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뜻밖의 귀촌(11)
일주일 뒤 마침내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동시에 산16-1번지에 대한 산림임상형질변경신청과 일대의 사도설정에 대한 도로사용허가도 떨어졌다.
정지작업까지 뗀 또식씨가 대형굴삭기와 인부를 동원해 일식씨가 장난처럼 찔끔찔끔 베어내던 대밭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희한한 건 크고 쓸 만 한 대 일부만 베어낸 대밭을 통째로 밀어붙여 20미터 가까운 대들이 휘어지고 부러지면서 이리저리 얽힌 대 뿌리들과 함께 거대한 덩어리가 아래쪽인 열찬씨네 밭으로 밀려 내려왔다. 굴삭기가 밀어내는 대나무를 정리하던 인부인 연변동포 김노인이
“외삼촌이 참 지독한 양반이야. 아니 대나무 베어내고 정지작업이 끝나고 상추도 심고 열무도 심으면 되지 벌써부터 심어서 땅 고르고 집짓는데 얼마나 지장이 많은지 모르겠네.”
하고 디모도라고 불리는 잡부를 같이 하는 일식씨를 쳐다보자
“공무원만 40년을 하며 늘 아랫사람을 부려온 우리 외삼촌은 무엇이든지 원칙에 맞게 기준을 설정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걸리는 시간이 조금도 틀리면 안 돼. 한마디로 불 칼이지요.”
하며 웃었다. 이제 내 땅의 모양이 대충 드려나려나 하며 붉은 측량말뚝을 따라 밀어붙인 대나무 잔재를 따라 이리저리 걸어가던 열찬씨가 그 말을 듣고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리는데 어느 새 얼굴이 새까맣게 탄 또식씨가
“외삼촌, 이따 우리 집에 밥 먹으러 갑시다. 우리 최집사가 일꾼들 점심을 차리니 외삼촌도 이제 빵쪼가리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웃는데
“나도 일꾼이가?”
“예. 일꾼 중에 상일꾼보다 더 높은 왕 일꾼이지요.”
하며 웃는데 또식씨의 처 최집사가
“외삼촌, 커피 마시세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가와 종이컵을 건네는데
“아이고, 커피가 와 이러노? 커핀지 숭늉인지 알 수가 없네.”
대부분 또식씨의 친척이고 직원인데 비해 혼자 남이라 건축업자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포클레인 기사가 종이컵을 던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말 안 할라캤는데 진짜 잘 안 넘어가네. 내일부터는 T. O. P로 주면 안 돼요?”
하루에 세 마디도 안 한다는 노랑머리 호동씨도 거들었다.
“다들 와 그라노? 나는 맛만 좋은데? 뉴욕이나 파리의 최첨단 미식가들이 커피는 한국의 자판기커피가, 라면은 농심의 신라면, 특히 컵라면이 세계제일의 맛 가장 표준적이며 이상적인 세계인 모두에게 어울리는 범인류적 식품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판에...”
조카며느리 최집사를 두둔하다 사방의 눈빛이 묘해서 금방 입을 다물었다.
아직 마음을 못 잡고 매일 술이나 마시며 허랑방탕 돌아다니던 얼굴이 새까만 또식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 단숨에 제 아비를 찾아가 당장 시집을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할 만큼 대범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가끔 술독에 빠져 애를 태우는 남편을 조금도 타박하지 않고 생기면 생기는 데로 아이 넷을 잇달아 낳을 만큼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조물주가 무슨 심술이라도 부렸는지 여자가 가져야할 <3씨>인 맘씨, 솜씨, 맵시 중에서 솜씨, 특히 음식솜씨를 부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인부를 포함해서 근 10명의 인원이 둘러앉았는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금찬씨가
“우리 최집사는 주일날 교회에서 밥 당번을 하면 무엇이든 양도 많고 맛도 그럴 듯이 잘도 해서 먹을 만할 거야.”
하며 국그릇에 밥을 말기까지는 해놓고 영 진도가 나지 않았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모양이 그럴 듯한 총각김치와 오뎅무침을 베어 물다 젓가락을 놓고 작은 종이컵에 담긴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열찬씨와 눈이 마주친 연변 영감이
“외삼촌, 초면인데 인사나 하십시다. 저는 연변에서 온 김성율입니다.”
“아, 예. 이열찬입니다.”
하고 악수를 한 뒤 서로의 잔을 들어 건배를 한 뒤
“영감님은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예, 경인년 범띱니다.”
“아이구, 보기보다 나이가 많네요. 저보다 두 살 윈데요?”
“그런가요? 객지나이 한 살 차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요. 친구 생겼으니 한 잔 더 합시다.”
