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1장 뜻밖의 귀촌(8)

이틀 뒤 작전 날이었다. 명촌에 가 봐야 아무도 없을 터라 혼자 주공아파트에서 아르떼채널의 클래식을 들으며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데 오후 두시나 되어 또식씨의 전화가 오더니

“외삼촌, 성공입니다!”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라

“그래. 어떻게?”

“설계사무소소장실로 들어가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더니 바로 안병도씨가 소장실로 들어와 싹싹 빌고 소장이 직접 천화를 여기저기 걸어 적어도 일주일 안에 산림형상변경허가를 내주고 보름 안에 외삼촌의 건축허가가 나오도록 하겠답니다.”

“그래 잘 됐구나.”

“그리고 사흘 후에 일대의 경계측량을 한다고 대한지적공사에서 사람이 나올 때 프라임건설은 물론 설계사 안병도씨와 관계 지주, 건축주까지 모여 지적공사에서 토지전반에 대한 설명이 있답니다.”

“그래 잘 됐구나. 이적지 댕긴다고 욕 봤다. 밥이나 묵었나?”

“아, 예. 인지 묵으러 가지요.”

“그라면 측량하는 날 다들 현장에서 보자.”

“예.”

그러고 만족한 기분으로 조그만 밭뙈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야야, 오늘도 올라왔나?”

키가 작은 금찬씨가 뒷짐을 지고 까딱까딱 올라오더니

“이기 와 여 있노?”

전날 벗어두고 간 챙이 넓은 모자를 챙겨 쓰며

“벌시러 상추가 나오네. 쑥갓도 있고.”

“벌시러가 다 뭐고 4월이면 먹는 상추를 5월이 된 지금에야 근근이 싹이 나는 걸.”

“새밭이라 그렇지.”

“새밭이라서 그런 기 아이고 그 놈의 설계산가 나발인가가 농띠를 쳐서 그렇지.”

“그런데 이거는 다 뭐고? 상추 같기는 한데 이파리가 쭉쭉 찢어진 기.”

“아, 그거는 종합야채세트라고 해서 상추, 쑥갓, 청경채, 서양고들배기같은 온갖 잡종을 썩어서 씨를 팔아서 그렇지.”

“그렇구나.”

마침 점심 땐 지라 소나무그늘로 가서 배낭을 열고 식빵과 우유, 병에 든 물과 찬 통에 든 김치를 주섬주섬 꺼내놓던 열찬씨가
“누님도 같이 묵지요.”

혹시나 싶어 통째로 들고 온 식빵을 두 쪽 떼어 주면서 자신 도 두 쪽을 베어 물고

“우유가 하나 밖에 없네. 누님 드소.”

“동생 니는 우짜고?”

“나는 물 묵지요. 또 김치하고 막걸리 마셔도 되고.”

우유를 건네주고 막걸리를 등산용 컵에 따라 마시며 김치가 잠긴 찬 통을 여는데

“아이구, 우리 올캐는 김치도 참 잘 담제?”

나무젓가락을 찢어 김치를 맛보더니

“이래 맛을 내면 김치하나로도 밥을 먹을 낀데...”

한숨을 쉬는 지라

“누님도 젊을 때 김치 잘 담았다 아이가?”

“나는 인자 정지출입을 안 하니까.”

“그라면 낮에는 며느리고 아들이고 손자들이고 다 나가는데 밥은 굶나?”

“찬물에 밥을 말아 묵기도 하지만 귀찮아서 안 묵을 때가 많다.”

“누님 올해 나이가 일흔 둘 아이가?”

“그렇지.”

“요즘엔 다들 건강하게 살아서 그 나이면 아직 일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식당 하는 사람도 많은데 누님은 여자가 되서 정지출입 안 한다 카는 기 자랑이 아이다.”

“야가 뭐라 카노? 그라면 며느리 놔두고 정지 출입을 하란 말이가?”

“며느리가 있든 없든 내 배가 고프면 내가 챙기 묵어야지.”

“음식이라고 해놓기는 하는데 맛이 없어 안 넘어가는데 우짜노?”

“사람이 우째 맛있는 거만 묵고 사노. 맛이 없어도 안 죽을라카면 묵어야지.”

“니 겉으면 맛없는데도 묵겠나?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맛없으면 안 넘어간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다. 옛날에 왕도 몸을 위해서 맛이 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 흉년이 들거나 비가 안 오면 백성이 걱정되고 자기가 뭘 잘못 한 것 같아 일부러 반찬수를 줄이고 한두 끼를 안 묵기도 했다.”

“내가 왕이가?”

“그라고 내 생각에 누님도 최소한 여자인 이상 먹을 기 없다고 안 묵는다 할 수가 없다. 내 손으로 하면 되니까.”

“...”

