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집이자 서당인 목압서사 위쪽의 도재명차에서 김원영(왼쪽) 사장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김완준
지난 7일 오후 4시 조금 넘어 필자의 집이자 서당인 목압서사(木鴨書舍) 위쪽의 도재명차(荼在名茶)로 갔다. 도재명차 김원영(金元映·58) 사장이 “차 한잔 마시러 오십시오.”라고 해서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데다 필자가 차산(茶山)으로 올라가려면 김 사장의 집 뒤를 통해야 한다. 김 사장은 필자를 볼 때마다 “차 한잔 마시러 오세요.”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선뜻 가기도 그래서 그동안 “예. 고맙습니다. 언제 한 번 가겠습니다.”라고 늘 대답만 하던 차였다. 집으로 들어가니 차실(茶室)에서 손님 세 사람이 막 나오는 중이었다.
김원영 사장은 2018년도에 '홍차' 부문 명인에 선정된 차명인이다. 사진= 조해훈
김 사장은 이웃 면인 악양면에서 ‘고담(古潭) 쪽물 전수관’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몇 년 전 작고하신 고담 김광수 선생으로부터 쪽물 들이는 법을 배웠다. 김 사장은 “고담 선생님은 부산대 공대를 졸업하신 후 부산에서 인쇄업에 종사하셨습니다. 불화를 그리시는 석정(石鼎) 스님의 제자셨습니다. 고담 선생님의 쪽물 들이기는 고래로 불가에서 했던 방법입니다. 선생님은 많은 불교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하셨지요. 제가 더 열심히 많이 배우지 못한 게 죄스러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조금 배운 것이라도 맥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수관을 차려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기 올해 만든 발효차. 차를 넘기니 목안에 차향이 가득 번지면서 나중에 단맛이 올라왔다. 사진= 조해훈
그가 올해 만든 녹차를 먼저 내놓았다. 차실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차를 몇 잔 마셨다. 차 맛이 깔끔하면서도 마치 박하사탕을 먹는 듯 목이 상쾌했다. 아버지를 옆에서 돕는 그의 아들 김완준(31) 군도 같은 공간에 있었다. 아들은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았다. 아들은 필자에게 “저도 목압서사에서 공부를 좀 해야 하는데 … ”라고 했다. 김 사장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들은 바닥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였다.
도재명차 차실에서 김 사장과 차를 마시는 동안 그의 아들 김완준(31) 군이 바닥의 차탁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김 사장은 최근에 피레네산맥 아랫마을인 프랑스 생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를 포함한 차인 몇 명이 그곳에서 5, 6년 전부터 차를 재배하는 분들과 교류차 갔다고 했다. 미국에서 그곳으로 와 살고 있는 분의 집에서 숙박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리하여 마을 전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김 사장이 이번에는 올해 만들었다는 발효차를 우려 내놓았다. 필자는 발효차를 몇 잔 마신 후 “올해 만든 차라 아직 깊은 맛이 들지는 않았지만 발효차만의 순수한 맛과 차를 넘긴 후 입안 가득히 차향이 남는다. 그리고 나중에 단맛이 많이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를 잘 만든다. 2018년에 홍차 부분으로 대한민국 명인(제18-558호)에 인정되었다.
필자는 “올해 산에서 굴러 다치는 바람에 차를 만들지 못하였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앉은 통유리창 밖으로는 큰 감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보였다. 필자의 집보다 좀 더 높아 목압마을 맞은편의 용강마을 및 뒷산인 황장산이 잘 보였다. 김 사장 뒤쪽은 작은 개울이 있다. 차실이 개울과 붙어있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김 사장의 부인이 마을 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의 부인은 하동에서 유명한 요가 강사이다. 필자는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바쁜 그에게 폐가 될 것 같아 일어났다.
차실에서 나와 마루 아래로 내려와 신발을 신는데 ‘茶人山房(다인산방)’이라고 나무판에 음각을 한 작품이 걸려 있었다. 김 사장은 “고담 선생님께서 부산의 서예가이신 겸재 선생님의 작품에 직접 새기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다인산방은 도재명차의 옛 이름이다. 김 사장의 원래 이름도 김종일이었는데 김원영으로 개명하였다.
김 사장의 '쪽물 들이기' 스승인 고담 김광수 선생이 부산에서 서예가로 활동했던 겸재 선생의 글에 직접 새겼다는 작품이 차실 바깥에 걸려있다. 사진= 조해훈
그리고 차실 들어가는 문 옆에 서예 작품이 걸려 있었다. 필자가 글 내용을 읽는다고 쳐다보니 그가 “횡천면에 있는 무진암의 비구니 스님께서 써주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언제든 차 드시러 오십시오.”라고 배웅했다. 폭염이 며칠째 지속되어 바깥은 무더웠다. 이렇게 푹푹 찌는 날 같은 마을의 차인을 방문해 그가 만든 차를 마신 필자는 ‘이것도 지리산 깊은 골짜기 산촌인 목압마을의 한 시절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목압마을은 오래전부터 차를 만들던 동네로 차향이 깊은 곳이다. 그리하여 봄에 차산에서 일하고 내려오면 차향이 마을에 진동(?)한다. 구수하면서도 산뜻하고 풀향과는 다른 차만의 독특한 향이다. 차를 덖을 때 좋은 차 냄새가 특히 많이 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장수하는 분이 많은 이유는 차를 늘 마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을의 어느 집이든 가면 차를 대접한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도 1년간 드실 차를 만드신다. 그리고 물 대신 차를 늘 드신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