하며 반주를 겸한 식사를 그럭저럭 마쳤는데 도대체 무엇을 먹었는지 배가 부른지 만지 감각이 없었다. 이튿날도
“외삼촌 커피 드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양철통에 든 T. O. P 커피를 한통씩 나눠주자 맛을 보던 열찬씨가
“질부야, 봐라! 이 커피는 하나에 천원도 더 하제?”
“예. 그렇지요. 뭐.”
“일꾼들한테 하루에 몇 통이나 주노?”
“식전, 오전, 오후해서 한 세통 정도지요.”
“꽤 돈이 들겠는데 이 비싼 커피대신 롯데에서 나오는 <레츠비> 커피로 바꾸면 안 될까? 캔커피 중에서는 그게 일회용으로 양도 알맞고 맛도 너무 튀거나 심각하지 않고 시원한 게 누구나 좋아할 만 한 커핀데.”
“예. 무엇보다 값이 싸서 제가 회사 다닐 때도 냉장고에 박스채로 넣어놓고 마음대로 마시게 하더군요.”
“그럼 여기서도 그렇게 하지. 꼭 T. O. P를 고집하는 사람은 아침에 한 잔씩만 주고.”
“예.”
하더니 이튿날부터 바로 시행했다. 그날 오후 네 시쯤 열찬씨가 돌아갈 준비를 하자
“외삼촌!”
또식씨가 간절한 눈빛으로 불러
“와? 돈이 필요하나?”
“예.”
“내일 우선 천만 원 해줄 게. 나머지는 공사진도 봐서 주고.”
“천만 원 더 주면 안 되겠습니까? 자재비랑 일꾼들 일당이랑 중기대여비랑...”
“알았다. 관공서공사비도 선수금이라고 해서 준비비용을 주고 공사 중에도 기성고라고 해서 업체에서 자금압박이나 체불임금이 안 생기도록 하지. 그러나 당장은 돈이 없으니 우선 천만 원 주고 며칠 뒤에 천만 원 더 주지.”
“고맙습니다.”
하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곰곰 생각에 잠겼다. 그간 밤마다 공사비가 얼마나 들고 얼마나 부족할 지, 컨테이너를 갖다 놓으려는 공사를 13평 조립식으로 지으니 설계비를 시초로 얼마나 많은 과외경비가 들어 얼마나 빚이 질지 그걸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집에 도착해 혼자 저녁을 챙겨먹은 열찬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장편소설 <신불산>이 아닌 <새문서> 창을 열고
2015.3월 이후 들어갈 돈(단위: 천원)
1.가옥건축비-32,500(13평*2,500)
※옵션
정화조, 보일러,
창고와 거치대
수돗가, 장독대, 화단(1,500요구로 직접하기로)
탁자셋트, 바베큐통, 소각통
화덕과 덮개포함
2.설계비, 건축허가에 따른 제세공과금-2,000
3.전기설비-1,000
4.마을수도-500천원
5.벌채정지비용-1,500(1,000선지급)
6.펜스-대략 3,000천원
7.이사비 기타-500
※인터넷 가구당 600
※스카이라이프 300
※물탱크와 건물-1,000
계 42,900천원
작성하다 손을 놓고
(우리 홍여사가 한 돈 천만 원은 더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한 몇 백 쥐어짠다 해도 여전히 3천만 원은 부족한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데
“아이구,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 거실에 불도 안 켜고?”
어느 새 영순씨가 들어와
“왔다 갔다 댄데 그 놈의 소설 좀 어지간히 쓰소.”
하고 서재로 들어오자
“이거 한번 봐. 내가 집 짓는 돈 대충 잡아보니 4,300이 드네.”
“미친 년 아아 놓으면 씨꺼 조진다고 당신이 매일 말해쌓더니 그래 맨날 예산만 잡으면 뭐 하요? 돈도 없이. 당신이 암만 그래 알뜰히 계산해도 보나마나 돈 천만 원 이상은 더 나갈 거요.”
“그런가? 큰일이네.”
“큰일 나면 큰일 치면 되지 뭐. 기왕에 시작한 일. 나오소, 오랜 만에 맥주나 한잔 합시다.”
식탁에 안자 맥주를 한잔씩 부어 건배를 하고
“홍여사 당신 솔직히 말하소. 내 모르는 돈 얼마나 있는지.”
“이적지 당신이 요래조래 돈 든다고 다 홀카묵고 얼마나 남았겠소?”
“그래도 우리 홍여사가 어떤 사람인데?”
“한 돈천만원.”
“그래 또식이 돈 급하다카던데 급한 대로 그걸로 내일 주면 되겠네.”
