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야 할 단 하나의 행성(Our Only Home), 다시 지구를 향한 시선(Earth Again)’.

기후위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제4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가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렸다.

개막작 '제인구달-희망의 이유' 상영 중 객석에서 캡쳐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조직위원회 제공]

하나뿐인 지구영상제(조직위원장 장제국)는 (사)자연의 권리찾기가 주최하는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 친환경 주제의 영화제로, 이번 제4회 행사에는 전 세계 138개국에서 출품된 2,303편의 작품 중 예선 심사를 거쳐 최종 20개국 49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번 영상제의 주제는 ‘희망’이다. 연이은 폭염과 홍수, 기상이변 등으로 세계는 환경 재난의 한가운데 서 있으며, 해결책 마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절망 대신,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통해 작은 ‘희망의 씨앗’을 관객과 함께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이번 영상제의 취지이다.

'제인구달-희망의 이유' 한 장면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조직위원회 제공]

영상제는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기후 위기 NOW’,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살리는 식탁’, ‘살아있는 지구’, ‘지구 파노라마’ 등을 통해 환경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했으며, WWF(세계자연기금) 캠페인과 환경실천 예술가 단체 보헤미안스의 2개 특별 상영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지난 21일 개막작은 데이비드 리클리(David Lickley) 감독의 <제인 구달–희망의 이유(Jane Goodal–Reasons for Hope)>였다. 이 작품은 아흔이 넘은 침팬지 연구의 대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이 전 세계를 무대로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는 여정을 그린다. 특히 제인 구달이 북방대머리따오기 떼와 함께 알프스를 건너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블랙피트 부족의 아메리카 들소 재도입,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서드베리 녹지화 프로젝트 등 황폐해진 경관이 숲과 호수로 되살아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리클리 감독은 네 가지 희망의 원칙, 즉 인간의 지성, 자연의 회복력, 청년 세대의 힘, 불굴의 인간정신에 초점을 맞춰 제인 구달의 메시지를 심도 있게 전달했다.

이 영화는 전기차를 활용한 이동, 현지 제작진 중심의 친환경 촬영, 재활용 기반의 프로덕션 운영 등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담겼다. 제작 중 발생한 탄소 배출량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의 4분의 1 수준인 약 100t에 불과해,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에서 지속가능 제작 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제인 구달은 작품에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할 수 있고, 함께할 것이며,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라고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개막작 상영에 앞서,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홍보대사 박진희 배우는 친환경제품과 텀블러, 에코백 사용을 생활화하며 기후행동 1인 시위 등 자신의 실천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마지막 골든타임”임을 호소했다.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은 힙합 공연에서는 래퍼 제이통과 노스페이스갓이 ‘환경보호’를 노래했고, ‘기부천사’ 아티스트 김장훈은 ‘사노라면’, ‘허니’ 등을 부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영상제에서는 영화와 함께 환경과 사회의 주요 이슈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하나뿐인 지구 컨퍼런스’도 진행됐다. 첫 번째 주제인 ‘기후재난의 시대, 제인 구달의 희망은 우리의 희망인가?’에 대해 22일 <제인 구달–희망의 이유> 상영 후 배우 박효주와 진재운 집행위원장이 대화를 나눴다. 두 번째 주제 ‘산청의 눈물, 기후위기의 정책적 대안을 묻는다’에서는 23일 덴마크 출신 로빈 페트뢰 감독의 <온리 온 어스(Only on Earth)>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와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대표가 각기 산불과 홍수 사례를 통해 산림청의 임도 개발 및 남벌, 소나무류 중심의 산림 정책 문제를 지적하고 산림청 개혁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세 번째 주제 ‘재난 이후의 아이들’에서는 신드라 윈서 감독의 <로우랜드 키즈(Lowland Kids)> 상영 후 정영주 배우와 허아람 인디고서원 대표가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영화 '나는 강이다' 포스터.

필자는 제2회 영상제부터 <원자력비방록>, <투르카나족의 기후전쟁> 등 다양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왔다. 이번 행사에서는 24일 코린 판 에허라트와 페트르 롬 감독의 <나는 강이다(I Am the River, The River is Me)> 상영 후 진재운 집행위원장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나는 강이다>는 세계 최초로 법적 인격체로 인정받은 뉴질랜드의 왕가누이(Whanganui)강의 이야기이다. 마오리족의 강 수호자인 네드가 원주민 장로와 그의 딸을 초청하여 카누를 타고 5일간 왕가누이강을 오르내리며 자연의 권리와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감독 부부가 직접 카누 여행에 참여하며 제작됐다. 이들은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450여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30개국 이상에서 방영된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강이다'의 한 장면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조직위원회 제공]

진재운 집행위원장은 “2010년 오클랜드대 방문자 연구 때 왕가누이강 투쟁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2017년 왕가누이강이 최초로 법적 인격체로 인정받아, 강을 해치는 것이 곧 종족의 삶을 해치는 것으로 여기다. 이 운동이 현재 전 세계 자연의 권리 운동의 선구자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대한 비행’, ‘물의 기억’, ‘무경계’, ‘백산, 의령에서 발해까지’ 등 생태 다큐를 제작해 온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최초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날 영화의전당 소극장은 200석이 매진되면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거 관람했다. 필자는 “영화를 세 번 보며 우리가 지구별 여행자로서 왕가누이강을 카누로 함께 타고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가이아 이론처럼 ‘어머니 대지, 아버지 하늘’이란 말이 나오는데, 강을 선조와 연결하는 마오리족의 삶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 선조와 멀어진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 자연 속에 하나되는 인간의 삶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고 말했다.