“또 안 넘어가서 못 묵는다 소리도 하면 안 된다. 그것도 내 손으로 내 입맛에 맞추면 되는 거다. 말하자면 누님이 안 묵는다, 못 묵는다 하는 것은 다 누님 탓이다. 내가 들으니 집에 손자들이 있으면 손자들이 밥을 하거나 라면을 끓여 누님 먹인다면서.”
“그렇지.”

“그 기 말이 되는 소리가? 누가 생각해도 인자 칠십 둘의 할매와 젊은 손자들이 있다면 ‘아이구, 내 새끼들!’ 하면서 할매가 손자들을 못 해 믹이서 난릴긴데.”

“내가 와? 정지 일 손 놓은 내가?”

“한 번 생각을 해보소. 내 고집만 피우지 말고 남들은 어떻게들 하는지.”

“야야, 시방 니가 날 교육하는 거가?”

식빵 먹기를 멈추는 금찬씨를 보며

“세상이치가 그렇다는 거지.”

한발 물러선 열찬씨가 다시 막걸리를 잔에 붓는데

“너거 자영 죽고 아는 다섯인데 묵고살기는 바쁜데 그 중에 하나는 술만 묵고 쳐돌아댕기고 하나는 방위 받다가 죽어뿌고 가시나 하나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애를 믹이고...”

“또 그 소리?”

“니 겉으면 그 판에 밥 해묵을 정신이 있겠나?”

“아아 다섯이가 아이라 그 때 일식이는 장개가서 아들까지 낳았다 아이가? 따로 나가 살며 다달이 생활비 보태고.”

“시끄럽다. 하나뿐인 가시나가 이혼을 하니마니 하다가 아아 둘을 매끼고 집을 나가도 속이 편켔나? 거다가 죽은 아는 해만 지면 생각이 나고 아이고...”

금방 목이 메어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수원에 제사지내러 다니며 하도 많이 보던 일이라

“아들이 죽은 것 하고 딸이 이혼한 거 하고 내가 밥을 안 하는 거는 별도 문제다. 여자가 밥을 안 하는 거는 그냥 깰밪은 거고 밥을 안 하는 이상 맛있다, 없다 할 자격도 없다.”

“...”

“어서 점심 되도록 잡수소. 내가 빵 가지고 안 왔으면 굶을라 캤나?”

“설마 산 목구멍에 거미줄 쳤겠나?”

금방 또 표정이 밝아져

“그 김치가 맛이 있어 빵이 잘 넘어가네.”

하며 식빵을 네 쪽 째 먹어치우고

“아이구, 배부르다. 이병철이 안 부럽다.”

“이병철이가 다 뭐고 부산일부 김지태가 안 부럽다고 할 거 제?”

“그래. 조선견직 사장 김지태.”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신산한 부산시절을 생각하는 거 같더니

“참, 내 정신 봐라. 또식이 하고 울산 간 일은 잘 됐다 카더나?”

“야. 그런 모양임더.”

“잘 됐네. 그라면 우리 또식이 내일이라도 일하겠네.”

“글쎄.”

막걸리 한 통을 마시며 식빵 세 쪽을 먹은 열찬씨도 뒷정리를 하며 배낭에 넣어온 사과와 토마토를 하나씩 꺼내

“보자, 사과는 칼도 없고 하이 누님이 집에 가서 깎아 묵고 나는 도마도나 묵을까?”

하고 건네주자

“동생, 잘 묵었다.”

한 손엔 우유 통을, 한 손엔 사과를 들고 달랑달랑 내려가는데

“누님, 이 모자도 가져가소.”

“마 놔나라. 담에 안 쓰고 올라온 날 쓰고 가지.”

방금 성을 내다 울먹거리던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게 까딱까딱 경쾌하게 논길을 걸어갔다. 이제 돌아가려고 배낭을 챙기는데

“외삼촌, 여게 게시네?”

또식씨가 화물용 포터차를 세우고 내려와

“그래 욕 봤다. 점심은 묵었나?”

“예.”

“그래 멱살은 잡았나?”

“그전에 소장이 다 해결했다 아입니까?”

“참 그런데 말입니다. 그 한평도란 설계사 책상위에 성경책이 있어서 물어보니 울산 어느 교회의 집사라 안 캅니까?”

“그래서 나도 언양덕천교회 집사고 우리 형님은 장로라고 인사를 했지요. 인자 그 사람이 애 먹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간은 몰라서 그렇지 이미 같이 예수 믿는 형제로서...”

“몰라. 그 기 그래 될랑가?”

하고 배낭을 둘러매자

“외삼촌, 언양까지 태워다줄까요?”

하는 또식씨를 바라보다

“참, 니가 따로 아는 설계사가 없나?”

“와요? 있기는 있는데.”

“그라면 그 사람 불러라. 설계사를 바꾸자.”