“그라소. 내일 은행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로 찾아서 가져가소.”
“그게 편리하겠지.”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있소?”
“내가? 돈은 무슨 돈이 있겠노?”
“당신이 아무리 야물게 하고 깊이 숨겨도 내가 당신 눈빛만 보면 다 안다. 자수하소.”
“허허 참, 산우회 가서 친구들 하고 훌라칠 돈까지 다 빼도 한 500.”
“그럴 줄 알았다. 아까 4,300이라 캤는데 적어도 5,500이나 6,000은 들 거요. 그렇다면 적어도 4,5천은 부족한데.”
“내사 홍여사만 믿지.”
“뭐라카노? 누가 시작한 일인데?”
“...”
“취미도 하필이면 골치 아픈 글 쓰는 일하고 돈 들어가는 땅 사서 농사짓는 일인지 참!”
“그래도 완성되면 당신도 1가구 2주택에 별장까지 가진 사모님이 되지.”
“아이구, 마 골 아프요.”
이튿날 영순씨의 말대로 수표로 천만 원을 찾아 또식씨에게 주니
“외삼촌, 비만 안 오면 한 3,4일 뒤에 지붕을 얹는 상량식을 할 낀데 삼촌 우짤낑교?”
“상량식이라? 아직 아무 것도 안 한 저 흙바닥에 상량식을 한다고?”
“예. 내일 바닥공굴치고 나면 공장에서 조립된 뼈대 세우고 지붕에 큰 골조, 그러니까 대들보 세우면 상량이지요.”
“내가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문을 읽는 사람이니 축문 지어서 상량식은 해야지. 날짜는 현장에 공정 봐서 아무 날이나 하되 오전 11시로 해서 끝나면 점심 겸 소주도 한잔씩 하고 상량 떡도 나누고.”
“히야, 그간 집을 여럿 지어 봐도 상량식은 처음이네.”
“너거 외숙모가 모르니 아직 확정 된 거는 아이고. 아무튼 그래 알아서 준비는 해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영순씨와 의논을 하니
“아이구, 영감쟁이 또 일거리 만드네.”
잠깐 눈꼬리가 올라가더니
“하긴 그것도 의미가 있지. 돈 몇 푼 들여 집짓는 기분도 낼 뿐더러 일꾼들 술밥을 먹여 일도 좀 야무지게 해달라는 부탁도 할 겸.”
이외로 순순히 승낙하고 바로 미혜씨에게 전화를 해서 무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의논이 분분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장조카 박장로로 부터 전화가 와서
“외삼촌 큰일 났습니다!”
방금 숨이 넘어가는 지라
“와? 김일성이 쳐들어왔나? 호떡집에 불이 났나? 천천히 말해라.”
“예. 도자기집에서 공사한다고 시끄럽다고 길을 막는답니다.”
“뭐라, 길을 막아?”
“예. 지금 댕기는 도로일부가 자기 땅이랍니다.”
“뭐라고? 옛날부터 우물터, 길 터, 무덤 터는 자기 땅이라도 함부로 손을 대거나 막지 않는 법인데?”
“지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지 땅 지가 막겠다는데?”
“그래도 사람이 천륜을 저버리면 천벌을 받지.”
“하긴 하느님도 무심하지는 않겠지요.”
“그래 잘 좀 이야기 해봐라. 앞으로 죽 이웃으로 살 텐데.”
“예. 남자는 좀 먹혀드는데 여자는 도대체 막무가내입니다.”
“그 참 큰일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하고 그날은 몸이 찌부둥해 오전 내내 쉬고 오후 서너 시가 되어 산우회 사무실로 나가 훌라를 치다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야, 집짓는 일 그거 보통이 아니네. 촌사람들 방해도 무섭고 돈도 많이 들고...”
신세타령을 하다가 몇 평이나 짓는가 묻다가 저마다 친척의 전원주택을 예로 들며 아무래도 전원주택은 한 20평 되어야 하지만 노인네 둘이 살면 한 19평 정도로 하되 거실을 넓게 해서 아들딸과 손주들이 동시에 앉고 놀고 잘 공간이 되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영순씨에게 이야기를 하자
“말은 맞는데 돈이 문제지. 나도 늘 열세 평은 너무 좁다고 생각했지.”
영순씨가 순순히 두 평만 넓게 15평으로 짓자고 해서 또식씨에게 전화를 해서
“아직 기초 공굴 안 쳤제? 설계사한테 부탁해서 설계를 15평으로 넓혀 군청에 설계변경신고를 하고 기초공굴을 치게.”
하고 전체 일정을 한 일주일 늦추기로 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