다. 그러면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과 지자체장의 관계는 공무원의 봉사자 상에 비추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옛날 한 군주를 주인으로 받드는 봉건시대에는 지방은 중앙 아래서 중앙에 봉사해야 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하기로 헌법이 선언(국민이 결단)한 이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서로 다를 뿐 높고 낮은 것으로 관념되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의 장은 법에 따라 주민의 복리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사람이고, 대통령은 법에 따라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안전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일이 다르다. 서로 보완 협력 관계에 있지 결코 지배 복종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앙의 장관이 내리는 부령(令)이 지방의회의 조례보다 상위 법령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방자치가 부정되는 결과가 되며 이것은 공무원의 봉사자 상에도 어긋난다. 그러므로 우리 헌법 제117조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지자체의 법(法)인 조례를 제정함에 있어 법령(法令)의 범위 안에서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 중 령(令) 부분은 앞으로 헌법 개정 시 삭제되어야 하고 법령을 법률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아) 이순신 같은 지도자
우리 역사에 많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왕권시대를 살면서도 일찍이 이순신만큼 봉사자의 길을 간 사람을 찾긴 쉽지 않다.

이순신의 지도자적 품성의 뿌리는 백성 사랑이다. 그는 왕권시대에 살면서도 그가 바친 충(忠)의 대상은 이연이라는 선조 개인이라기보다는 나라와 백성이었고, 그래서 그는 한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했다. 그는 공직 생활 내내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했고 마지막에는 자기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선공후사로 표현되는 이순신의 이 지도자 정신만이라도 올곧게 본받는다면 오늘날의 모든 지도자들도 국론 통일과 나라 번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6. 맺는말(행복한 나라로)
이상에서 국민이 주인이고 공무원은 봉사자로 자리매김된 우리 민주주의 헌법 아래서 바람직한 지도자 상은 무엇일까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헌법에서 선명했듯이 모든 공직자의 최고의 덕목은 봉사자 정신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숨 바쳐 헌신할 의지가 확고부동한 인사가, 즉 국민 전체의 참 봉사자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국론은 통일되고 나라는 발전하며 국민은 행복할 것이다.

한편, 주인인 국민들도 그런 지도자를 가려 뽑아야 할 주인으로서의 안목이 있어야 하고 책임을 가져야 한다. 국민 중에 어리석은 이가 많아 참 봉사자가 아닌 자를 선택한다면 국론은 분열되고 나라는 퇴보하며 국민은 근심 속에 빠져 부당하게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나라 국민은 그의 수준에 맞는 나라밖에 가질 수 없다는 이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도하는 사람이나 지도받는 사람이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애국심이 나와 나의 당, 파벌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욕에 앞선다면 우리는 최선의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