“그래 잘 안 될 낀데 서류도 거기에 다 있고 한평도설계사가 허락할 일도 없고 같은 설계사끼리 그래 할 택도 없고.”

“아이다. 한평도는 인자부터 하는 시늉을 내면서 또 다른 핑계를 찾아 애를 먹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집 설계만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저도 깜짝 놀랄 것이다.”

“그래도 될랑가?”

하며 전화를 거니 마침 언양쪽에 출장 중이라며 또식씨친구의 후배라는 서른이 조금 넘은 설계사가 도착해

“아이고 젊기도 하고 인물도 좋네.

열찬씨가 악수를 하기 바쁘게 경일씨란 설계사를 가로챈 또식씨가 무어라고 한참이나 설명하더니

“외삼촌 못 할 거는 아닌데 마음에 걸린답니다.”

“와?”

“원래 대지로 되어있어 허가자체는 문제가 없답니다. 그런데 한평도씨가 도면을 제공할지도 의문이지만 동업자로서 예의도 아니고.”

“그래?”

한참이나 생각하던 열찬씨가

“보소. 설계사양반, 요새 일이 많응교?”

“아닙니다. 일이 없어 죽을 판인데요.”

“그라면 맡으소. 그 사람이 뭐라 카고 도면을 안 주면 날로 파소.”

“예. 진작 할 일을 무작정 지연시켜 농사도 못 짓고 집도 못 짓고 피해가 커서 시방 손해배상 청구할 판인데 끝까지 애 먹이며 내가 달리 생각이 있다고 말이요.”
“달리 생각이라니요?”

“그건 우리 박집사한테 물어보면 두 가지나 방법이 있다는 걸 알 거요.”

“암만 그래도...”

“그래 만약 일을 맡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한 일주일, 길어야 열흘.”

“그걸 벌써 6개월 째 손도 안 대고 접수조차 안 시킨 설계사를 내가 우째 믿는다 말잉교?”
“예, 일감이 달리기는 한데...”

젊은 설계사가 망설이자

“경일아 그만 해 봐라. 우리 외삼촌이 책임진다 아이가? 또 나도 있고.”

“그래도 될랑가?”

“그래야 니 사무실임대료라도 낼 것 아이가?”

“예. 알았심더.”

비로소 승낙을 하는데

“자, 도면은 우리 박집사 휴내폰에서 다운받고 지주는 보자, 메모지 없나?”

해서 설계사의 업무수첩에 열찬씨가 바로 영순씨의 인적사항과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자, 도장!”

하고 배낭속의 작은 가방에서 목도장을 꺼내주자

“공무원출신이라 그런지 참 빈틈이 없네요.”

하던 설계사가

“참, 몇 평으로 어느 방향으로 할까요?”

“그러 제? 아아는 안 놓고 똥두디기 준비부터 했제?”

하고 잠시 숨을 돌려

“원래 농막용으로 컨테이너로 지으려다 며느리나 딸도 오고 해서 수세식 화장실용 정화조도 묻고 뭐 어찌하다 보니 열세 평정도 조립식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노인네가 사는 집인 만큼 외양은 너무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면 되겠고 방향은 여기 원래 동향집이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약간 남향으로 그러니까 저기 봉꼴산 통신탑을 방향으로 잡으면 되겠는데.”

“에, 참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다면 산지사방이 다 트인 산봉우리로 지기가 모인 곳이지. 마치 먼 바다에서도 보이는 등대처럼. 내가 풍수지리는 잘 몰라도 그런 봉수대를 안산(案山)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예. 잘 알겠습니다.”

하고 설계사가 제 차로 떠나간 뒤

“외삼촌 타이소. 언양차부까지 모실 게요.”

하고 등말리 논길을 빠져나오면서

“건축절차가 그래 골치 아픈 줄 몰랐네요. 처음에 웬만한 사람은 허가를 못 낸다고 삼촌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장영희사장쪽 사람들이 그랬는데 역시 삼촌이 세기는 세네요.”

“되고 안 되고 가 어디 있노? 법대로 하는 거지.”

“문제는 일반사람들은 법도 잘 모르고 또 그걸 설계사나 공무원들에게 조목조목 따지지 못 한다 아입니까?”

“아이다. 요새는 두 말 않고 법대로 다 내어주게 되어있다.”

“말은 그래도 그건 삼촌처럼 높은 사람, 아는 사람 입장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백성 앞에서는 안 통하는 법이지요.”

“그런가? 하긴 나에게도 설계사니 건설회사 상무니 말케 속이려고만 하니 말이다.”

하고 부리시봇디미를 벗어나 송대리 성당 앞을 지나며

“그 동생이 일은 빨리 잘 할 겁니더. 지도 말이 설계사지 사실 자격증만 가지고 지입차주 비슷하게 설계사무소에 얹혀서 따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다문 사무실임대료라도 내려면 말입니다.”

“그렇구나.”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