'나는 강이다' 관객과의 대화

영화에는 마오리족 지도자 네드와 호주 원주민 장로 브렌던 등이 나오며, 이들은 강에 들어갈 때 ‘루루쿠’라는 기도를 올리고, 강을 둘러싼 노래와 악기 연주, 조약돌로 자연의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누 여행 중 유럽 여러 나라 활동가와 지역의 오염된 강을 살리자는 연대도 이어졌다. 왕가누이강을 보면서 동강 살리기와 낙동강의 옛 물길이 떠올랐다.

관객 질문 중 “난개발로부터 우리의 강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이야기에, 필자는 “부산에서 낙동강하구 자연유산구역에 대저대교 건설이 추진되고, 황령산 정상엔 호텔과 케이블카, 이기대엔 퐁피두 분관, 가덕도엔 신공항 건설 등 난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시대에는 강뿐 아니라 숲과 바다, 공동체의 삶에 대한 자연의 권리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온 홍석환 부산대 교수, 최병성 목사(가운데 2인)와 함께 제4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홍보물 앞에서 기념 촬용.
최 목사 홍 교수의 관객과의 대화 모습

이번 영상제에서는 환경 전문가 토크도 마련됐다. 23일 <키나와 유크> 상영 후 허아람 인디고서원 대표가 북극여우 커플의 여정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아이 웨이웨이: 애니멀리티(Animality)> 상영 후에는 이찬우 한국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미혜 경남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아이 웨이웨이 감독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현대 자본주의 시대 맥락에서 고찰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했다.

<고래와의 삶> 상영 후 오창길 (사)자연의벗 이사장과 이광미 뷔셀의원 대표원장이 고래 사냥에 의존하는 유피크 공동체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혁명을 경작하다> 상영 후에는 우봉희 시골협동조합 대표와 설경숙 감독이 인도 농민의 신농업법 반대 투쟁을 깊이 있게 풀어내 감동을 전했다.

<스페이스X의 비극> 상영 후에는 심산 스님이 보카치카 해안선 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와 우주탐사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번 영상제에 상영된 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은 바로 <추적>이다. 이 작품은 MBC 'PD수첩'에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을 취재한 후 해고당한 뒤, 뉴스타파에 합류해 활동해 온 전 MBC 사장 최승호 감독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문제를 17년간 추적한 기록이다.

영화 <추적>은 "4대강 수심 6미터, 대통령께서 지시하셨습니까?"라는 물음과 함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에 펼쳐진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전 1급수의 맑고 아름다웠던 강은 악취와 독소를 품은 녹조로 가득한 죽은 강으로 변했고, 그 녹조로 자란 농산물이 전 국민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수십 조 원에 달하며, 강에 세운 보를 운영‧유지하는 데만 매년 500억 원이 소요되고 있다.

최승호 감독의 '추적' 관객과의 대화

이명박 정부가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둔갑시킨 과정, 그리고 정부의 거짓말과 언론의 외면이 국토 파괴 프로젝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영화는 집요하게 고발한다. 이 모든 결과는 결국 우리 다음 세대의 몫이 될 것이기에,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의 강을 다시 흐르게 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울림 있는 다큐멘터리다.

이번 영상제에서 눈에 띄는 특별상영은 ‘보헤미안스-우리는 당신의 환경입니다’였다. 보헤미안스는 기후위기 시대 전시와 공연을 통해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지역 예술인 단체로, 2022년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14명의 작가가 기념 전시를 열며 정식으로 결성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화가들이 6편의 환경 단편을 선보였다.

마티아스 프리크 감독의 <기후예술: 저항에서 유토피아로>가 먼저 상영됐으며, 이 작품은 현대미술이 기후위기 앞에서 수행할 역할과 예술의 힘을 조명한다. 이어 보헤미안스 작가들이 만든 6편의 단편은 각각 3~14분의 러닝타임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상영 후에는 진재운 집행위원장의 진행으로 작가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의 살던 바당은>(배효정)은 제주 해녀 어르신 다섯 분의 삶을, <스며든 상처>(이동재)는 콘크리트 파도가 자연을 삼켜버린 세계와 인간 욕망의 역설을 그려냈다. <자연보호>(정성하)는 부산 래퍼 제이통, 노스페이스갓과 함께 바다쓰레기 줍기 현장을 묘사한 뮤직비디오로 환경 메시지를 전달했다. <잠재력을 가능성으로>(김문정)는 인류 소멸 이후 AI가 인류의 기억을 수집해 새 생명을 창조할 가능성을 상상한 작품이다. <플라스틱은 정말 환상적일까?>(이상현)는 바비인형을 통해 인위적 아름다움의 소비와 그 이면의 환경 오염 문제를 성찰한다. <마더 십 커넥션 2025 혹 망원[동] FUNK>(포레스트 이안 엣슬러)는 한국 무속무용과 미국 펑카델릭 문화가 공존하는 부조리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한편 25일 폐막작 <좋은 마을, 나쁜 자본, 그리고 산(Savanna And the Mountain)>은 포르투갈 북부 마을 주민들이 영국 기업의 리튬광산 건설 시도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으며, 실화 재연을 통해 투쟁과 유머, 진지함을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은 ‘하나뿐인지구어워드’ 대상을 수상했으며, 광산 개발은 법적 공방과 주민 저항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진재운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집행위원장의 인사말을 되새겨본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갑작스레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기후위기는 서서히 조여오는 가위눌림과 같습니다.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것이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그 무력감은 기후우울증이 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백신이 됩니다. 그 확신은 ‘함께함’에서 생깁니다. 그리고 그 함께함이 쌓일 때 비로소 ‘희망’이 됩니다.”

그 ‘희망’이 되자고 한 제4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는 이제 막을 내렸다. 내년 이맘때 더욱 성숙한 제5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를 학수고대한다. 그때는 주위의 더 많은 지인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하면서.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